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먼저 중생으로 (요한 복음3:1-15)

새벽지기1 2017. 8. 29. 06:5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여러분께서 많이 기도해 주시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 가운데 그 동안 네 나라를 다녀왔습니다. 말레이시아, 미얀마, 태국, 필리핀을 다녀왔습니다. 필리핀에서는 교역자 수양회를 두 곳, 북방에서 한 곳, 남방에서 한 곳에서 했습니다. 그렇게 다섯 교역자 수양회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번 교역자 수양회에 가기 한 달 전에, 기독교 선명회(宣明會)에서 저에게 이번 교역자 수양회에 가서 가르칠 과목을 지정해 왔는데 설교 학에 대해서 가르쳐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갑자기 받게 되어서 당황(唐慌)은 했지마는 아무래도 각각 나누어서 말할 수밖에 없는데 협력하는 의미에서 그 제목을 제가 맡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거기 대한 생각도 좀 하고 또 서적도 좀 읽고 준비를 하는데 여러 저자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그저 설교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대언 하는 것인데 단순히 무슨 웅변이나 학식만에 관계 있는 것이 아니고 근본적으로 그 설교자가 은혜를 받아야 되고 설교자의 생활이 결국은 그 설교에 권위를 주는 것이라는 말로 강조되었습니다.
특별히 지난 十九세기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로서 차알즈 스펄전이라고 하는 이의 저서를 읽었습니다. 그이가 그 때 목사들과 여러 신학생들 한데 설교에 대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일 첫째 되는 주제를「목사의 자성」이라고 하는 그런 내용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무엇보다도 설교자가 되려고 하면 제일 중요한 것이 자기 자신이 구원을 얻어야 되고, 또 거듭나야 된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자기 자신이 거듭나지 못한 설교자는 아무리 다른 것을 잘 한다고 할지라도 그 설교를 통해서 은혜가 없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말을 읽고 저도 이제 여러 목사와 전도사들 한데 이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소개하고 난 다음, 토의하는 시간에 서로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모든 교역자들이 다 이구동성으로 그 말이 과연 옳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 이 스펄전 자신이 十九세기 영국 교계에 있어서 여러 교역자들에게 강연할 때에, 교역자로서 제일 중요한 것이 자기 자신이 먼저 구원을 얻고 거듭나야 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그 때의 교역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시대나, 어떤 나라나, 어떤 교회의 교역자들에게도 그 말이 가장 필요합니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생각해 보면, 그 말은 교역자에게만 필요한 말이 아닙니다. 장로에게도 필요하고, 집사에게도 필요하고, 권찰(勸察)들에게도 필요하고, 주일학교 각부 반사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성가대원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사실 누구든지 믿는 사람에게는 제일 중요한 말입니다. 자기 자신이 먼저 구원을 얻어야 거듭나야 됩니다.
여러분, 이 시간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마는 예수 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느니라.』거듭나야 되겠다고 하는 것을 결코 기이 히 여기지 말아야 됩니다.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오늘 이 말씀을 간단히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 심령 위에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물론 거듭 난다고 하는, 중생이라고 하는 체험은 영적 체험으로서 신비한 사실이올시다. 우리가 다 깨닫기 어렵습니다. 깨닫기 어렵다고 사실 아닌 것이 아닙니다. 신비하다고 사실 아닌 것이 아닙니다. 신비한 사실입니다. 이 우주는 모든 신비한 사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다 전기를 이용하지마는 전기가 무엇인지 우리다 다 깨닫습니까?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전기가 있다고 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전파가 있다고 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예수 님 말씀과 같이 바람이 임의로 불지마는,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가를 다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기상학이 발달되었다고 하지마는 아직까지 분명히 모릅니다. 신비한 것이 있습니다. 바람은 우선 눈에 보이지 않으나 느낄 수 있습니다. 바람 분 다음에 그 형적(形迹)이 나타납니다.
