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고 바꿔줄 수도 없다.
물릴 수도 없다. 연습하고 다시 살 수도 없다.
몸이 아파보면 이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이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영생에서의 삶이 결정된다.
한 번뿐이니까 그리고 끝이니까 원하는 대로 실컷 살자 하는 사람들도 있다.
죽음 이후의 생을 믿지 않으니까 그런다.
그렇지만 죽음 이후 우리의 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육신은 호흡이 멈추면 썩기 시작하지만 우리 영혼은 영원하고 반드시 심판을 받아야 한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오늘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는 영생의 삶을 결정할 뿐 아니라 우리의 현세의 삶을 결정한다.
오늘 우리가 어떤 삶을 사느냐가 우리 현세의 운명을 결정하고 영원미래의 운명도 결정한다.
그토록 중요한 오늘의 삶을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당면한 문제들에만 코박고 살고 있다.
당면한 문제만 해결되면 되고 아니면 견딜 수 있으면 된다는 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그때 그때 생각해서 항상 해오던 방식으로 그냥 살아간다.
문제가 꼬리를 물고 이어오는 데도, 결코 나아지지도 않는 환경에 익숙해져서 게을러져서, 멍하니 산다.
근본적으로 그 원인이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묻지를 않는다.
한 번뿐인 인생. 그것이 한 번뿐이라는 깊은 인식도 없다.
어느새 10년이 흐르고 20년이 흐르고 50년 80년이 흘러갈 뿐이다.
내가 내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지 않으면 가깝게는 힘쎈 놈이 왕노릇하고
멀게는 어둠의 권세 사탄이 왕노릇해서 노예처럼 우리를 끌고가고 만다.
노예로 살다가 한 많은 인생을 마치게 된다.
남의 노예로 살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나대로 살려면
나도 몰래 내게 덧씌워진 잘못된 건덕지들을 털어내야 한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우리 조상 아담의 죄와 허물을 뒤집어 쓰고 태어난다.
그리고 그 위에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유전인자와 가족문화들이 덧씌워진다.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과 교육들이 덧씌워진다.
덕지덕지 붙은 것들이 난 줄 알고 그놈이 운전하는 대로 흘러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오늘 본문 말씀은,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신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분 안에서, 그분의 진리로 가르침을 받았다면
덕지덕지 붙은 이 옛사람을 헌옷 벗듯 벗어버리고 나는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
내가 새사람으로 살려면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요3:5)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해서 다 똑같아 지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는 베드로, 요한은 요한, 바울은 바울이고, 나는 나이다.
진정한 나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내가 다시 살아나야 새사람을 살 수 있다.
(엡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새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된 것을 말한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사람으로 살려면 거듭나기 이전의 나의 삶을 회개해야 한다.
(마4:17)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회개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고 사는 것을 말한다.
(엡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옛사람의 특징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가는 것,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르는 것이다.
사탄이 유혹하는 대로 내 몸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다.
우리 인생을 썩어져가도록 만드는 구습, 옛습관을 따라 사는 것이다.
사단이 그 배후에 있다.
새사람의 특징은 그러한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사는 것이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는 것이다.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이다.
썩어져가는 구습이 아니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서 유혹의 욕심들을 버렸는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는가?
탐심과 육체의 정욕들은 우리를 성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썩어지게 만든다.
야망과 달음박질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영광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과 영광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고 새사람으로 살 때 온다.
이 새사람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아간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이다.
거룩한 의와 진리이다.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이고 진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이 의를 기록하여 알게 하고 깨닫게 하는 것이 성경의 진리 말씀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은 이 의와 진리로 지어져 가고 살아야 한다.
거기에 축복과 영광이 있다.
그리스도의 의와 진리가 내 인생을, 내 가정을 다스리고 세워가게 해야 한다.
그것이 믿음의 선한 싸움이다.
의와 진리를 사는 데는 진리에서 우러나오는 믿음과 용기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그분의 의를 구하고 살아야 한다.
말씀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며 그 진리로 지어져 가고 살아가야 한다.
내 식의 철학과 속임수를 따라 살아서는 소망이 없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할 때 모든 것을 더해 주심을 꼭 믿으시기 바란다.
우리의 운명과 환경을 바꾸는 길은 나의 옛사람과 그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벗어버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고 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을 구하고 기도하고 진리의 말씀을 공부하고 사는데 힘써야 한다.
기도와 말씀으로 거룩해진다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야망과 달음박질이 아니라 우리의 거룩함이 축복과 영광을 이룬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의와 진리를 알 수 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의와 진리를 살 수 있다.
말씀도 기도도 없다면 우리 삶은 썩어져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욕심을 내고 땀흘려 수고를 했지만 사단 도적이 와서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게 된다.
의와 진리를 알고 살 때 우리 주님은 풍성한 삶으로 번성하는 삶으로 축복하신다.
땅의 것을 구할 때 임하는 것은 환난과 곤고요 하나님의 진노이다.
그래서 땅의 것을 생각지 말고 땅의 지체를 죽이라고 하는 것이다.
(골3:5-6)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위의 것을 구할 때 임하는 것은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다.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롬2:10)
내 한 번뿐인 인생을 무엇으로 채우길 원하는가?
