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로이드 존스

율법이 할 수 없는 일을 영을 좇아 행하게 하신다 / 로이드 존스

새벽지기1 2016. 6. 15. 14:01

율법이 할 수 없는 일을 영을 좇아 행하게 하신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롬8:3-4)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복되신 성령의 영역아래 있다.

이것을 이해할 때만이 우리는 우리의 구원에 대한 확신과 확실성을 마땅히 즐거워할 것이다.

우리가 율법에서 구원받아 지금은 성령에 의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어야 하는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깨달음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그런 위치에 이르게 된다.

이제 바울은 더 나아가 왜 우리들이 율법에서 해방될 필요가 있었는가를,

그 결과 우리에게 어떤 체험이 올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잘못된 해석을 하는 사람들은,

바울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셨을 때 그가 완전한 삶을 사심으로 말미암아

 육신 안에 죄를 정죄하셨다는 식으로 진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에게 속한 자들과 그 안에 있는 자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일한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우리는 그러한 해석을 받아들일 수 없는가?

첫째, ‘죄를 정하다’란 말을 ‘...로부터 건져내다’ ‘멸하다’라는 말로 취급하는데

그 말은 1절의 ‘정죄함이 없다’라는 말과 같이 ‘판결하다’라는 의미이다.

 

둘째, 율법이 육신 안에 죄를 정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일을 하라고 율법을 보내신 것이다.

율법이 할 수 있는 일은 육신 안에서 죄를 정하는 일밖에 없다.

 

셋째, “죄를 인하여“라는 의미는 단순히 ‘죄에 관하여’라는 의미가 아니고

‘죄를 위한 희생으로’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중추적인 가르침이다.

 

바울은 율법이 할 수가 없었던 것은 육신이 약하여 그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통해서 그것을 이루신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이 할 수 없었던 것은 율법이 요구하는 의가 우리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이었다.

 

율법의 목적은 첫째,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는 의가 어떠한 것인가를 나타내는 것이다.

둘째, 심판하고 정죄하는 것이다.

율법 자체는 선하고 생명의 길을 지시한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생명을 가져다 주는 데 완전히 실패한다.

사실 우리의 정죄는 우리가 율법대로 살지 못하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다.

 

똑같은 방법으로 구원에 이르는 두 방면이 있다.

첫째 국면은 정죄와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하고

둘째 요소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는 것이다.

 

바울은 여기 ‘그리스도 안에서’ 두 가지 일이 일어남을 강조하고 있다.

율법은 그 두 가지 일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못한다.

율법은 죄책에서 나를 건져낼 수 없으며 의롭게 할 수도 없다.

 

“안에”라는 말, 그 뒤에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라는 말로 덧붙여 설명하고 있다.

그는 계속해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장래를 다루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상 8:29에서 명확하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바로 그것이 ‘의 이며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은 죄책에서의 구원만이 아니고 적극적으로 ‘의에게 종’이 되는 것이고

율법의 의를 규정한 방식대로 의롭고 거룩한 삶을 의미한다.

 

어느 곳에서나 바울의 주장은 그러하다.

고전1: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고전3:13-14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그것은 여기 로마서 8:3에서 “곧 죄를 인하여 육신에 죄를 정하사”라는 말과 같다는 것이다.

갈3:1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속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적극적인 국면으로 우리는 더 이상 저주 아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후사요 기업을 물려받을 자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갈3:21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즉 율법은 죄책과 나에게 내려진 문제로부터 나를 구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더욱더 중요한 것은 적극적인 ‘의’와 ‘생명’을 나에게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에게 그것을 주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 때문에 나는 육체를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좇아 행한다. 나는 은혜 아래 있다.

 

바울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서 가능케 한 모든 것을 보여 준다.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확신과 기쁨을 주려 하는 것이다.

 

- 로이드 존스, 로마서강해 4권23장(김영희사모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