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옥한흠목사

평신도 성직자?

새벽지기1 2016. 8. 21. 07:48


교회사를 들여다보면 성직자 계급이 특권의식을 가지고 교회의 사역을 독점하기 시작한 것은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자리 잡기 이전인 3세기부터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유명한 교부 터틀리안(160~220)은 이런 점을 문제 삼고 나온 최초의 교회 지도자였던 것 같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평신도는 성직자가 아닌가? … 직분은 특별히 부름 받아 성별되었다는 점에서 일반 신도들과 다르다. 그러나 성직자가 없는 곳에서 예배를 주관하고 세례를 베풀게 된다면 당신이 성직자가 되지 않겠는가? 평신도만 있는 곳에서도 교회는 존재할 수 있다. … 필요하다면 당신 스스로 성직자가 될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는 성직자들의 독재에 반대하여 ‘만인사제직’을 주장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는 중세 종교개혁을 미리 예견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는 성직자와 평신도가 신분은 같으나 직분은 다르다고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터틀리안의 ‘평신도는 성직자다’라는 식의 직설적인 표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아무리 평신도를 열심히 깨워 놓아도 그들은 여전히 교역자의 손에서 돌봄을 받아야 할 영적인 자녀들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성직자들이 봉사하고 있는 거룩한 영적 사역에 동참할 수 있는 권리마저 박탈당해야 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며칠 전 나는 10년이 넘게 사랑의교회에서 순장 일을 충성스럽게 하고 있는 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일급장애를 가진 아들을 25년 동안 가슴에 품고 사랑을 쏟으며 돌보고 있는 특별한 사람들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그들이 순원들을 어떻게 섬기고 있는지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부인이 섬기고 있는 다락방에는 10여 명의 순원 가운데 우울증 환자가 3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수년 동안 그들을 품고 영적 씨름을 하였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순장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은 말 안 해도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 그는 놀라운 간증을 했다. 수년이 지난 지금 둘은 다 나았고 한 사람만 아직 고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믿음이 별로 없는 순원이 임신 9개월이 되었는데 병원에서 진단을 해 보니 태아의 다리 하나가 기형이라는 것이었다. 의사는 그래도 아이를 낳을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를 부모가 빨리 결정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너무 당황한 산모는 제일 먼저 순장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울면서 의논을 했다. 

 
순장은 모든 순원들과 교회 중보기도팀에게 연락해서 특별 기도를 부탁했다. 그리고 자기도 따로 시간을 정해 놓고 아기를 고쳐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다고 한다. “목사님, 그런 상황이 되니까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쏟으며 기도하셨다는 말씀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놀랍게도 얼마 후 태어난 아이는 정상이었다. 의사는 기적이라고 했다. 그 아이는 지금 잘 자라고 있다고 한다.


남편은 순원 몇 명이 지방과 외국으로 이사를 가고 지금은 3명만 남아 있는 다락방을 인도하고 있다. 그는 무역업을 하는 사람이라 주초에 외국으로 나갔다가 목요일 아니면 금요일에 들어오는 생활을 반복해야 하는 몹시 바쁘고 피곤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토요일 다락방을 빠지지 않고 인도하고 있는데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순원들이 겨울 방학이 너무 길다고 불평한다면서 웃음 짓는 그의 모습이 얼마나 자랑스러워 보였는지 모른다. 

 
나는 이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직자가 따로 있나? 주님 보시기에는 저런 사람이 진짜 성직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언제 우울증 환자들을 품고 수년 동안 씨름한 일이 있는가? 내가 언제 태아의 장애를 고쳐 달라고 피를 토하듯이 매달려 본 일이 있는가? 내가 언제 매주마다 외국을 드나드는 바쁜 몸으로 몇 명 안 되는 영혼들을 위해 헌신해 본 일이 있는가? 그것도 자기 돈 써 가면서 충성하지 않는가? 나는 어디 가서 설교를 한번 해도 수고비(?)를 받는 사람 아닌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성령께서 나와 같은 성직자를 더 좋아하실까 아니면 저렇게 충성하는 평신도를 더 좋아하실까? 만일 우리가 다같이 심판대 앞에 선다면 주님께서 누구 손을 먼저 들어 주실까? 솔직히 나는 두렵다. 내가 목사가 되었다는 것이 정말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