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권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바울이었다.
그를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담대함으로 대하였다.
1.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시킨 성품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 담대함이어야 한다.
온유하고 관용하면서도 우리는 진리에 대하여는 담대해야 한다.
온유와 담대함의 균형이 성숙을 가늠하는 잣대일 수 있다.
용기와 배려의 균형이 성숙이라고 하는 정의들은 성경의 원리를 본뜬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품들은 육체의 열매들이 아니다.
타고난 성품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혹 있으나 겉만 그렇지 속은 아니다.
이 성품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빚은 성령의 열매들이다.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생명과 그 능력으로 변화시킨 성품의 특징들이다.
우리가 육체의 일들을 버릴 때 성령이 맺어주는 열매들이다.
(갈 5:16-23)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않아야 한다.
온유와 관용 담대함의 반대는 혈기와 분노와 악의일 것이다.
육신에 속한 무기이다. 육신을 따라 싸우는 무기일 것이다.
(엡 4:26-32)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정욕을 이미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갈 5:24-6:1)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체의 혈기와 분노가 아니라,
우리의 변화된 성품,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럴려면 우리는 말씀과 성령의 열매로 성숙해가야 한다.
2.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 말씀이어야 한다.
복음은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과 하나님의 능력은 항상 함께 가야 한다.
복음이 구원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없다면 복음은 죽은 소리에 불과하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사람의 지혜로가 아니고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했다고 말한다.
(고전 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살전 1:5)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복음은 바로 그리스도에 관한 기쁜 소식이다.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은 그 중심에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이다.
그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의 능력이고 지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전 1:18-24)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그리스도를 향해 있고 위해 있고, 그리스도가 그 중심에 있다.
그의 사랑하시는 자 그리스도를 보내신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우리의 죄의 용서와 구원을 위해서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품에 영원히 계시다가 자원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
우리의 죄와 하나님의 의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기 위해,
죄로 가로막혀 있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기 위해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고 승천하여 지금은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권세를 받아 우주와 인간을 통치하시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
이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전할 때 주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역사하고 증거하여 주셨다.
(막 16: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우리가 싸우는 무기로 써야 할 것이 바로 이 말씀의 무기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여 역사하는 말씀의 무기이다.
에베소서는 이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하였다.
복음과 말씀이 자동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이 역사하셔야만 한다.
말씀과 성령이 함께 하실 때만이 그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이 되어 역사하실 수 있다.
(렘 23:2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우리는 이 능력의 말씀으로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려야 하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이론들을 무너뜨려야 한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해야 한다.
19세기 말에 청교도들의 책들이 출판이 끊어진 이래 12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고 왜곡하는 지식들이 교회에 홍수처럼 밀려와 사탄의 왕국을 형성하고 있다. 사탄의 권세 아래 견고한 진을 형성하고 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생각과 이론들인데도 광명의 천사의 옷을 입고 복음의 행세를 하고 있다.
이 대적들의 모든 생각과 이론들을 무너뜨릴려면, 그 견고한 진을 무너뜨릴려면,
혼잡하지 않은 말씀, 왜곡되지 않은 순전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종교개혁 이후 300년동안, 온갖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교회를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위에,
그리스도를 머릿돌로, 교회를 다시 세웠던 청교도들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
혼잡하고 왜곡된 복음들이 주류가 되고 대세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도 또한 그렇게 전염되고 혼탁되었기 때문에
말씀이 얼마나 오염되었는지 우리는 모르고 있다.
청교도들의 성경해석을 만나 보아야만 그 더러움의 정도를 알 수가 있다.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만이 하나님의 능력이 될 수 있다.
견고한 진을 무너뜨릴 수 있다. 우리가 쓰는 무기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구원계시인 말씀을 순수한 교리체계로 다시 공부해야 한다.
말씀이 견고한 대적의 진을 무너뜨리는 가장 확실한 우리의 무기, 하나님의 능력인데도,
그리스도인들이 이 무기를 쓰기 위해 도무지 헌신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말씀에 대한 헌신과 노력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은 흔들리고 침체에 빠질 수밖에 없다.
(롬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순수한 말씀이 내 안에 확고히 없으면 미신처럼 예수를 믿게 되고 탐심이 우상이 되고 만다.
