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하나님은 영이셔서 어디에나 계시고 전능하셔서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생각과 뜻에 따라 순식간에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때가 되면 속히 이루시는 분이시다.
때가 되면 기적을 행하심으로 우리를 기쁘게 하시는 분이심을 믿으라.
하나님은 출애굽시에 기적으로 홍해를 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다.
이제 광야에서 40년 세월을 보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단을 가르는 기적을 행하셨다.
오랜 세월 고난의 세월을 보낸 우리에게도 요단이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한가족교회는 그 날이 머지 않았음을 우림과 영감으로 말씀해 주시고 계신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일 설교로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저는 3일전부터 감동이 와서 기적을 행해주시라고 기도하고 있다.
“홍해를 가름같이 요단을 가름같이, 한가족교회에 기적을 행하셔서
준비하게 하시고 발안시대가 열리게 하옵소서”
멕체인 성경 읽기표 한 주간 말씀 중에 대개 설교 본문을 택하게 하시는데
아니면 그 다음 주중의 말씀 중에 정하게 하시는데, 아니었다.
오늘 설교를 위해 어제 새벽에 일어나 두 시간 동안 말씀 보며 기도하면서도
본문이 정해지지 않아 답답하였다. 그런데 한참 뒤에야,
3일 전에 기도하게 한 말씀이 오늘 본문임을 깨닫게 하셨다.
우리의 가나안 축복을 가로막고 있는 요단은,
하나님의 능하신 손으로 행하시는 기적으로만 갈라짐을 믿으시기 바란다.
그것을 못믿고 못기다려서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세상 방법으로 가나안을 쟁취할려고 한다.
탐욕과 달음박질이 축복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누누이 말씀드렸다.
조급하여 원한다고 비전을 세우고 달려간다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다고 해서
축복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세우는 바벨탑일 뿐이다.
우리 인생들은 바벨 탑을 쌓고 그 탑 주변을 돌다가 허무하게 인생을 종치고 만다.
아브라함이 자기 힘으로 수고하고 애를 써서 이삭을 낳았는가요?
요셉이 말단 공무원부터 시작해서 승진하여 총리가 되었는가요?
다윗도 천부장에서 승진하여 올라가서 왕이 되었는가요?
모세도 바로의 왕자에서 왕권을 쟁취하여 위대한 능력의 지도자가 되었는가요?
요즘은 하나님의 기적을 안 믿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교회 안에도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그것은 성경을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으로 믿지 않고 높이지 않는데 기인한다.
말씀보다는 내 생각 내 지혜 내 경험이 모든 일을 결정하고 움직이는데 우선이다.
말씀을 읽으며 감동을 받고 위로를 받으며 소망을 가질려고 하지를 않는다.
믿음은 말씀을 통해 오기 때문에 성경과 멀어진 사람들은 믿음이 무너져내릴 수 밖에 없다.
불타고 훼파된 예루살렘 성벽과 같이, 황폐한 성읍과 같이 되고 만다.
내가 지금 수고하고 애를 써서 잘 나가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이스라엘의 모든 귀족들과 종교지도자들이 그렇게 하다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믿음이 형식화 되고 무너지면, 영혼이 메마르고 생명을 다하게 되고,
그러면 인생 전체가 안으로부터 무너질 날이 머지 않아 오고 만다.
기초가 서서히 땅 밑에서 함몰되면서 무너지는 빌딩과 같다.
믿음과 영혼은 하나이고, 그것은 우리 삶을 바치고 있는 기초이고 기둥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기적이 우리 인생 가운데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이 행하시도록 우리는 우리대로 준비하여야 한다.
우선 순위가 일 자체에 있지 않고 그 일을 하는 목적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사는 목적이 분명치 않은 사람은 아무렇게나 인생을 사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는 목적은 하나님의 뜻에 맞춰져야 한다.
그 뜻을 무시하고 대적하며 내 뜻이 우선인 사람들은 대가를 치룰 날이 반드시 온다.
1.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우리의 성결을 요구하신다.
우리의 성취와 업적이 아니라 우리의 성결을 하나님은 요구하시고 기뻐하신다.
사람들은 성취와 업적이 인생 사는 목적이 되고 있다.
하나님께도 그것을 달라고 기도하고, 그것을 자랑으로 삼고 칭찬을 기대하고
못 이룬 사람들을 멸시하고 그런 식으로 인생을 살면 되겠느냐고 가르칠려고 한다.
요단의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하나님이 요구하신 것은 우리의 성취가 아니라 성결이었다.
(수3: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업적이 아니라 거룩함이다.
(살전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지난 주에 했던 거룩함의 설교를 반복하지 않겠다.
우리의 심령과 삶의 거룩함이 하나님의 기적을 불러온다는 것을 꼭 기억하라.
