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리민수목사

광야의 개척자!

새벽지기1 2016. 9. 17. 07:41


리민수칼럼2494 광야의 개척자!

<무엇보다도 먹고 사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고향에서는 논 너마지기에서 잘 먹어야 쌀 예닐곱 가마니 밖에 먹지 못했다.
하지만 고향에서는 잡곡나부랭이나 산나물 같은 거라도 있어
식량에 많이 보탬이 됐지만 온양만 해도
쌀농사 지은 것뿐이니 맑기가 짝이 없었다.
통일벼가 나오기 전에는 같은 논 4마지기에서 쌀 열가마니정도밖에 먹을 수 없었다.
일곱 식구나 되는 대가족에다 종가집 이어서 제사 받들고 손님 드나들고 하다 보니
그때 역시 왜 그렇게 밥을 많이 먹었는지 식량해결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궁리 끝에 쌀 1가마니를 시장에 내다 팔면
보리쌀 1가마니와 밀가루 1포대를 사고도 돈이 남을 정도였다.
이렇게해서 오히려 쌀도 몇 가마니 시장에 내다 팔 수 있고,
식생활도 해결할 수 있었다.
이렇게 겨우 식생활은 해결되었지만
농사꾼이 농토가 적어 날품팔이나 해가며 자식들을 교육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온양온천으로 이사 간지 얼마 안 되어 하루는 큰 자식 민수 담임선생님을 마났다.
그런데 담임선생님 말씀에
“민수 그렇게 해 가지고 무슨 공부를 시킬 수 있습니까?” 이러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선생님 민수가 무슨 큰일을 저질렀습니까?” 하고 물으니
퇴근길에 보니 길가에서 민수가 아이스케키를 팔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또 한번 나는 놀랬다.
날마다 일만 다니는 형편에 자식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것이다. 
저녁이 되어 민수를 불러놓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랬더니 저도 “한 푼이라도 벌어서 중학교 입학금을 보태려고 그랬다”는 것이다.
기가 막혔다.
아직 철모르는 초등학교 5학년생이 중학교 입학금을 보태겠다고 껌 장사를 하다니,
부모로서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네가 입학금 보태려고 껌 장사하다가 공부 못하면
그나마 중학교에 들어가 보도 못 한다.
그러니 공부나 열심히 하여 중학교나 떨어지지 않도록 해라”
그러면서 “너 번 돈은 어떻게 했니?”
내 앞에 내 놓는 것은 3만 원짜리 저금통장이었다.
나는 시골에 살면서 그 날까지 저금통장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
한편 부끄럽기도 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 후로 빗나가지 않고 성실하게 학교에 잘 다녔던 것이다.>


이번 추석 명절에 아버지께서 공개하신 일기 몇 곳을 읽었다.
주로 나와 관련된 내용이다.
위 내용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이다.
당시 아이스케키를 팔았던 것은 맞지만 아버지께서 좀 과장하신 듯하다.
하지만 소중한 옛 추억들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예나 지금이나 좀 독특한 구석이 있는 건 분명한 것 같다.
그런 일은 고등학교 때도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깨엿과 껌을 팔았다.
주로 다방에서 그런 일을 했다.
뿐만 아니다.
새벽에는 신문을 돌렸고, 월 1회 학생영어라는 월간지를 학교에서 팔았다.
모두가 <경험 삼아> 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은 내게 독특한 은사를 주신 것 같다.
지난 달에는 블로그를 시작했다.
블로그 닉 네임은 <광야의 개척자>다.
내 인생을 가장 많이 함축한 내용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살고 싶어서다.
이 번 추석에는 청소년 시절을 추억하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였더라(수17:1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