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한 대사가 설교보다 낫다.
두려움에 대한 많은 설교를 들었고 나 자신도 했다. 그 주제에 대한 가장 상투적인 설교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다른 모든 두려움을 몰아낸다는 것이다. 또 하나님을 신뢰함이 두려움을 이기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두려움을 피하지 말고 믿음으로 맞닥트려야 한다, 두려움이 문을 두드릴 때 믿음으로 그 문을 열면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두려움은 실체가 없는 허상일 뿐이라는 등의 설교를 흔히 접한다. 모두 맞는 말씀이다. 문제는 실제 두려움에 사로잡혀 고통 받는 가련한 존재들에게는 그 반듯한 정답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려움을 이기는 그 모든 해법들이 그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더 두려워진다. 두려움은 그것을 극복하려는 모든 노력을 삼켜버리는 괴력을 가지고 있다.
나는 영화의 한 대목에서 이런 설교보다 좀 더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말을 들었다.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명량이라는 영화에서 이순신이 이렇게 말했다. “두려움을 이용할 수만 있다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로 배가되는 용기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러자 옆에 있던 그의 아들이 “극한 두려움에 빠져있는 이들에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고 물었다. 거기에 대한 대답이 의미심장했다. “죽어야 하겠지 내가.” 이순신이 실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른다. 여하튼간에 나는 이 대사에서 귀한 통찰을 얻었다. 물론 이 말을 성경적으로 재해석함으로 얻은 아이디어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두려움을 이용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극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에게 그것이 가능할까? 그것은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바둥대기보다 거기에 압도당해 질식하는 것이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 숨이 턱턱 막히게 하는 두려움과 공포가 우리의 자만심을 산산이 부수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 꼬꾸라지게 한다.
인간이 공포에 질릴 때 가장 고결해진다는 말이 있다.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우리의 모든 가식과 허세와 교만이 날아가 버리고 우리 마음이 한없이 낮아지고 절박해지며 진실해진다. 그래서 자신감에 넘친 도도한 인간의 모습보다 겁에 질려 두려움으로 떠는 가련한 인간의 모습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더 귀하다. 극한의 두려움이 우리를 하나님께 몰아간다.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품안으로 파고들게 한다. 두려움을 이기는 길은 그 두려움 속에서 교만한 내가 질식해죽고 주님만을 의지하는 겸손하고 연약한 자로 거듭나는 것이다.
'좋은 말씀 > 박영돈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혁주의 구원론이 전파되지 않는 개혁교회 / 박영돈 (0) | 2016.06.28 |
---|---|
삼위일체적 영성 / 박영돈 (0) | 2016.06.28 |
혼자만 충만한 것도 문제 / 박영돈목사 (0) | 2016.06.27 |
하나님의 징계 아래 있는 한국교회 / 박영돈목사 (0) | 2016.06.25 |
자작평안 / 박영돈목사 (0) | 2016.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