이 영적 체험은 신비하지만 사실은 사실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체험이 아니고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필수적인 반드시 있어야 될 만한 사실이올시다. 이것은 예수 님께서 친히 너희가 반드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문맥을 보면「반드시」라고 하는 말이 우리 한국 번역에는 없지만 그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것입니다.
그러나 육으로 난 것은 육이오 영으로 난 것은 영인데 아무래도 육신의 생을 통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 난 것처럼 영적 생을 통해서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예수 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또 이것은 어떠한 사람에게만 대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누구나 다」거듭 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처음에 누구에게 하셨는고 하니, 니고데모에게 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요, 유대 관원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바리새인이라고 하면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보통 외식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선입관이 있지만, 그 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어떤 사람들인고 하니, 물론 좋지 못한 사람도 많지마는, 실상은 양심적으로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기를 힘쓴 사람들입니다. 십일조를 꼭 드렸습니다. 안식일을 꼭 지켰습니다. 박하나 근채(芹菜)처럼 적은 것까지 십일조를 꼭 드렸습니다. 속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또 이 니고데모로 말하면 유대 관원이올시다. 七十인 공회원 가운데 한 사람이올시다. 덕망이 높은 사람이 보통 공회원이 되었습니다. 또 이 사람이 예수를 찾아 온 것을 보면 비록 밤에 찾아왔지만 진리를 탐구하는 좋은 성품이 있는 겸손한 사람이올시다. 그러나 예수 님께서 니고데모를 향해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니고데모가 여러 가지로 율법도 많이 알고, 잘 기키고, 여러 가지로 덕행도 좋고 다 있지마는, 그러나 근본적으로 다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없다고 노골적으로 말했습니다.
요사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흔히 어떻게 생각하는고 하니, 예수 믿는 것은 예배당에 가고, 찬송도 배우고, 성경 말씀도 듣고, 그리고 열 가지 계명도 배우고 그리고 산상보훈도 좀 배우고, 어떻든지 좋은 도덕적 교훈을 많이 배워서 좋은 교훈대로 힘써서 하나씩 둘씩 좀 고쳐나가고 이렇게 수양을 잘 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신앙 생활이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기독교인의 신앙 생활이라 하면 기독교는 유교 도덕 사상에서 더 나은 것이 없습니다. 유교 사상이 그것입니다. 좋은 도덕적 교훈을 얻어서 그대로 실행하면 되지 않느냐? 우리 기독교는 사람을 그보다 더 깊이 봅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그 성품이 죄악으로 부패해서 죽은 영혼입니다. 기독교의 요구는 근본적으로 다시 나지 않으면, 새 사람이 되지 않으면, 다시 나는 것과 같이 변혁이 있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 기독교의 근본 정신입니다.
먼저 나무가 좋아져야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나무를 그냥 두고 열매만 아무리 개량하려고 애써도 쓸데가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나무의 성품이 변해야 됩니다. 근본적으로 부패한 인간 성품이 변하는 것을 중생(重生)이라고 합니다. 다시 나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여러분께서 이 사람의 간증하는 말씀을 들었지마는 동남아 여러 지방으로 다니기는 세 분이 같이 다녔습니다. 한 분은 의사요, 한 분은 사업가였는데 그 분이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이 분은 본래 어렸을 적에, 믿는 가정에서 나서 주일학교도 다녔고, 또 교회에도 그렇게 열심히는 못나왔지만 교회에 나왔고,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입니다.
한 번은 어떤 친구의 초청을 받아서 저녁을 같이 먹고 이야기했습니다. 마침 그 때에 영국에서 온 잘 믿는 사람이 있어서 같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과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하는데 무슨 말을 묻는고 하니,『당신 거듭났습니까?』『중생 했습니까?』이것을 솔직히 물어보았답니다. 지금까지 믿어오긴 왔지마는 그렇게 갑자기 자기를 대놓고서 이런 질문을 받아보기는 처음이란 말입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가는 예배당에 잘 다녔습니다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더랍니다.『그 동안 다니는 건 좋지만 성경 말씀에 보면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했는데 거듭났습니까?』또 물어봅니다. 그래서 할말이 없어 어물어물하면서 대답하는 말이『난 연보도 상당히 하는 사람인데…』『아 연보도 늘 가는 것은 대단히 좋습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에 보면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했는데 거듭났습니까?』또 물어본단 말입니다. 이렇게 자꾸 물어 보는데 대답할 말이 없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솔직히『난 거듭났는지 안 났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해야 거듭납니까?』되물어 보았습니다.
