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
(삿6:11-24)
◆서론
먼저 본문의 배경을 알아보겠습니다.
사사기에는 <범죄-하나님의 징계-백성의 부르짖음(회개)-사사를 통한 구원-일정한 기간이 평안-또 다시 범죄>라는 패턴이 있습니다.
사사기6장은 그 다섯 번째 패턴이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범죄)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징계)에 넘겨 주시니”
이어서 7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었으므로(회개)”
이 때 하나님은 사자를 기드온에 보내 사사로 임명하겠다는 사실을 통보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14절)”
그래서 기드온이 하나님께 스카웃되게 된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용병술>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용하시는 방법은 참으로 오묘합니다.
구약의 모세, 느헤미야, 다니엘이나 신약의 바울등 몇몇을 빼면 정말 아주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사용하셨다는 말입니다.
우선 대표적인 인물들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명문 가문 출신도 아니고 학식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주로 어부에 불과했습니다.
마태는 세리였습니다.
구약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명한 인물을 기준으로만 봐도 요셉과 다윗은 아무런 업적이 없었던 때 아주 어린 나이에 들어 쓰셨고, 사사 입다는 기생의 아들이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예수님은 사회적 소외계층에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가지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들은 모두가 역사를 바꾼 인물들입니다.
갈릴리 호수가의 어부들이 교회사의 기초가 되었고
요셉과 다윗은 입다등은 나라를 구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기드온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의 5번째 사사입니다.
기드온의 이름 뜻은 "벌채" 또는 "벤다"는 뜻입니다.
그는 므낫세지파 요아스의 마지막 아들(삿6:11)로,
농장과 과수원을 가진 순수한 농부였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들어 사용하시는지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1
◆본론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들어 사용하실까요?
첫째,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부르셨을 때 그의 태도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11절을 보면 기드온은 미디안의 침공을 받았을 당시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11절).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들키지 않게 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이는 미디안 사람이 두려워서 들키지 않으려고 숨어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원래 포도주는 실내에서, 밀 타작은 실외에서 하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이미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기드온은 우리처럼 보통 농민이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명을 하십니다.
그러나 기드온의 반응을 보십시오(15절).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이 말씀을 쉬운 성경으로 다시 읽겠습니다.
“"감히 여쭙습니다만, 내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습니까?
보시는 바와 같이 나의 가문은 므낫세 지파 가운데서도 가장 약하고,
또 나는 아버지의 집에서도 가장 어린 사람입니다."
그랬습니다. <객관적>으로 기드온은 평범한 농부였지 군사를 이끌 재목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위대한 역설’의 종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불행>이
그리스도 안에서는 역설적으로 <축복>이 된다는 말입니다.
기독교의 역셜은 첫째, 죽는 자가 산다(빌2:7-11절)는 것입니다.
둘째, 가난한 자가 복되다(마5:3)는 것입니다.
셋째,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되다(행20:35)는 것입니다.
넷쩨, 섬기는 자가 복되다(막10:44-45)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역설은 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6-29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2
사도 바울은 또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고후13:9)“
기드온은 스스로 <극히 약하고> <가장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12절에서 이미 하나님은 기드온을 ‘용사’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나님께서 한 없이 약하고 연약한 기드온을 들어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셧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약한 자를 들어 사용하십니다.
보잘 것 없는 저와 여러분을 들어 복음을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스스로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우리는 사령관 되신 그리스도의 전사다!-이렇게 말입니다.
‘아멘!’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들어 사용하실까요?
둘째, 하나님은 믿음이 사람을 들어 사용하십니다.
세상에는 약한 사람 천지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그들 모두를 들어 사용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들어 사용하십니다.
당시 기드온은 이스라엘 가운데 <남은 자>였습니다.
<남은 자>란 영적 암흑기에 믿음으로 살았던 소수를 말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영적 암흑기였습니다.
본문이 들어있는 삿6장 25-32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25절 “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며 그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말은 당시 이스라엘이 얼마나 영적으로 암울한 시기였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소명을 받고 하나님께 표징을 구합니다.
