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어나 가라
모세가 죽은 후 새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처음 하시는 말씀은
일어나 약속의 땅으로 가라는 것이다.
우리도 일어나 축복의 땅, 약속의 땅, 나의 기업을 향하여 가야 한다.
우리 매일 매일의 삶에서 ‘일어나 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날이 그날 같고, 소망 없이, 맥없이, 실망 낙담과 체념속에 사는 사람에게 돌아올 것은
가난과 궁핍과 불행과 비극 밖에 없다.
왜 일어나지 못하고 가지 못하는가?
내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가야할 목적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인하여,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이다.(하나님의 자녀요, 상속자이다.)
나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한 몸이 되었으므로, 그리스도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다.
하나님의 상속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내 것이라는 말씀이다.
당장 손에 쥔 것이 없다고 왕손이 거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원래 부자는 지갑에 돈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굳이 화려한 옷을 입고 알아달라고 할 필요가 없다.
과시효과(demonstration effect)란 말이 있다.
후진국에 갈수록 이 과시하기 위해 쓰는 자원의 낭비가 많다고 한다.
명품들, 대형차, 큰 사무실, 대형 아파트들이 잘 팔리고 그것으로 신분과 능력을 과시한다.
큰 교회, 큰 회사, 큰 세력에 속한 것을 자랑하고 그것으로 자기가 큰 것으로 착각한다.
내 동생은 곧 죽어도 꼭 밴츠를 타고 다닌다.
성형왕국에, 그 성형의 모델인 배우들의 자살왕국이다. 묘하게 매치가 되지 않는가?
(아름다운 겉모양이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 아님을 본다.)
속이 빈 사람일수록 겉이 요란한 법이다.
속이 꽉 차 있으면 굳이 뭔가를 씌워서 자기를 과시할 필요가 없다.
속이 비었으니 겉모양으로 자기를 포장할려고 하는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다.
(세상의 힘으로는 그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기득권과 관계로서가 아니고, 믿음의 삶을 통해서 세상이 감당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세상을 부러워하고 가진 자 유명한 자를 부러워하는 것은 그 포로가 되었다는 증거다.
골프 황제가 자기 부인에게 준 이혼위자료가 9200억이라고 한다.(다른 보도는 1200억)
가정이 깨진 결과요 애들은 결손가정이 된 결과다.
그 여인은 입을 다물고 살아야 하고 스웨덴 고향에도 애들을 데리고 갈 수 없다.
그녀는 여전히 세끼 밥을 먹을 것이고, 하루 24시간을 쓸 거다.
그녀는 그 돈으로 평화로운 가정과 화목을 살 수 없고 건강과 진정한 명예를 살 수는 없다.
오늘밤 네 영혼을 데려가면 그 재물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는 주님의 말씀도 있다.
( 우리는 그 여인보다 훨씬 행복하고 부요한 것을 믿으라. 우리는 만왕의 왕이시고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자녀요 그분의 상속자이다.)
또, 내가 누구인가?
성령으로 거듭나서 새로운 생명, 새로운 존재가 바로 나다.
더 이상 우리는 옛 사람이 아니다.
우리의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새사람이 되었다.
성령이 내 안에 항상 거하시고 나를 인도하신다.
우리의 시민권은 이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았으면 여호수아처럼 일어나 그 땅을 향해 가야 한다.
아브라함처럼 모세처럼 요셉처럼 다윗처럼 일어나 가야 한다.
환경에 눌리고 원수에게 눌려서 손발 묶인 노예처럼 주저앉아 있을 때가 아니다.
오락물이나 잡담이나 의미 없는 만남들에 시간이나 죽이면서 보낼 때가 아니다.
새사람 새로운 존재로서,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새로운 삶을 살기를 시작해야 한다.
나의 옛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나는 순간,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죽었다.
그것을 인정하고, 여기고, 믿고, 이제는 새 생명으로 하나님을 향해 살아야 한다.
(우리는 죄에 대해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 사는 자이다.)
아브라함은 고향 친척 아버지 집에서 일어나 가나안을 향해 갔다.
