좋은 말씀/한경직목사

여호와의 기쁨 (느헤미야 8:1-12)

새벽지기1 2017. 8. 3. 06:58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8:10)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돌아온 후에 된 일입니다. 여러 해를 지나면서 겨우 성전을 재건하고, 또한 여러 해를 지난 후에 느헤미야의 헌신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을 수축한 후에 7월 1일 성일(聖日)을 당해서 모든 사람이 예루살렘 광장에 모였습니다. 이 때 학사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 책을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며 그 읽은 말씀을 해석해 줄 때, 모든 백성들은 그야말로 오래간만에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듣게 되어 너무 감격해서 울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여러 무리들을 향해서 외치는 말이『오늘은 여호와의 성일 인데 너희가 우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다. 우는 것을 그치고 기뻐하여라.』
그러면서 계속해 하는 말씀이『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조금 더 간단히 번역하면 여호와의 기쁨이 우리의 힘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여호와의 기쁨이 너희의 힘이니라.』여호와에 기쁨이 있습니다. 참 신앙에는 기쁨이 따릅니다. 이 기쁨은 여호와의 기쁨입니다. 이 기쁨의 근원은 여호와입니다. 이 기쁨은 여호와께 속합니다. 기쁨의 대상도 역시 여호와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시편 100편도 여러분이 잘 기억하는 줄 믿습니다.『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유를 설명하는 말씀이『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인 줄 너희는 알지어다. 우리는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곧 전능하신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 무소 불능하시고, 무소 부재하시며, 지혜와 능력과 사랑과 공의와 자비와 긍휼(矜恤)이 풍성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올시다. 우리는 그의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양입니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 시요 우리는 그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 믿는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 은 요한1서에 이와 같이 외쳤습니다.『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그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면 우리도 그와 같을 것을 아노라.』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달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권속입니다. 그의 권속임으로 그의 유산을 이을 수 있는 후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가만히 생각할 때에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시편 103편을 잘 기억할 줄 믿습니다.『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恩澤)을 잊지 말지어다.』그러면서 계속해서 하는 말씀이『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그리고 조금 내려가서『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여기에서 우리는 사죄의 기쁨을 발견합니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 죄인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독생자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아니하고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기쁨과 화평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사죄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1절에『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定罪)함이 없나니』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도 찬송에 부르는 대로『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化)하도다.』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시편 23편을 다 기억하실 줄 믿습니다.『여호와는 나의 목자(牧者) 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 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 하시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할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여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뿐더러 우리와 동행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여 주십니다. 여기에 주님의 동행과 인도와 보호의 기쁨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목자로서, 친구로서, 우리에게 보혜사를 보냄으로써 성신으로 우리와 같이 게시고 도와주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에녹의 기쁨을 맛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 발 앞에서 그의 말씀을 듣는 마리아의 기쁨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의 품에 안기어서 주님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는 사도 요한 의 즐거움과 기쁨을 맛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과 동행하고 교통하는 기쁨이 참으로 신앙이 있는 이들에게는 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지난 금요일 저녁, 로드 부장의 말씀을 들은 이가 계실 줄 압니다. 그는 한국 구세군에 오래 있다가 불행히 6·25 때에 이북에 납치를 당해서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다시 영국에 돌아와 계시다가, 이번에 잠깐 한국에 와서, 이북에서 자기가 지내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 날 저녁에 거기에 참여한 사람은 다 많은 은혜를 받은 줄 생각합니다.
