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자녀, 육체의 자녀
사도 바울은 이삭과 이스마엘을 비교함으로써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그리스도인들과 율법을 신뢰하는 유대인들과의 차이를 설명한다.
'(22,23절).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난 이스마엘이요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난” 이삭이다.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났고' 즉 자연의 일반 법칙에 의하여 났지만, 이삭은 자연의 법칙으로는 사라가 아들을 낳을 수 없을 때에 “약속을 따라 났다.”
하갈과 사라, 이 둘은 두 언약을 의미한다.
하갈은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다. 율법이다. 옛 언약이다.
현재의 유대인들은 그 언약에 집착하고 있으며 그들의 자손들도 그 언약에 예속되어 있다.
하갈은 시내산의 율법과 현재의 예루살렘을 의미하고 그 예속된 종들을 낳았다.
그러나 사라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예시하고, 거기로부터 약속의 아들을 낳은 자이다.
그녀는 율법의 멍에로부터 자유로운 자로서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다.” 새 언약이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낳아진 모든 자녀들의 어머니이다.
사도는 이사야 54:1의 말씀을 인용한다.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그렇지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27절).
많다는 것은 번성함을 말하지만 풍성한 축복과 영광을 말한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28절).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그리스도인들은 약속의 자녀들이다.
약속된 유업을 받을 자격이 있다.
바울은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그들도 지금 그와 같은 핍박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계집 종과 그의 아들을 내어 좇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창 21:10) 하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날이 온다.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려고 하는 계집 종과 그의 아들은 내어 좇기고 만다.
그들은 자유하는 여자, 사라의 아들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한다.
결론은 이것이다.
“그런 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31절).
여기서 우리는 육체의 자녀와 약속의 자녀의 구분을 보게 된다.
육체의 자녀는 육체를 따라 났고 그래서 율법의 종이 되어 살고자 한다.
율법은 자기의 의를 대표한다.
율법의 종들은 자기의 의로운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을 받고자 한다.
그들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율법은 행위로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고
죄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의인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으로 주신 것이다.
(롬 3:20-22)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약속의 자녀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이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의롭다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말한다.
육체의 자녀는 출신부터가 육신이라 육신을 따라 살게 마련이다.
(엡 2:2-3)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육체의 자녀들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고,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행한다.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산다. 다수가 주류가 사는 길이다.
본질상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진노의 자녀들이다.
그 행위의 배후에는 공중 권세 잡은 자가 있어서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다.
그러나 약속의 자녀는 약속을 따라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난 사람들이다.
(엡 2:1,4-9)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출신 성분부터가 다른 우리는 이제 육체의 자녀로서 살았던 폐습관들을 버려야 한다.
더 이상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대로 살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 자유로 종의 멍에를 매거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공중 권세 잡은 자,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삼킴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벧전 5:8-10)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고난을 통하여 우리는 온전하게 되고 굳건하게 되고 견고해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근신하고 깨어서 대적 마귀의 유혹과 궤계를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대적해야 한다.
그러할 때,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이 일을 도우실 것이다.
베드로는 이제 우리가 더 이상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벧전 4:1-3)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우리가 더 이상 육체의 자녀 율법의 종 죄의 종이 아닌 것을 확실히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우리는 육체의 성품과 습관들을 버리고 벗어버려야 한다.
우리의 많은 어려움들은 약속의 자녀로서 충실한 삶을 살지 않는 데서 기인한다.
약속은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루신다.
그렇지만 때가 되어야 한다.
내가 급하다고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약속의 자녀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25년을 기다려야 했고, 모세는 40년을 기다려야 했다.
요셉은 13년을 기다려야 했고, 다윗, 바울도 10여년을 기다려야 했다.
종의 자녀들은 우선 형통하는 것 같다.
브닌나는 일찍암치 아들을 낳아 한나를 괴롭혔다.
브닌나의 아들은 먼저 낳았을 뿐이지 이름도 성경은 말하지 않다.
약속의 아들 사무엘은 한나의 오랜 고통과 순종을 통해 낳았다.
세례 요한도 약속의 아들이어서 기다림 끝에 주셨다.
다윗은 여덟째 아들이다. 요셉은 열한 번째 아들이다.
고난 끝에 기다림 끝에 낳은 약속의 자녀가 축복과 영광을 이룬다.
때를 기다리는 동안 긴 고난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베들레헴, 나사렛, 갈릴리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간다.
십자가 후에 부활 승천의 영광이 온다.
주님을 본받아, 베들레헴, 나사렛, 갈릴리 시절을 잘 통과해야 한다.
다윗처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잘 통과해야 한다.
바울처럼 아라비아 시절을 잘 통과해야 한다.
요셉처럼 노예시절 감옥시절을 잘 통과해야 한다.
사람들은 그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내 힘으로 이룰려고 한다.
아브라함도 약속을 받았지만 10년이 넘으니까 초조해졌다.
사라가 나이들어 자연적으로는 출산할 능력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사라의 권유로 여종 하갈을 맞아들여 아들을 낳고 만다. 그가 이스마엘이다.
아브라함의 나이 86세였다. 약속을 받은 것은 그의 나이 75세 때였다.
세상은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 육체로 모든 것을 이루고자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육체의 습관들을 내려놓지 못하고 그들의 풍조를 따르고 있다.
우리 힘으로 육체로 낳는 것들은 이스마엘이다.
아들은 아들인데 종의 아들이고 율법의 아들이요 죄의 아들이고 하갈의 아들이다.
우리는 이스마엘을 낳아놓고 이삭으로 착각한다.
이스마엘은 결코 이삭이 될 수 없다.
