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강대식목사

야고보 게바 요한 (갈 2:9)

새벽지기1 2016. 8. 8. 07:54

 

오늘 본문 중,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에 집중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오순절날 성령을 주님께서 부어주신 후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졌고 크게 부흥하였다.   

이 교회의 기둥 세 사람이 있으니 그들이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이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이다.

처음엔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믿지 않다가

주님이 부활하시고 오순절 성령을 받고서 변화되어 큰 기둥이 된 것이다.

 

야고보와 형제들은 예수님 공생애 사역하시는 동안에 그분을 믿지 않았다.

(마 13:55-58)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그러던 형제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나고 변화되어 교회의 기둥이 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교훈이 있다.

어떤 사람이 교회의 기둥이 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1. 우리의 타고난 성품으로는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없다. 

 

아무리 타고난 성품이 좋다고 해도 그걸로 그리스도인이 되거나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없다.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여

성령으로 거듭나고 변화된 성품으로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거듭나고 변화된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타고난 성품이 어떠한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수님이 산산수훈에서 복이 있는 사람의 성품이라고 말씀하신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함도, 온유하고 겸손함도, 의에 주리고 목마름도,

타고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성령으로 변화된 성품으로 이루어간다.

하나님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자녀 삼아주신 최종 목적지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온전히 닮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을 온전히 닮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거기에 지혜와 물질과 능력을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큰 일에 사용하신다.

요셉과 같이 다윗과 같이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이다.

내가 가진 능력과 소유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을 보면 야고보의 위치가 베드로 요한보다 더 커 보인다.

(행 12:17)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행 15: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행 21: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고전 15: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갈 1: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갈 2: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이 야고보는 야고보서를 쓴 장본인이다.

(약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유다서를 쓴 야고보의 동생도 성령 받고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

(유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게바 베드로도 성질 급하고 연약한 시몬이었다.

주님께서 그를 보자 그의 이름을 반석이라는 게바로 바꾸어 주었다.

과연 그는 오순절 성령 세례를 받고서는 변화되어 교회의 기둥이 되었다.

 

그가 어부였지 무슨 지혜와 능력이 있었는가?

주님과 함께 동거하며 3년반 동안 훈련 받고 연단받은 위에 성령을 부어주셔서

그를 변화시키시고 그를 큰 기둥으로 일군으로 사용하셨다.

무식한 어부였는데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를 부어주셔서 베드로전후서를 기록하게 하셨다.

 

요한도 무식한 어부였고 타고난 성품은 급하여서 우레의 아들이란 별명을 얻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어 사랑의 요한이 되었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요한복음과 요한123서와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다.

 

교회의 기둥은 타고난 성품이나 가진 소유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요즘은 교회가 세상처럼 타락하여 세상과 똑같이 그런 잣대로 사람을 보고

그런 사람들을 우대하는 것을 보는데 성경과는 거리가 먼 행태들이다.

 

요셉도 다윗도 양치는 목동 출신들이었다.

야고보는 나사렛 목수의 아들이었다.

베드로와 요한은 갈릴리 해변의 어부들이었다.

 

그들이 타고난 성품과 출신과 그들이 가진 지혜와 능력으로 쓰임 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오늘 교회들은 이런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고 우대하고 있다.

 

오늘날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 같은 사람들을 천시하고 소망이 없는 것처럼

기죽이고 차별하는 것은 성경과 하나님과 너무나 거리가 먼 사고방식이고 가치관이다.

하나님 아버지가 보시고 예수님이 보시고 성령님이 보시고 통탄할 일이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하나님의 자녀라면, 성령으로 거듭나고 변화해가는 과정에 있다면,

이런 세상적인 가치관을 제발 제발 버리라.

그런 세상적인 기준 때문에 기죽거나 열등감에 절대로 빠지지 마시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의인이라고, 내 자녀라고,

성령으로 인을 쳐주신 사람들이다.

그 목적지와 결론을 알기 때문에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이다.

 

이 신분과 위치를 결코 잊지 마시라.

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위치와 신분을 잊어버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도 생활을 통 안하고, 말씀을 읽고 연구하지 않으니까

세상 사고방식들이 여과되지 않고 그대로 밀려들어와 그 포로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 승부는, 결론은, 세상과 사람들에 의해서 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안에서 모든 축복과 영광이 판가름 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2. 예루살렘 교회에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 한가족교회에 이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이 있기를 소원한다.

 

예수님도 열 두 제자를 삼으셨지만 중요한 일에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 만을 데리고 다니셨다.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릴 때도, 변화산에서의 사건 때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며 마지막 기도하실 때도, 이 세 기둥과 같이 하셨다.