모세도 애굽의 모든 보화와 왕족의 특권과 죄악의 낙을 버리고 일어나 갔다.
기득권과 관계에 연연하는 사람은 약속의 땅, 기업을 향해 일어나 갈 수가 없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기도한다.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바란다.
(엡1:17-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기 때문에 내가 누구인지를 모른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해야 하는데 나로부터 출발을 하니 나는 소망이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고, 영광의 우리 아버지시다.
그분이 주시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아 그분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한다.
그분을 알면 내가 보이고, 나의 미래와 소망이 보이게 된다.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마음의 눈이 밝아지면, 나를 부르신 소망이 무엇인지, 내게 주시는 기업의 영광스러움과
풍성함을 알게 된다. 그분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능력이 지극히 크심을 알게 된다.
세상과 일상에만 매달려 허덕이며 사노라면 우리의 마음 눈은 어두어질 수 밖에 없다.
마음 눈을 밝혀 우리의 목적지, 약속의 땅을 보아야 한다.
우리의 부르심의 소망을 보아야 한다.
우리가 받을 기업의 영광과 풍성을 보아야 한다.
시시때때로 우리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알아야 한다.
우리 힘으로 우리 가진 것으로 우리의 기업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그분의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기업을 이루심을 믿으시기 바란다.
이를 알면,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기업의 영광과 풍성을 향해 갈 수 있다.
2 함께 하리라, 강하고 담대하라
일어나 그 기업을 향해 가라고 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신다.
(수1: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은 일어나 가라 해놓고 뒷짐지고 내몰라라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일어나 그 땅을 향해 가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나와 함께 있을 것을 약속하신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신다고 하신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으로 내 평생에 능히 대적할 자가 없게 하신다.
일어나 그 땅을 향해 가노라면 때로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그 실패와 지체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 계신다.
우리가 도중에 머물 때에도 나아갈 때에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의 짧은 소견과 속단과 성급함과 조급함때문에 그분의 깊은 뜻과 진행을 모르고
낙심하고 포기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불신앙의 덫에 걸릴 뿐이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갈6:9)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약속하시면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담대하라는 것이다.
(수1: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는 사람은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다.(여호수아, 갈렙)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강하고 담대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약속의 기업을 주신다.
사람들은 소유와 관계가 많고 좋으면 강해지고, 적고 나쁘면 힘을 잃고 자신이 없어진다.
믿음은 사람과 소유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믿는 것이다.
오직 그분이 함께 하심을 믿고, 소유와 관계와 상관 없이, 강하고 담대하시기 바란다.
밭에 소출이 없어도 우리에 양이 없어도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오직 여호와로 인하여 담대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의 사람 요나단은 하나님의 구원은 수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고 했다.
(삼상14:6)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믿음의 사람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이 칼에 있지 않다고 했다.
(삼상17:47)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칼과 창이 있고 없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강하고 담대한 삶을 사시기 바란다.
되는 일이 없어도, 환경이 변하지 않을지라도,
기죽지 말고 눌리지 말고 낙심하고 체념하고 포기하지 말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강하고 담대하시기 바란다.
3 율법을 지켜 행하라, 평탄하고 형통하리라
하나님께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시면서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
율법을 다 지켜 행하라는 것이다.
(수1:7-8)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믿음도, 나의 마음의 강하고 담대함도
하나님의 말씀과 그 행함에서 나온다.
말씀을 멀리하고 그 행함도 없으면 믿음도 담대함도 없게 마련이다.
우리 시대의 모든 비극과 불행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그분의 말씀을 버린 데 기인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 그분의 법도를 살지 않는 죄가 인류의 불행을 자초한다.
우리 개인의 운명과 환경도 인간관계도 결국은 이 죄로 인하여 블행해지는 것이다.
복과 저주의 원인은 한 가지이다.
(신28:1-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신28: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행복하고 번영하는 일생을 살고 싶은가?
길은 한 가지다. 세상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 따라 살면 된다.
하나님 따라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것이 하나님의 율법책 성경이다.