우리의 업적과 성취의 끝에, 그것을 기초로 하여, 기적이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업적과 성취에 바치는 그 열정과 헌신만큼 거룩에 바치라고 권면하고 명령하신다.
거룩을 이루는 방법은 전에 다른 것에 바쳤던 것과 같이 이제 거룩에 그렇게 바치는 것이다.
그것이 로마서의 가르침이고 교훈이다.
(롬6:17-19)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그리스도인은 어떤 존재인지를 먼저 알아야 거룩함에 이를 수 있다.
우리는 믿기 전에는 본래 죄의 종이었다.
복음 진리를 듣고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닌 것이다. 의의 종인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것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으면 자녀답게 종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의의 종으로 사는 방법은 간단하다.
전에 죄의 종으로서 살 때 우리 지체(우리 몸과 마음 소유 모든 것)를 부정과 불법에 내준 것같이, 똑같은 열정과 헌신으로 우리 지체를 이제는 의에게 종으로 내주면 된다. 영어로 하면 “as --so”(전에 한 것과 같이 -- 이제는 그렇게) 이다.
성경은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고 권면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 의의 종으로써 거룩함에 이르라고 명령하고 있다.
우리가 거룩함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심령과 삶에 성결을 이루지 못한 이유는,
우리의 신분을 모르기 때문이고, 전에 하던 것과 같이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죄의 종으로써 살 때는 종일 일을 하고도 저녁에는 술마시고 밤새 춤추고 도박하고도
다음날 또 그 일을 반복하면서도 지칠 줄 모르고, 잘도 참고 고통도 인내하면서,
우리 지체, 즉 시간과 열정과 헌신을 바쳤다.
이제는 의의 종이 되었으니 그와 같은 열정과 헌신으로 우리 지체를 의에게 내주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우리가 의의 종인지 조차도 확신을 못하고, 여전히 죄의 종인 것처럼 살고 있다.
그리고 거룩함에 이르기 위해서 바쳐야 할 열정과 헌신은 최소한에 머물고 있다.
주일 날 교회 와서 예배 드리는 것조차 힘들어 하고 못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금요기도회에 나오는 것, 주일날 말씀공부하는 것조차 힘들어 하고 있다.
왜 우리가 거룩함에 이르지 못하는지, 왜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지
그 해답은 명확해 보인다.
세상과 사람 일엔 그렇게 열심이고 헌신적이면서
왜 기적과 형통이 달려 있는 의의 종으로 사는 삶에는 그렇게 자신을 아끼는 것일까?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일과 외에 어떻게 하루 생활을 보내는 있는가?
사탄이 보낸 티비와 오락거리에 잡담에 시간을 다 보내고 있지는 않는가?
말씀보고 기도하고 경건서적들을 읽는 경건생활에 바쳐야 할 시간들을
다 허비하고 있지는 않는가?
의의 종으로 살아 거룩함에 이르는 시작은 예배에 성실하게 임하는 것이다.
마음과 정성을 다해 준비하고 하나님을 뵈옵고 살아있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쑴을 듣는 시간임을 명심해야 한다.
예배 자세가 흐트러지고, 게을러지고 말씀과 기도에 멀어진 것은
저의 잘못된 가르침 때문인 것을 깨닫고 심각하게 회개하고 있다.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우리는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나를 통해 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청교도 신앙을 통해서 다시 교리를 공부하기 전까지는
저도 그 가르침이 잘못된 것인지를 확신하지 못했다.
우리의 오랜 고난의 세월을 해석해주고 위로 받기에는 너무도 좋은 가르침이어서
저도 최고의 가르침인줄 알고 그것을 ‘십자가복음’으로 여러분에게 가르치고 안심하였다.
그런데 그 가르침 이후 일어나는 현상은 제가 보기에도 너무 답답한 모습들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으면서,
그 게으름과 안일한 심령을 그 가르침으로 합리화하고 더욱 조장하는 것이었다.
청교도신학을 요 근래 공부하면서, 가르치면서, 그 가르침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성경을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모를 때는 할 수 없었지만, 알고 나서는 더 이상 그렇게 가르칠 수는 없다.
모든 것이 제 잘못이고 불찰이지만, 제가 바른 가르침을 접하고 깨어나듯이,
여러분도 그만 주무시고 깨어나시길 부탁드린다.
십자가복음(영적치유핵심)에 관한 자료들을 제 ‘컴’에서 결단의 표시로 다 지웠다.
여러분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려면 먼저 거룩함을 이루어야 한다.
이 거룩함을 위해 죄의 종으로 바쳤던 열정과 헌신과 물질을 똑같이 바쳐야 한다.