결국 그 여종과 아들은 좇겨나고 만다.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이 시들고 만다.
그러나 이삭이 낳기 전까지는 이스마엘이 아들 행세를 하고 온갖 세도를 다 부리는 것이다.
이삭이 나와도 이스마엘들은 그 기득권을 가지고 이삭들을 박해하는 것이 역사이다.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해 온 것이 역사이다. 구속사이다.
지금 내가 낳고 있는 것이 이스마엘인지, 이삭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이스마엘을 날려고 육체와 힘을 다해 수고하고 있지 않는가?
아니면, 이삭을 기다리며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고 있는가?
고난이 인내와 연단을 낳고 약속의 소망을 이룬다는 것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사는가?
아니면, 고난은 쳐부셔야 할 원수니까 어떻게든 해결하느라 골몰하고 있지는 않는가?
달콤한 소리를 누가 들려주면 그것을 붙잡고 뛰어다니느라 시간을 다 쓰고 있지는 않은가?
고난은 인내하며 연단을 이루라는 목적으로 주시는 것이다.
우리의 육체의 옛 사고방식과 생활습관을 고치라고 주시는 것이 고난이다.
너는 약속의 자녀로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고 영화롭게 되었으니
너희 삶을 의에게 종으로 드리고 너희 성품이 그리스도를 닮는데 드리라고 하신다
우리가 순종하지 않으니 하나님은 고난을 주셔서 이 일을 이루어가실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고난의 목적은 모르고 그 고난을 해결해 보겠다고 동분서주하고
사람들을 의지하고 애굽으로 애굽으로만 달려간다.
그렇게 해서, 미혹의 영에 끌려다니다가 세월만 낭비하고 사람꼴만 더 우습게 되고 만다.
고난이 오면 나를 돌아보고 인내하여야 한다.
달콤한 거짓 선지자들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아버지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이지 우리의 성취가 아니다.
거룩함을 이루면 아버지는 축복과 영광으로 약속을 이루어 주신다.
약속의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
영광을 이루기 위해서는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것이 주님의 뜻이다.
(롬 8:17-18)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죄를 지어서 받는 고난 말고, 뜻을 이루기 위해서 받는 고난이 의미가 있다.
선을 행하다가 받는 고난이어야 한다.
죄 때문에 오는 고난은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해야 한다.
(벧전 2:19-21)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선을 행하다가, 주님의 뜻을 행하다가 받는 고난이어야 한다.
그 고난이 올 때는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갈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분의 성품을 닮아가다가 받는 고난이어야 한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분의 형상, 그분의 성품을 닮기 위해서는 헌신과 수고가 따라야만 한다.
육신의 안일함과 평안만을 좇다가는 그분의 성품을 결코 닮아갈 수 없다.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쏟아서,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만 한다.
(갈 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목자는 가르침에, 성도는 배우는 일에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그 형상을 이룰 수 있다.
복음으로 생명을 낳는 아버지는 많지 않다고 하였다.
(고전 4:15-16)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스승을 많이 둔 사람들은 그 만큼 헷갈리게 된다.
본받아야 할 아버지, 나를 복음으로 낳아줄 아버지는 하나라고 바울은 말씀하는 것이다.
많은 스승을 둔 것을 자랑하지 말고 일만 스승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내 목자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거짓 선지자의 음성을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있는 이리들’이고,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다.
약속의 자녀들은 오늘도 약속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순종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지금도 약속을 이루어가시기 위해서 내 주변에서 일하고 계신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신다”고 말씀하셨다.
내 육신의 평안과 성취가 먼저가 아니라, 오늘 보이시며 일하시는 아버지의 뜻이 먼저이다.
우리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이 오늘 하시는 일을 보아야 한다.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면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떠오르는 구름을 따라 가야 하는 것이다.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아버지가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뜻을 거역하는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고 하신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씀이다.
우리는 제사하는 수준에서 만족하지만 하나님은 순종의 수준을 요구하신다.
오늘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이삭을 드림으로 순종하는 아브라함을 본받아야 한다.
오늘 네게 명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지의 여부가 축복과 그 순위를 결정한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되는 순위의 변동이 일어난다.
약속의 자녀는 구름을 따라 성막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구름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순종하면서
성막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약속의 자녀들이다.
그러면서도 주님이 주신 작은 직임에 충실하는 사람들이다.
(민 9:2-23)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하였으니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우리의 예루살렘은 여기가 아니다.
약속을 바라 보아야 한다.
고난의 여정 끝에 광야의 여정 끝에 도달하는 가나안의 약속을 바라보아야 한다.
지금은 잉태하지 못하는 여인같지만,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광야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을 날“이 온다.
아들이 없어서 설움받던 한나가 사무엘을 낳을 날이 온다.
십자가의 고난 끝에 부활과 승천의 영광의 날이 온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끝에, 아둘람 시절 끝에, 다윗의 왕권의 날이 온다.
작은 가지에 불과한 것 같았는데
때가 되니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고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룰 날이 온다.
때가 되면 여호와 하나님이 속히 이루신다.
홍해를 가르고 요단을 가르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며
여호와의 능하신 손으로 하루 아침에 이룰 날이 온다.
(수 4:24)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약속의 자녀들은 안 되는 것 같지만, 크고 풍성한 축복들을 낳게 될 날이 온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의 자녀인 것을 믿고
약속의 자녀답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법도와 뜻을 따라, 믿음과 순종으로 살자.
육체의 자녀들 같은 옛 성품 옛 습관들을 영원히 벗어 버리자.
약속의 자녀들에게 약속은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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