탐심을 따라 우상숭배하지 않고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말씀을 새롭게 공부하고 연구하고 묵상하고 그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 인생과 가정의 행복과 형통은 이 순수한 말씀에의 헌신에 좌우된다.
이스라엘의 형통과 멸망이 이 말씀에의 순종여부에 좌우되었다.
그것은 지금의 그리스도인에게도 똑같은 것이다.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다른 하나님이 아닌 것이다.
(겔 20:21)그러나 그 자손이 내게 반역하여 사람이 지켜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따르지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더럽힌지라 이에 내가 그들에게 내 분노를 쏟으며 그들에게 내 진노를 이루리라
이 순수한 말씀에의 헌신에 따라 사울의 집처럼 점점 쇠약해져가는 가정이 있을 것이고
다윗의 집처럼 점점 강성하여 가는 가정이 있을 것이다.
시편 1편의 말씀과 여호수아 1:8의 말씀을 평생동안 내 삶의 기둥으로 삼기 바란다.
(수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시 1:1-3)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예수님도 동일한 말씀을 하신 것이다.
(마 7:24-26)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탐심과 달음박질이 복과 형통을 이루지 않고 말씀에의 헌신과 실천이 복과 형통을 이룬다.
그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행복과 성공의 비결이다.
우리 집은 왜 이럴까 하고 탄식하기 전에 우리를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의 관심과 뜻이 어디에 있는지 더 늦어지기 전에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이 내리기 전에 우리의 삶을 돌이켜야 한다.
3.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하나님의 능력인 성령의 역사이어야 한다.
말씀 가운데 삶 가운데 성령의 역사가 있을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의 도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행 5:32)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순종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이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신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소원과 감동을 따라 사는 이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주신다.
(빌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술과 육체에 취하지 않는 이들에게 성령의 충만을 주신다.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술과 육체에 취하는 자들에게는 방탕과 멸망으로 가게 하시고
성령의 인도를 따르고 순종하는 삶을 사는 이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주신다.
그물과 모든 것을 즉각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던 이들,
3년반동안 주님과 공동생활을 하며 그분의 뜻과 훈련에 순종하였던 이들,
이들이 전심으로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은 약속된 성령을 부어주시고 충만케 하셨다.
사람들은 이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만사 제쳐놓고
기도만 하면 성령의 능력을 주시는 줄 알고 디립다 매달리는데
그렇게 해서 받는 것들은 보면 대체로 악령의 역사이다.
말씀에의 순종과 경건의 훈련에는 헌신할 줄 모르면서
밤새 기도하고 매달린다고 해서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시는 것이 아니다.
청교도들의 시대에 왜 성령의 특별한 부으심, 부흥이 많았겠는가?
그들의 말씀에의 헌신과 삶에서의 순종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씀에의 헌신과 삶에서의 순종도 없고, 기도도 없는데, 무엇으로 충만해지겠는가?
육체에 취할 수 밖에 없고 방탕과 침체로 충만해질 수 밖에 없다.
결어
우리는 육신으로 살지만 육신을 따라 살지 않아야 한다.
믿음의 선한 싸움은 육체의 무기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혈기와 분노와 악의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육체의 충돌과 육체의 충만을 가져올 뿐이다.
우리는 영적인 무기,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싸워야 한다.
우리의 변화되고 새로운 성품,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 담대함으로 싸워야 한다.
온유와 관용으로 살되, 진리와 원칙에 대하여는 담대함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숙하여 균형을 이룬 성품, 그것이 우리의 싸우는 무기이다.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은 말씀에의 헌신과 실천 속에 나타난다.
이 말씀의 능력이 우리의 싸우는 무기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고 삶 가운데서 지켜 행하는 복된 사람이 되자.
하나님의 능력은 또한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서 나타난다.
성령의 충만을 가장 방해하는 것이 육체로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다.
혈기와 분노와 악의, 더럽고 추한 육체의 열매들을 버려야 한다.
말씀에의 헌신 순종의 삶에 성령의 충만함을 부어주신다.
그 위에 기도의 삶에 성령의 충만함을 부어주신다.
우리가 싸우는 무기는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어야 한다.
온유와 담대함의 균형된 성품, 말씀에의 헌신, 순종과 기도의 삶에,
이 능력이 나타남을 믿고, 이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의 싸우는 무기로 쓰자.
이 무기로, 견고한 진,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한 이론과 생각들을 무너뜨리고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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