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로이드 존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 증거(2) / 로이드 존스

새벽지기1 2016. 7. 4. 14:20


2.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 싶어 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서 사람을 지으셨다. 웨스터민스터 소요리 문답에 있어서 제1문에 대한 대답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이다. ‘육에 속한 사람’, 아직도 ‘죄 가운데 있는 사람’,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영광을 살다가

마귀의 유혹을 받아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기 시작했다.

 

자기 최고 관심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순간 그는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며 하나님의 자녀라고 확신할 수 있다. 중생한 사람에게만 그런 일이 있다.

 

3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더 크게 바라게 된다.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성령은 주님을 영화롭게 하신다.

성령이 내 속에 계신지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환상을 본다거나 방언을 하는가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크게 사모하는가? 그것이 최고의 표준이다. 성령은 언제나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

 

어디서 이 지식을 얻는가? 신약과 구약에서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진정으로 추구하는 사람은 성경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된다.

위험은, 성경을 기계적으로 규칙적으로 읽으면서도 주님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성령이 하는 일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하는 것이요

주님과 아버지를 찾아서 내가 이 지식에 친밀해지는 것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아들됨은 기도에서도 나타난다. 성도들의 생애를 기록한 전기들을 읽어보라.

그러면 언제나 그들은 많은 시간을 기도함으로 보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기도할 때 그들의 소망은 그들이 이러한 지식을 가지는 것이었다.

 

4. 하나님을 위한 자기의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을 늘 염려하고

“주님, 내 사랑이 약하고 연약해서 늘 걱정입니다”라고 말하게 된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그런 관심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성령이 역사하시는 증거이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게 된다.

 

5. 자기 속에 있는 죄를 더욱 더 깨닫게 된다.

 

성령은 빛의 영이며 진리의 영이며 거룩한 영이다. 우리 속에 있는 진정한 상태를 깨닫게 된다. 이런 일은 회심 전에 죄를 깨달을 때 일어난다. 거기서 머물지 않고 그것은 좀 더 깊어진다. 더 완전해지고 순결해지면 해질수록 모든 더러운 것이 더 나타나게 마련이다. 우리 속에 있는 죄 때문에 갈수록 더욱 더 애통하게 된다. 수세기에 걸친 모든 성도들의 간증은 “마음의 흑암이나 마음의 전염병”으로 불렀다.

 

6. 죄를 지은 것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으로 괴로워 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죄에 떨어질 때 그는 슬픔을 느낀다. 그것은 자기가 하나님의 율법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였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의 반응이다. 고린도후서 7장에서 “세상의 근심”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구별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9,10절).

 

7. 점점 더 죄와 악과 유혹이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 예민해진다.

 

8. 자기 속에서 의와 거룩을 사모하며 갈망한다.

 

9. 그 갈망을 행동으로 옮긴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3)

몸의 행실을 죽이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육체에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는 의도적으로 자기 속에 있는 어떤 요소들을 좌절시킨다. 눈과 귀를 조심스럽게 지킨다..

야고보, “세상과 합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이것들은 영혼에 해를 끼치는 것들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2:11,12)

 

10.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있는지 여부는 성령의 열매를 나타내고 있는가 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갈 5장에서 사도는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를 대조시키고 있다.

만일 우리가 영에 인도함을 받는다면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갈수록 맺게 될 것이라는 것은, 밤 다음에 낮이 온다는 것만큼 확실하다.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

화평. 오래 참음,

자비, “그는 상한 갈대로 꺽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신다”

이것은 의분과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외식 때문에 분노하셨다.

양선, 충성.

온유- 성령의 인도를 주장하면서도 온유와 겸손이 빠진 사람들의 예. 영적인 교만과 자기만족에 젖음.

절제- 자제와 훈련.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딤후1:7). 근신하는 마음은 절제와 자제와 일관성과 훈련을 의미한다. 근신하는 마음은 충동이나 느낌에 또 가시적인 변동에 흔들리지 않는다.

 

결론

 

나는 여러분이 이러한 내용에 대해 완전한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일 가운데 어떤 증거라도 여러분 속에서 발견하느냐는 것을 말한다.

작은 증거나 흔적이 있으면 그리스도인이요, 매우 작은 영아요 갓태어난 사람일 것이다.

그것이 시초이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 머물지 말아야 한다.

 

은혜 속에서 자라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야 한다. 점점 성숙해가야 한다. 절망감을 갖지 말라.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그렇게 될 것이다. 여러분 속에 가냘픈 빛밖에는 없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충분하다.

 

성령은 ‘질투심’을 가지고 여러분을 갈망하고 계신다.

그의 바램은 하나님께서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성령의 간절한 소원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자랑할 거리가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읽히울 수 있는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편지들”이 되자!

 

- 로이드 존스, 『성령론』(홍정식편역), 2장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