성경책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라.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행복과 번영)
나와 내 가정의 인생 길이 평탄하고 형통하기를 그렇게 원하면서도,
성경책을 가까이 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것, 지켜 행하는 것은 죽도록 싫어한다. 아이러니다.
복과 형통은 욕심나는데, 저주와 불행은 지긋지긋한데,
그 해결책은 죽어도 싫으니 어떡 하겠어요?
그렇게 한 평생 살다 가야지요. 금쪽같은 내 새끼들한테 그 모습 그대로 물려주어야지요.
내 신분, 내 상속권을 알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행해야,
부르심의 소망이 내게 이루어지고,
그 풍성한 기업의 영광이 내게 이루어진다.
예나 지금이나, 예수 믿기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면
앞으로 우리에게 돌아올 것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
내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한 몸이 되는 순간, 나의 옛사람은 죽었고,
나는 새사람, 새존재가 되었음을 믿어야 한다.
내 몸과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은 옛사람의 본성과 습관과 사고방식들이다.
이것들이 우리의 불행과 비극을 초래하고 있다.
그것들과 싸우고 벗어버리는 일은 우리에게 맡겨 놓으셨다.
그러나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그전에는 우리가 아담 안에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전에는 죄가 우리에게 왕노릇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위에 우리 안에서 왕노릇하고 있다.
그 전에는 우리 옛사람이 옛 본성과 죄를 따라 한 통속이 되어 살았지만
지금은 우리 새 사람이 새 생명으로 이 옛 본성과 죄를 능히 이길 수 있다.
그분의 사랑과 능력이 함께 하고 우리를 그분의 손에서 빼앗아갈 자가 아무도 없다.
성경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해야 이 사실들을 알고 믿고 담대하고 힘을 얻을 수 있다.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알고 다 지켜 행할 수 있다.
예배를 통해 은혜와 말씀을 받고, 꾸준한 성경공부를 통해서 알아야, 믿고 행할 수가 있다.
그 성경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요즘 저는 청교도들의 책을 보면서, 우리가 근 100여년 동안,
얼마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쳤는지’를 알고 놀라고 있다.
로마국교화로부터 1,300년 동안 카톨릭이 성경을 왜곡하고 매장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서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돌이키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 청교도들이 300년 동안 수고하여 성경을 바로 알고 바로 살게 하였다.
그러나 19세기말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보수진영에서마저
성경을 인간의 철학으로 왜곡하여 왔음을 알고는 놀라고 있다.
그들은 청교도적인 성경신학을 내팽개쳐 버리고 우로나 좌로 치우치고 말았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누룩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다.
우로는, 사두개적으로 치우친 것을 말하고, 세속화 인간화한 것을 말한다.
좌로는, 바리새적으로 치우친 것을 말하고, 인간의 의와 율법화한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의보다 인간의 의를 앞세우고 복음을 율법화하는 것)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 한스럽기도 하지만
이제라도 알고 시정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고 있다.
성경을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살기 위해 우리의 시간과 노력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인생과 가정과 교회의 승패가, 행과 불행이 성경을 바로 알고 바로 사는데 달려있다.
우리의 수고와 욕심과 달음박질만으로 행복과 번영을 이룰 수 없다.
그렇게 한평생을 산 수많은 사람들의 결론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내 성품과 삶이 달라지지 않고서 내 운명과 환경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들은 다 거짓이다.
우리 주님은 우리 죄에 대한 당신의 죽음과 함께 문제의 우리 옛사람을 처리해주셨다.
주님의 부활과 함께 우리는 새 사람 새 존재가 된 것이다.
이제는 이 새 사람으로 옛사람의 사고방식과 행동들을 하나씩 처리해 가면 된다.
이를 확실히 알고 살기 위해서 성경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 모든 옛사람의 환경에서 일어나 약속의 땅을 향해 가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시니 강하고 담대하라 하신다.
이를 위해서 성경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며 주야로 묵상하며 지켜 행하라고 하신다.
그러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 길을 평탄하게 하시고 형통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신다.
그것을 확실히 하는 방법과 길이 성경을 공부하고 아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다.
(공부해서 알면 믿어지고, 믿어지면 살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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