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옥한흠목사

호베르토 총회장

새벽지기1 2016. 8. 19. 11:36

한때 카메라를 손에 들고 북미의 황량한 사막을 헤맬 때가 있었다. 마음을 끌 만한 것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 그 곳에서 종종 눈물이 나도록 감동을 주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난다. 외롭게 피어 하늘거리는 한 송이의 들국화, 무언가를 열심히 찾아 눈을 껌뻑이고 있는 도롱뇽, 저물어 가는 저녁 햇살을 받아 자지러지도록 아리따운 모래 능선의 곡선미 등. 이처럼 세상에는 겉으로 보기에는 살벌하지만 아직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들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어서 살맛을 느끼게 한다. 그 감동이 소망으로 이어지고 그래서 지금도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는 말을 감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달 전 제자훈련 지도자세미나를 인도하면서 나는 사막에서 느낀 것과는 또 다른 엄청난 감동을 맛보는 축복을 경험할 수 있었다. 지구의 반대쪽이라 할 수 있는 멀고 먼 브라질에서 6명의 목사와 선교사들이 세미나를 참석하기 위해 달려 온 것이다. 브라질 현지 목사가 셋이고 동시통역을 담당할 교포 2세 목사가 둘이고 다른 한 분은 평신도 선교사였다. 그들 가운데는 여기까지 오는 데 닷새 이상 걸린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브라질이라는 나라가 워낙 넓어서 그렇단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저녁 식사에 그들을 초대했다.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호베르토 목사 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3,500여 개 교회로 구성된 브라질 장로교 교단의 4년 임기의 총회장이었다. 그리고 역사신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면서 그 교단의 8개 신학교를 총괄하고 있는 책임자였다. 50대 중반의 나이인데도 그는 시간마다 강의를 열심히 듣고 미비한 점들이 있으면 나중에 통역하는 목사한테 질문을 하곤 한다고 했다. 

 
내가 감동받은 것은 총회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목사가 수십만 리 길을 멀다 않고 제자훈련이 무엇인지를 배우기 위해 달려 왔다는 사실이다. 그는 오늘날 건전하지 못한 네오 팬티코스탈 운동으로 병들어 가고 있는 브라질 교회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성경적인 해답이 제자훈련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제자훈련에 관한 도서들과 교재들을 빨리 모국어인 포르투갈어로 번역해서 자기 교단 목회자들을 제대로 훈련시키고 싶다고 했다. 이 일을 위해 나와 훈련원 팀이 하루 빨리 브라질에 와서 자기를 도와 달라며 부탁을 간곡하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보면서 한국에서 흔히 보는 많은 총회장들을 생각했다. 내가 알기로는 한국에서 지금까지 총회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세미나에 참석한 목사는 없었다. 어쩌면 그런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인지 모른다. 일반적으로 총회장들은 대단한 명예로 알고 있는 자신의 직함을 이용하여 이런 저런 자리에 얼굴을 내밀고 정치하기에 바쁜 나날을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새 시대를 열어갈 교회의 건강과 부흥을 위해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한 주간 동안 강의실에 앉아 있는 그런 대단한 총회장을 보는 복은 아직 한국 교회가 누리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먼 나라에까지 가서 고국의 교회를 걱정하며 며칠을 젊은이들 틈에 끼여 앉아 노트를 해 가면서 열심히 공부하는 총회장, 아마 이런 총회장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환상일지 모른다. 

 
나는 호베르토 총회장의 존재를 보면서 21세기 세계 교회를 놓고 성급하게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런 인물들이 헌신하는 교회라면 그 교회가 어느 나라에 있든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도 모든 지도자들이 자신의 명예보다 평신도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드는 일을 위해 열 개의 바다라도 멀다 않고 건너가서 배우려는 열정을 가지고 헌신하는 날이 오면 세속화로 병들어가고 있는 오늘의 교회 체질을 건강하게 바꾸어 놓을 뿐 아니라 사상적으로, 도덕적으로 휘청거리고 있는 이 나라를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