그의 경험 가운데 한 가지는, 자기가 한 번은 너무 피곤하고 마음도 약해지고 믿음도 약해졌답니다. 어떻게 피곤한지 촌 보를 걸을 수 없을 만큼 사방이 캄캄해지는 듯 하는 경험을 한번 당할 때에, 돌연히 시편 23편에 있는『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 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 앞에 상을 베풀어주시니.』 이 말씀이 자기의 머리 가운데 번개 같이 나타났답니다. 그는 새로 힘을 얻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를 도와주신다고 하는 것을 체험했다고 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그와 동행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동해서 선을 이루는 확신이 우리에게는 있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소망의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합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이 시간을 초월해서, 이 세계를 초원해서 영원한 소망의 기쁨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기쁨이 있습니다. 사죄의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교통하며 보호함을 받는 기쁨이 있습니다. 영원한 소망의 기쁨이 우리 믿는 자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여러분, 이 여호와의 기쁨은 세상의 기쁨과는 다릅니다. 세상의 기쁨은 육의 기쁨이올시다. 여호와의 기쁨은 영의 기쁨입니다. 세상의 기쁨은 육감적입니다.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생의 자랑, 이런 것들에 대한 만족이 있을 때에 세상의 기쁨은 현세적이요 추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기쁨은 영적 기쁨이올시다. 성신의 열매올시다. 생명의 기쁨이올시다. 양심의 기쁨이올시다. 진리의 기쁨이올시다. 우리 심령의 깊은 기갈에 만족을 주는 생명수를 마시는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쁨은 거룩하고 경건한 기쁨이올시다. 세사의 기쁨은 외적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기쁨은 내적입니다. 세상의 기쁨은 그 기쁨의 기초를 외적 원인에 두었습니다. 환경에 두었습니다. 맑은 날은 기쁘다가 흐린 날은 그 기쁨이 없어집니다. 순경에는 기쁨이 있으나 역경에는 당하면 그 기쁨은 없어집니다. 건강할 때는 기뻐하나 병날 때는 그 기쁨이 없어집니다. 젊을 때는 기쁘나 늙을 때는 그 기쁨이 없어집니다. 살 때는 세상에 기쁨이 있으나 죽을 때는 세상의 기쁨은 없어집니다.
그렇지만 그와 반대로 여호와의 기쁨은 내적인 까닭에 환경을 초월합니다. 맑은 날에도 있고 흐린 날에도 있습니다. 순경에도 있고 역경에도 있습니다. 약할 때에도 있고 강할 때에도 있습니다. 살 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죽을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기쁨입니다.


세상의 기쁨은 일시적입니다. 아침 안개와 같습니다. 잠깐 있다가 없어집니다. 이 여호와의 기쁨은 영원합니다. 하늘의 별과 같습니다. 항상 있습니다. 세상의 기쁨은 마치 지는 해와 같습니다. 점점 적어져 없어집니다. 늙어갈수록 적어지다가 마지막에 죽으면 아주 없어집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가지는 여호와의 기쁨은 아침에 돋는 해와 같습니다. 점점 커갑니다. 점점 밝아집니다. 영원히 하늘 나라에까지 우리의 기쁨이 더 온전히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옛날 우리 동양사람 가운데도 군자의 낙(樂)과 소인의 낙이 다르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과연 우리 믿는 사람들의 즐거움과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의 즐거움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여호와의 기쁨이 너희의 힘이니라.』우리 믿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이 기쁨이 우리의 능력이올시다. 슬픈 마음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곧 피곤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기쁜 마음은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줍니다. 기쁨이야말로 능력 있는 생활의 비결입니다. 기쁨으로 하는 일은 힘드는 줄을 모릅니다.
제가 몇 해 전에 미국에 가서 이 곳 저곳 구경하는 가운데 어떤 큰 목장을 구경했습니다. 큰 젖소가 백여 두 되는 큰 목장입니다. 젖을 짜는 방이 아주 넓은 방들인데 그들은 전부 소젖을 짜되 기계로 짭니다. 어떻게 여러 소에서 젖이 많이 내려 흐르는지 수돗물 내려오듯 합니다.
그렇게 많이 젖을 짜는데 제가 한 가지 이상하게 여긴 것은 그 젖 짜는 방에다 라디오를 놓았습니다. 소만 있는 그 젖 짜는 방에 라디오를 놓고 늘 좋은 음악을 보내주지 않겠어요? 저는 웃으면서 소만 있는데 라디오는 무엇 하려 놓았는가 고 물으니까 웃으면서 소도 라디오 음악 소리를 좋아한다고 대답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미국의 소들은 우리 농촌의 동포들보다 퍽 낫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사실 소도 마음이 기뻐야 젖이 잘 나온다고 합니다. 아마 아기 어머니들도 그럴 것 같습니다. 마음이 기뻐야 젖도 잘 날 줄 압니다.


