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옥한흠목사

두 목사의 편지

새벽지기1 2016. 8. 8. 07:26


연말 연초를 맞아 며칠 간격으로 두 목사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많은 편지 중 이 두 편지는 남달리 나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데가 있었다. 다음은 그 첫 편지의 내용이다. 

 
“목사님을 처음 뵌 지가 벌써 17년이 되었습니다. 87년 10월에 개최된 제자훈련 4기 세미나는 제 생애를 바꾼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 세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의 주역인 자녀들을 제자훈련으로 양육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 때문에 기독교학교 설립에 대한 비전을 가지게 되었고, 지난 연말에 모 지역에 11만 평의 부지를 계약했습니다.…목사님을 만난 것은 예수님을 만난 것 다음으로 큰 사건이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른 한 통의 편지는 이런 내용이었다. “…저는 요즈음 나름대로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정말 서울에서도 제일 가난하고 힘든 분들이 모여 삽니다. …그런데 제자훈련을 하면서 우리 교회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여제자반을 시작할 때에는 이 사람들이 학력도 떨어지고 생활도 어려운데 잘 따라올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은 부족한 믿음이었습니다. 첫 시간부터 은혜를 주시는데 정말 매 시간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훈련 마지막 시간에 찬양을 부르는데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저 자신부터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고, 이들과 함께하면서 주신 웃음과 눈물이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두 통의 편지를 공개하는 이유가 있다. 목회자의 생명은 큰 교회를 목회하거나 유명한 사람이 되거나 좋은 대우를 받는 데 달려 있지 않다. 주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귀한 영혼을 앞에 놓고 함께 울고 웃는 순수한 행복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확신한다. 제자훈련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이런 행복을 길어 올리는 두레박과 같다. 세상적으로 볼 때 자랑할 것이 없는 형제자매가 말씀을 통해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면서 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함께 기뻐하는 목회자의 행복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앞에서 소개한 두 통의 편지를 보낸 목회자들이 사역하고 있는 곳은 아주 가난한 지역이다. 그런 곳에서는 시간을 따로 만들어 제자훈련을 한다는 자체가 사치스럽게 들릴 수 있다. 그럴 만한 정신적 시간적인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교회 분위기는 열등감과 자괴(自壞)감으로 상처 받은 자들이 많아 어둡고 침울하기 쉽다. 그래서 많은 목사들이 이런 곳은 할 수 있으면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두 목사는 이렇게 열악한 곳에서 오히려 목회자만이 알 수 있는 행복을 찾았던 것이다. 

 
나는 두 목사의 편지를 읽으면서 함께 눈물을 삼켰다. 얼핏 보아 기대치가 퍽 낮았던 자매들이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은혜를 알게 되자, 이사야가 보았던 환상이 현실로 바뀌는 것을 두 목사는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작은 자가 천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사 60:22). 제자훈련을 통해 이런 작은 자의 기적이 있었기에 한 교회는 다섯 명 남짓한 초라한 여인들이 썩는 밀알이 되어 오늘의 큰 교회를 이루고,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목회의 비전을 펼치게 되었다. 또 다른 교회는 고목처럼 말라 있는 조그마한 전통 교회였지만,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변화된 평신도지도자들이 주축이 되어 지난해 ‘새생명축제’를 열어 482명의 태신자를 초대해 그 가운데서 280명이 결신하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당신은 목회의 행복을 어디에서 찾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