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옥한흠목사

비전보다 자신을 먼저 팔기

새벽지기1 2016. 8. 12. 07:56


얼마 전에 존 맥스웰(John Maxwell) 목사가 한국을 다녀갔다.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리더십의 최고 권위자다. 나도 그의 팬 가운데 하나다. 그가 98년 미국의 유명한 월간 잡지 『Preaching』 2월호에서 편집자와 대담한 내용을 읽은 일이 있다. 그 자리에서 그가 한 말 가운데 몇 마디는 수년이 흘러간 지금까지 나의 뇌리 속에 깊이 박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매우 강한 인상을 받았고, 공감하는 내용이라 CAL세미나 강의를 할 때마다 한번씩은 인용을 하고 있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 본다. “목사는 비전을 팔기 전에 자신을 팔 수 있어야 한다. 청중은 목사를 사기 전에 비전을 먼저 사지 않는다. 그러므로 목사는 교인들과 상호간의 신뢰를 주고받아야 하며, 자신이 올바른 트랙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교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이럴 때 비로소 그들은 그의 비전을 안심하고 살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수십 년 동안 내가 시종일관 제자훈련 목회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잘 해서가 아니라, 교인들이 무조건 나를 신뢰해 주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새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시간 제자훈련의 비전을 가지고 있는 동역자들은 다시 한 번 자기 점검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강단에서 제자훈련을 열정을 다해 설교해도 별 반응이 없고, 오히려 분위기가 싸늘해지고 있어서 고민하고 있는가? 얼마 동안 열심히 제자훈련을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에 끌려 다니고 있는가? 맥스웰의 충고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고 자신을 돌아보았으면 한다.


속된 말로 왜 물건이 잘 안 팔릴까? 목사가 열을 올리고 사라고 하는데? 맥스웰의 지론대로라면, 파는 사람을 믿지 않는 것이다. “우리 목사님, 전에도 이런 저런 비슷한 것들을 들고 나와 자주 팔았지. 그때만 해도 우리는 목사님을 믿고 그 물건 내용이 어떤 것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 주었어. 그런데 반년도 안 되어 목사님이 그만 하자고 했어. 우리 교회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런 식으로 몇 번 당하니까 이제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고 싶지 않아.”


한번 가정을 해 보라. 강단에서 제자훈련을 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목사를 바라보는 교인들의 마음속에 이런 생각을 깔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안타까운 사실은 많은 경우, 이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고, 당신의 이야기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이라고 하면 지나친 속단일까? 

 
제자훈련에 성공하려면 목회자가 전적으로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평신도는 제자훈련을 잘 모른다. 그것이 얼마나 좋고 나쁜지를 따질 만한 능력도 없다. 지도자가 좋다고 하니까 수용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목회자의 신뢰도이지, 제자훈련의 신뢰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신뢰도가 낮은 목사가 제자훈련에 성공하기는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가? 우선 자기의 전과(前過) 기록을 공개하고 사과하는 것이 좋다. 교회를 부흥시킬 욕심에 한동안 이런저런 프로그램들을 많이 끌어들였는데, 이것이 신중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었다고…. 또 한 가지는 교인들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데 장애가 될지 모르는 성격상의 단점들을 냉정하게 찾아 손질하는 것이다. 누구나 단점은 있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제자훈련에 치명적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신중하지 못해 말을 너무 쉽게 한다든지, 과장하는 버릇이 몸에 배였다든지, 변덕이 좀 심하다든지, 무의식중에 작은 거짓말을 한다든지, 언사가 좀 요란해서 사람들이 적당히 접어서 듣게 한다든지, 약속을 잘 잊어버린다든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제자를 만드는 것이 목회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생명을 걸듯이 집중하라. 한두 해 하다가 그만 두지 않는 끈기를 보여주라. 제자훈련이 어느 정도 정착되기까지는 다른 무엇을 곁다리로 붙이지 말라.


미국 사회에서는 한번 신뢰를 잃으면 5년 안에 회복되기 어렵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 목회 세계에서도 별로 틀리지 않은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 두자. 평신도는 제자훈련을 사기 전에 당신을 먼저 사기를 원한다. 당신은 그들이 묻지 않고 살 수 있는 지도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