 

이 야고보 사도는 요한의 형제이고 제일 먼저 순교당한 분이시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이 야고보를 대신하여 예루살렘 기둥으로 그분의 형제 야고보를

세우셨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도 교회를 위해서 다 필요한 지체들이지만 이왕이면 기둥이 되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셔서, 선의의 경쟁을 하셔서, 세 기둥 중의 한 분이 되시기를 바란다.

 

3. 여기서 우리는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교회에만 세 기둥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 사람에게도 자기를 세워주는 세 기둥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각 사람도 성전이고 교회이기 때문이다.

예수님만 세 제자 기둥을 세우시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만 세 기둥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분을 닮아 우리 자신의 성전을 위해 세 기둥을 세워가야 한다.

 

예수님과 교회와 우리 자신의 기둥은 한마디로 제자들이다.

우리 자신의 성전이 견고하게 세워질 수 있는, 세 기둥, 제자들을, 세워가는 것을

여러분의 신앙 목표로 삼으시기를 간곡히 요청한다.

나의 기둥, 나의 야고보 게바 요한을 제자로 낳아 기둥을 삼으시기 바란다.

 

한 기둥부터 세워가면 못 세울 것도 없다.

내 타고난 성품 내 능력으로 세워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자를 삼으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은 우리 모두에게 내리신 대위임령이다.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제자를 삼고 기둥을 세우는 것은 한 생명을 낳고 세우고 길르는 일이다.

내 인생의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라.

이 일은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하는 일이다.

-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의 수고를 하노니”(갈 4:19)

 

제자를 낳아 기둥을 세울려면 정기적으로 만나고 함께 더불어 지내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공동생활을 하셨다.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삶의 전달이 이루어질려면 당연한 일이다.

 

그 유익은, 제자보다도, 내가 참된 제자로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데 있다.

그래서 제자 삼는 일은, 나의 기둥 세우는 일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이다.

나의 성숙을 위해서, 애를 낳아서 길러봐야 성숙해진다.

 

기둥 제자를 낳고 세우는 것은, 일만 스승이 아니라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고전 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무얼로 낳느냐? 복음으로 낳는다.

예수님이 분부하신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함으로 낳는다.

이 일을 할 때 모든 권세를 가지고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나의 기둥, 나의 야고보 게바 요한을 세우는 것은 마디와 힘줄로 연합되는 길이다.

(골 2: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왜 교회가 수는 많아도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느냐?

모래알처럼 다 흩어져서 예수님을 머리로 하여 마디와 힘줄로 연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디와 힘줄로 연합하는 길은 나의 야고보 게바 요한으로 뭉치는 길 밖에 없다.

 

세 기둥 제자를 낳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것이고, 보물을 하늘에 쌓아 놓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열매를 가장 기뻐하신다. 세 기둥 제자를 세우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갈 때

하나님은 함께 하시고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

 

내가 더할려고 모을려고 잘되게 할려고 그렇게 애쓰는 것들이 별 볼일 없이 끝나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헌신할 때

하나님은 모든 걸 더해주시고 잘되게 해주시고

영광 가운데 우리 모든 쓸 것을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마디와 힘줄로 연합된 나의 세 기둥 제자들은 나의 평생의 가족들이다. 한가족이다.

나의 야고보, 게바, 요한은 어디 있는가?

나의 마디와 힘줄이 어디 있는가?

구하시고 찾으시고 문을 두드리시기 바란다.

 

한 기둥 제자부터 시작하시기 바란다.

한 기둥 세우기가 어렵지, 그 다음 기둥 세우는 것은 훨씬 수월한다.

세 기둥이 나를 받쳐 주어야 내가 견고하게 설 수 있다.

 

제자들은 내가 아버지가 됨으로 그들은 나의 자녀들이다.

세 기둥이 세워지면 그들도 기둥 제자들을 낳을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작업을 하십시오.

영적인 자녀를 낳고 그 자녀들이 손자들을 낳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게 마디와 힘줄로 한가족으로 세워지는 교회만이

지역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고, 세상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하나님은 이 생명을 낳고 기둥을 세우는 일을 가장 기뻐하시고

아낌없이 지원을 하실 것이고 축복과 영광으로 함께 하실 것이다.

 

성경에서 “낳고 낳고” 하는 족보가 많은 것은

생명을 낳음으로서 하나님나라가 세워지고 확장되기 때문이다.

 

수만 늘리고 조직만 키울려는 교회가 아니라

생명을 낳고 키우는 교회, 그래서 마디와 힘줄로 연합되어 건강하게 자라는 교회,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