그이는 어떻게 해야 거듭난다고 하는 말을 그 때 그 분에게 해 주었습니다. 그 말대로 이 분이 했습니다. 그래서 사실 거듭나는 체험을 얻었습니다. 그 후에는 사업만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신앙을 간증하면서 다른 여러 사람을 많이 주께로 인도하고, 자비로 동남아까지 같이 와서 주의 일을 하려고 많이 애쓰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 여러분! 여러분에게 하나 묻습니다. 여러분 하나 하나가 다 거듭 났습니까? 스스로 물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와서『당신 거듭났습니까?』이렇게 분명히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글세 자세히 모르겠는데요.』이렇게 대답할 사람은 없습니까? 사실 이 중생의 체험이 어떤 분에게 갑자기 되고, 어떤 분에게는 시일을 요구해서 천천히 거듭나서 자기 자신도 혹 모르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중생 한 생활을 하면서도 자기 스스로가 몽롱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와 같은 분들과 아직까지 근본적으로 거듭나지 못한 분들을 위해서 제가 간단하게 세 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는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하는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그 깨달음이 없이 중생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며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을 스스로 검토해서 감히 서지 못할 추악한 죄인이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보통으로 생각합니다. 보통『다른 사람하고 비교하면 내가 괜찮은데, 무사할 뿐 아니라 나는 의인인데…』『예수 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는데』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중생을 주겠습니까? 내가 죄인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사람 앞에서가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적나라하게 내 자신을 검토해 보는 그 때에만 내가 얼마나 죄인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는 짓고 하나님의 영광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의인은 없나니 곧 하나도 없다.』는 것을 그 때야 깨닫게 됩니다.
둘째 단계는 내가 죄인인 줄 깨달았으면 그 죄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그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 죄가 얼마나 악한 것을 깨닫고 아프게 뉘우쳐야 됩니다. 그걸 통회라고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 앞에 그 죄를 자복해야 됩니다.『나는 이런 죄인이올시다.』하고 고백해야 됩니다. 셋째는 그 죄를 떠나야 됩니다.『죄인들아 죄에서 멀리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떠나야 됩니다. 참 회개하는데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통회, 고백, 떠나는 것,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내 중심에 영접해서 내 생활에 중심으로 삼아야 되겠습니다. 먼저 번 간증한 이가 특별히 요한 계시록 三장 二十절에 있는 말씀을 증언했습니다.『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소리를 듣고 문을 여는 이에게는 내가 들어가서 내가 그와 같이 먹고 가는 나와 같이 먹으리라.』
그리스도를 내 중심에 영접해서 내 자신을 스스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하지만 사실 생활의 중심이 그리스도인가, 혹은 그 밖에 무엇인가, 내 자신인가, 내 자신의 무엇인가. 세상의 무엇인가? 내 마음속에 사실 그리스도께서 계셔서 언제든지 그리스도와 무슨 일을 의논하고 그리스도의 지도대로 내 생활의 문이 돌아가는가, 그렇지 않고 아직 내 자신인가? 자신의 야심(野心), 욕심, 정욕, 세상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죄를 깨닫고 죄를 온전히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내 중심에 영접하면 그 밖의 일은 성신의 역사입니다. 성신께서 거듭나는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더 길게 말하기는 원하지 아니합니다. 이 시간, 중심에 스스로 물어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과연 거듭났는가, 거듭난 것이 분명한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우리 다 무리 숙여 기도합시다. (一九五九년 八월 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