사실은 우리 주님이 이룩하신 일 때문에 우리는 훨씬 더 우리 지체를 드려야 한다.
의를 향한 이 헌신과 열정과 행함이 거룩함을 이루고 이 거룩함이 기적을 이룬다.
‘우리가 이런 생활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책임회피자요, 철없는 아이요,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이요 거짓말쟁이라’고 로이드 존스 목사는 단정하신다.
하고 싶어도 그렇게 행할 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존스 목사는 이렇게 말씀한다.
"여러분은 이미 모든 것을 받았다. 여러분에게는 또 다른 체험이 필요치 않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받았으며,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 안에’ 있는 것이다."
믿는 순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의의 종이 되었으니, 그 의의 권세 아래 있으니,
은혜의 왕노릇 아래 있으니, 우리는 그 힘을 힙입어 지금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걸 모르고 우리가 아니한다는 것이다.
2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제사장의 법궤를 따를 것을 요구하신다.
(수3:11)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나니
(수3:3)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수3:13)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가 무엇인가?
성경, 하나님의 말씀이다.
언약궤를 따른다는 것은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읽고 공부하고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수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시1:1-3)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형통과 기적을 이루는 방법은 분명히 나와 있다.
성경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며, 그의 성경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기적의 길, 형통의 길인 언약궤를 따르지 않는다.
내 마음과 지혜를 따르고 세상을 따라간다. 거기에는 멸망과 비참한 종말이 있을 뿐이다.
언약궤를 따르되 ‘제사장이 멘 언약궤’를 따라야 한다.
그 언약궤를 멘 제사장이 요단의 물을 밟았을 때 요단의 물은 갈라졌다.
나의 목자, 나의 제사장이 누군지 알고, 그 제사장이 멘 언약궤를 따라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일만 스승이 있지만 아비는 많지 않다고 바울은 말했다.
그 아비는 오직 복음으로 해산하는 수고를 하여 생명을 낳고 키운다고 하였다.
(요즘은 제사장들이 주의 언약궤를 메지 않고 세상의 탐욕의 궤를 메고 따라 오라고 한다.
그런데도 맹목적으로 잘들 따라간다.)
제사장이 멘 주의 언약궤와 멀어지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게 된다.
바울이 눈물로 호소하였는데도 그들은 자기들의 배를 섬기며 부끄러운 영광을 위해
멸망의 길로 달려가고 말았다.
제사장이 멘 언약궤와 멀어지면 탐욕의 우상을 섬기게 된다.
유대인들만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그리스도인들도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것은 마찬가지다.
야곱도 하나님의 임재와 기적이 함께 하시는 벧엘에 가기 전에 우상들을 버려야 했다.
(창35:2-5)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정결케 한후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다.)
우상을 섬기는 자는 목이 부러지고 멸망하고 만다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이다.
우리의 탐욕, 우상을 버리지 않으면 기적은 커녕 멸망과 황폐가 임하고 만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성경이 증명하는 데도 사람들은 마치 불나방이 타오르는 불길을
향해 뛰어드는 것처럼 불만 보고 뛰어들고 있다. 그들의 마지막 불은 지옥불이다.
무너지고 마는 바벨탑을 쌓느라 인생을 낭비할 것인가?
하나님이 기적을 통해 하루 아침에 이루는 것을 믿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에 헌신을 할 것인가?
그 선택이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수24:14-15)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상급과 축복은 말씀대로 행함으로 받는다.
제사장의 언약궤를 따르는 삶에 축복과 기적이 임한다.
말씀을 잘 배우고 그 말씀이 우리 성품과 삶의 기준과 원칙이 되어야 한다.
육체를 따르고 탐욕과 우상을 따르는 삶에는 사망과 패망과 비극이 임할 뿐이다.
3 하나님의 기적은 때를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의 때, 기적의 때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그 때는 하나님만이 아신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홍해가 갈라짐 같이, 요단이 갈라짐같이,
하나님은 반드시 속히 기적을 행하신다.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손이 능하신 것을 알게 하고
우리가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루 아침에 기적을 행하시고 세우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아브라함도, 요셉도, 모세도, 다윗도 하루 아침에 기적으로 세우셨다.
그리고 그들의 축복과 왕권은 영원한 것이었다.
과거와 오늘의 잣대로 내일을 예단하지 말라.
하나님의 기적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미래를 보지 못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원대한 계획 속에서 이루어가고 계신다.
우리가 할 일은 믿음을 잃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서는 것이다.
우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고,
제사장이 멘 언약궤를 따라 가는 것이다.
(고전15:57-5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포기하고 좌절하지 않아야 한다.
때가 이르면 기적을 이루실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기적으로 홍해가 갈라지고 요단이 갈라지고 여리고가 무너질 것을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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