환난과 곤고와 저주로 채워도 괜찮겠는가?
영광과 존귀와 평강으로 채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우리는 이제까지의 삶을 회개하고 결단해야만 한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여가기로 결단해야 한다.
유혹의 욕심과 썩어겨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
성경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의 옛사람을 처리했다고 말씀하신다.
이제 그 말씀을 믿고 여기며 우리가 매일매일의 삶에서 얫사람의 습관들을 벗어버려야 한다.
(롬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갈라디아서도 말씀한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하나님은 우리 보고 우리 힘으로 옛사람을 처리하라고 하지 않으신다.
십자가에서 처리하셨음을 알고 여기고, 몸에 배어 있는 습관들과 사고방식은
우리더러 처리하라고 하신다. 우리의 회개와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회개와 결단을 하지 않으면 삶은 후진하고 암흑과 혼돈과 공허로 채워질 수 밖에 없다.
털고 일어서야 한다. 침체와 낙심의 늪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주님이 내미는 손을 붙잡고 일어서야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심으로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셨다.
이 자유를,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단과 그 하수인들에게 빼앗겨서는 안 된다.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선을 행하다가 겪는 환난과 곤고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이지
노예의 멍에를 메고 허덕이는 환난과 곤고는 결코 아름다운 것이 못 된다.
사람과 경제의 노예가 되어 겨우 생존을 위해 온갖 부당함과 억압의 희생자로 사는 고난은,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헛되게 만들고, 한 번뿐인 내 인생을 망가뜨리고
천추의 한을 남기고 말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야 한다.
다시는 더 이상 노예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한다. 내가 회개하고 결단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나의 확실한 신분을 알고 노예의 멍에를 벗어버려야 한다.
더 이상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근심케 하지 말아야 한다. 성령을 소멸치 말아야 한다.
기독교는 노예의 종교가 아니다. 굴종의 종교가 아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심으로 우리를 사셨고 우리를 자유케 하셨다.
예수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했다면, 성령으로 거듭나고 새사람이 되었다면,
굴종의 삶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고, 노예의 멍에를 더 이상 메지 말아야 한다.
한가족교회는 주님의 진리로 사람을 자유케 하고 굳건하게 서게 하고 성숙하게 자라게 하고
마침내는 복을 받고 영광과 존귀로 관씌워지는 복음을 전하는 교회이다.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을지라도 하나님께는 택함을 받은 보배로운 산 돌이 되고
모퉁이 돌이 되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는 복음을 전하는 교회이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면 우리는 이제 오직 그분 안에서만 행해야 한다.
그분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받고, 진리를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야 한다.
노예생활과 연약한 것을 주님의 고난으로 더 이상 합리화하지 말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으로 굳게 서야 한다.
사단은 대적하면 물러간다. 사단은 두려워하면 더욱 옥죄어오고 꼼짝을 못하게 한다.
(약4:7-9)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하나님께 복종해야 한다. 사람이나 마귀에게 복종하지 않아야 한다.
마귀는 대적하면 우리를 피해간다.
그런데 마귀에게는 복종하고 하나님은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까이 하면 우리를 가까이 하신다.
하나님은 멀리하고 마귀는 가까이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마귀도 섬기고 하나님도 섬기는 두 마음을 품지 않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께 복종하도록 마음을 성결하게 해야 한다.
마귀에게 복종하고 하나님을 멀리했던 것에 대하여 애통하고 울어야 한다.
마귀에게 속하여 누리던 웃음과 즐거움을 애통으로, 근심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는 점점 빼앗아가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만다.
예수 안에 있는 진리로 가르침을 받았을 진데,
진리의 말씀에 우리의 한 번뿐인 인생을 걸어야 한다.
말씀으로 하나님을 계시하셨고,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다.
우리가 거듭난 것도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다.
이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곳에 인생길이 평탄하고 형통의 길이 열린다.
물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철따라 열매를 맺고 하는 일이 다 형통할 수 있다.
말씀을 가까이 하고 공부하고 묵상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그 말씀을 따라 살고 그 말씀이 내 인생의 원칙이 되고 기준이 되게 하라.
그 말씀이 말하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돈과 경제를 의지하지 말라.
자립할려고 애를 쓰고 하나님을 의지하라.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넘치게 부어주시는 분이시다.
영광 가운데 풍성하게 우리의 모든 쓸 것을 넘치게 채워주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에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불같은 시련을 통과하고 광야의 연단을 통과하면
부지런과 인내와 믿음으로 사노라면, 때가 되면, 하나님은 약속하신 영광의 기업을 주신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으로 살고 잠잠히 기다리라.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때가 되면 하나님은 속히 이루실 것이다.
머지 않아 한가족교회에 오순절 불을 부어주셔서 회심과 부흥의 운동이 일어날 것이다.
기둥같은 제자들을 낳아 가족처럼 마디와 힘줄로 연합된 교회를 세워갈 것이다.
여호와의 기업들을 차례로 세워가는 교회가 될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 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여호와의 손이 능하신 것을 알게 되고, 그분을 항상 경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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