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로이드 존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 증거 / 로이드 존스

새벽지기1 2016. 7. 3. 07:2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증거의


첫째는,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소욕’이라는 용어는 ‘강하게 소원하다’, ‘강한 영향을 투입하다’라는 의미다.

육체는 성령을 거스려 강한 욕심을 내고 있다. 성령 역시 육체를 거스려 강한 욕심을 부린다.

우리를 위한 성령의 바램은 우리가 육체의 영향에서 구원받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성령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신다.

 

약 4:5,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어떤 부모든지 그 부모라면 자녀의 행복과 평판을 위해서 질투를 가지듯이,

사랑하는 애인이 그의 사랑하는 사람의 복락과 명성을 위해서 진력하듯이,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질투하여 시기하는’ 성정을 가지는 정도로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들로서 죄와 율법과 사망에서 구속받았다.

하나님께서 또한 우리 속에 그의 영을 두셨다.

우리가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은 사실이며

또한 죽을 몸에 남아 있는 죄가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것도 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나니” 이 육체의 요소가 우리 속에 남아 있어서

우리의 가장 높은 유익에 대해서 반기를 들고 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성령께서 그 육체에 대하여 대적하고 있는 것이다.

죄와 마귀에게 이용되는 극악한 영향에서 우리를 구출하고 구원하려고

성령께서는 ‘질투하는 시기’를 가지고 육체를 향해서 대적하고 계시는 것이다.

 

성령은 우리 속에 계신다. 그는 모든 형태와 모양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죄로부터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해방을 갈망하고 계시며 우리의 궁극적인 영화를 갈망하고 계신다.

그 목표를 향해서 그는 우리를 인도하여 나가고 계시며

‘질투하는 시기’를 가지고 우리를 위해서 열심을 내시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지(理智)와 마음과 의지에 역사하신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그를 위한 성령의 이 사모하심에 무릎을 꿇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자녀인 것을 실제로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이다.

 

1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다면 나의 보편적이고 전체적인 사고방식을 그로 하여금 주장하시게 한다.

 

고전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다면 우리는 본질적으로 인생에 대하여 영적인 사고방식을 가질 것이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비교하는 첫째 요건은 이 영적인 관점이다.

비그리스인은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롬8:7).

그리스도인은 육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영적인 관심을 가진다.

그는 신령한 일에 맛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함께 성경을 공부하는 모임을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영적인 아닌 사람은 영적인 기능을 가지지 있지 않다. 그래서 그는 영적인 생활을 누릴 수 없다.

성경강해에 흥미가 없고 성경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에게는 그것이 전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런 일들에 대해서 순전히 지적인 관심만을 가질 수 있는 이면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언제나 마음 속에 그 위험을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영적인 사람은 영적인 생각을 가진 동료를 즐거워하고 그리스도인의 교제와 모임을 좋아한다.

 

그는 자기의 영혼과 영혼의 운명에 관심을 가진다.

이 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보는 일이 아니라 보지 못하는 일이다.

고후 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성령을 자기 속에 모시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는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과 자기 삶 중에서, 이 감추어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하나의 순례길이요, 나그네 길이요, 잠시 지나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또한 세월이 갈수록 우리들이 참된 영역에 속해 있음을 의식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에 하등의 의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우리도 한 때 다른 일에 관심을 가졌고,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것에 흥미를 가질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 문제되는 것은 속사람이지 겉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겉사람은 날로날로 부패한다.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시민권을 하늘에 있다”(빌3:20-21)라고 말한 것과 같다.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

 

나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시간 전체를 그런 것으로 생각함으로 소일하고 있는지를 묻고 있지 않다.

다만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점점 더 영적인 사고방식으로 생각하며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갈수록 격리되어 가고 있으며,

여러분이 속한 영역이 점점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느냐를 묻고 있을 따름이다.

 

만일 여러분이 그렇다고 말한다면 전혀 의심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없다.

이것은 참된 그리스도들이 가진 표지들 가운데 하나다.


- 로이드 존스, 『성령론』(홍정식편역), 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