여호와의 기쁨이 우리 믿는 사람의 능력이 됩니다. 이렇게 환난이 많고 죄악이 많은 세상에 사는 우리가 여호와의 기쁨이 있어야 이 기쁨이 우리로 하여금 모든 역경을 돌파하고 곤란을 이기고 어려운 것을 참아 견딜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줍니다. 여호와의 기쁨은 우리로 하여금 봉사의 힘을 줍니다. 우리가 약한 사람을 도와주려고 애쓰는 이 봉사 생활에는 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데도 이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 능력이 어디서 오는가? 믿음으로서 내가 받은 내 마음속에 기쁨이 우리에게 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것입니다.
한 걸은 더 나아가서 여호와의 기쁨이 우리로 하여금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여러분, 빈집에 도적이 든다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어째서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는다면서 예배당에 오기도 하지만 때때로 시험이 빠집니까? 아직도 예배당에 다니기는 다니지만 참된 신앙에 들어가지 못해서 마음속에 신앙으로 말미암아 오는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이 기쁨이 없으니 혹 세상의 기쁨을 좀 얻어 볼까 하고, 세상 사람에게 기웃기웃합니다. 극장에도 가보고 나쁜 동무도 찾아가는 등 속이 비었습니다. 참된 신앙을 얻어서 그 마음속에 기쁨이 충만한 사람은 세상의 기쁨과 더러운 기쁨을 돌아볼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옛날 호머라는 헬라 시인이 말한 옛날 이야기를 들으신 분이 많이 계실 줄 압니다. 헬라 나라는 우리 한국의 남방과 같이 조그만 섬이 많은 나라입니다. 옛날에는 그 섬 가운데 문화가 크게 발전했습니다.
옛날 그 여러 섬 가운데 사이렌이라는 아주 요만한 여자들만 사는 섬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들은 특별히 노래를 잘 부릅니다. 아주 미혹 적인, 사람의 마음을 유혹시키는 이런 노래를 잘 불러서 섬 앞으로 지나가는 선부(船夫)들과 그 여객들이 좋은 노래를 좀더 듣기 위해서 섬 옆으로 가까이 가다가는 그 여자들에게 꾀어 간답니다.
그 섬에 들어가서는 돈 있는 것은 다 빼앗기고 아주 망하고 돌아오곤 한답니다. 그래서 이 헬라 사람들은 누구든지 배를 타고 갈 때에 조심하느라고 결심하고 가지만 막상 옆으로 지나가는 동안 그 노래 소리가 들리면 조금 더 듣자고 가까이 가다가는 쑥 들어가곤 했답니다.
그런데 그 때에 체이슨이라고 하는 아주 지혜가 있는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분이 그 섬 옆으로 부득이 그의 많은 제자들을 데리고 지나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제자들을 한 사람도 유혹에 끌리지 아니하고 내가 섬을 잘 지나갈 수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에 헬라에 유명한 음악가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거문고를 아주 잘 타는 올시어드라는 사람으로 그 때 헬라에 가장 유명한 제금가(提琴家)였습니다.
이 올시어드를 청해 같이 배를 타고 갔습니다. 배가 그 섬 가까이 갈 때에 올시어드를 보고『여보 당신이 잘 하는 음악 소리를 들려 주시요.』그러니까 유혹의 섬 가까이 가서 올시어드가 거문고를 내서 좋은 음악을 탑니다. 그러니까 이 배 가운데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이 좋은 음악에 도취해서 그 섬 가까이 다다라서 여자들이 나와서 노래도 하고 떠들었지만 그 노래는 아주 듣지도 않습니다. 이 올시어드의 거문고 소리를 듣다가 이 노래 소리를 들으니 그것은 돼지 소리만도 못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저 올시어드의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평안히 그 섬을 지나갔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 가운데는 우리가 배울 진리가 있는 줄 압니다. 내 심령 속에, 내 마음속에 기쁜 노래가 있어야 합니다. 내 마음속에 참된 영적 만족이 있고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세상의 더러운 죄악이 침노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인 줄 압니까? 과연 우리는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아들 되시는 예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는 것을 분명히 내가 체험했습니까? 과연 주님께서 나와 같이 동행합니까? 주님께서 과연 내 생활의 목자입니까? 내가 과연 주님과 교통하는 생활을 합니까?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의 기쁨이 있습니까? 이 참된 여호와의 기쁨, 이 기쁨은 우리의 힘이 됩니다. 이 기쁨을 다 받기를 바랍니다. (1959년 4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