본문 17-22절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17절)”
그리고 가서 제물을 가져다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불을 내려 그 제물을 태워 버립니다.
기드온이 깜짝 놀라 떨면서 이렇게 외칩니다.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고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22절)
두려워 떠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23절)
그제서 기드온이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안을 얻습니다.
이 때 기드온이 한 말이 그 유명한 ‘여호와 샬롬(여호와는 평안이시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철옹성 같은 믿음의 소유자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어도 덥고, 춥고, 배고프고, 고통스럽고, 두렵습니다.
심지어 여호수아도 두려워하는 것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수1:9)”
그리스도인은 두렵고 떨릴 때 하나님을 찾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고 평안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의 사람을 들어 사용하십니다.
우리의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할 때 거룩한 부담감 다 갖는 것입니다.
양육할 때 가지원 앞에서 대부분 부답됩니다.
저도 늘 그랬습니다.
세상 사람도 매 순간 이런 부담과 걱정 근심으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음을 가지 자가 아닙니까?
히브리서 10:39에 보면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으로 시작하는 새 학기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들어 사용하실까요?
셋째,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들어 사용하십니다.
기드온은 군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극히 약하고> <가장 작은 자>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두 가지 명령을 내립니다.
하나는 네 고향 마을에 있는 바알제단과 아세라 상을 없애라는 것입니다.
바알은 당시 근동의 대표적인 이방신이고 아세라은 대표적인 여신입니다.
이 우상을 당장 없애 버리라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죽음을 무릎 쓰고> 임무를 수행합니다.
후에 기드온이 이 신상들을 모두 파괴해 버렸을 때 마을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압니다.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을지니”(30절)
이런 위험하고 엄중한 임무를 그는 믿음으로 수행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목해야 할 말씀은 바로 27절 말씀입니다.
“이에 기드온이 종 열 사람을 데리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행하되”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무엇입니까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기드온은 말씀하신 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렇다고 기드온이 행한 것이 쉬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하나님은 기드온을 본게임에 투입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어떤 상황입니까?
4
그렇습니다. 미디안의 침공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여러분이 너무 잘 알고 있는 <기드온의 300용사>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대부분 아는 내용이기에 간단하게 핵심만 전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많은 군살르 주시지 않았습니다.
군사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군사가 22000명이나 모였는데 그들이 다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300명만 뽑으라는 것입니다.
너무 황당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적군은 얼마나 되었을까요?
삿8:10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이 때에...(미디안) 모든 군대 중에 칼 든 자 십이만 명이 죽었고
그 남은 만 오천 명 가량은 그들을 따라와서 거기에 있더라”
미디안 군대가 모두 얼마였습니까?
그렇습니다. 135000명이었습니다.
22000명 가지고는 <객관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 병력이었습니다.
크리스찬들이 가끔 ‘객관적’ ‘상식적’이런 말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분명히 객관적이고 상식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초월적’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캠퍼스 상황은 <객관적>으로 암울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상14:6) 아멘!
전도서 기자는 전9:11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조언합니다.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상황이 어렵고 칠흑같이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친히 역사하십니다.
그런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찾아 사용하십니다.
주님께 순종하는 제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5
◆결론
찬송가 143장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 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 박히셨으니 웬 일인가 웬 은혠가 그 사랑 크셔라>
벌레 같은 나를 구원에 주신 것도 은혜인데
우리에게 복음을 맡기셨으니 이 어찌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아침 국기게양대 사진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한신대는 두 명의 지체가 국기게양대 기도회를 했더군요.
아주대도 마찬가지 졸업을 앞둔 두 명의 형제들이 참여했구요.
지난 주 수원과학대는 성찬형제 혼자 참석했습니다.
이 세 캠퍼스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100% 참석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저들 속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지금 열악한 형편에 있는 캠퍼스가 많지만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오늘 아침 제가 단톡방에 올린 말씀을 꼭 기억하십시오.
갈라디아서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아멘!
지금 기드온보다 더 두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힘내십시오.
2학기 <학업>과 <사역> 모두 승리하는 제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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