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로이드 존스

로마서 8장의 전체 주제,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로이드 존스

새벽지기1 2016. 6. 13. 06:02

로마서 8장의 전체 주제,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것은 세상이 타락한 이래에 인간을 위한 가장 위대한 가능성을 제시해 주는 진술이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정신과 진수와 핵심이다.

이것은 로마서 8장 전체의 주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새로운 차원에서의 이신칭의의 위대한 교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정죄의 반대는 언제나 ‘칭의“이지 성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로마서 8장의 처음 네 구절을 성화의 차원에서 해석하는 자들은

바울이 전제해 나온 모든 것을 거스릴 뿐만 아니라

로마 가톨릭적 이단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결코 없다’ 그 말은 완전하고 절대적이며 완벽하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완전히 어떤 정죄의 영역에서도 벗어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제는 그리스도인에게 정죄가 없다.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것이 사실인 까닭에 그는 정죄함을 느껴서는 안된다.

그러나 마귀는 그렇게 느끼게 하려고 무진 애를 쓸 것이다.

성경을 가지고 대적하라.

그러면 마귀는 ’여러분을 피할 것이다’.

 

우리들의 고통의 대부분은 이 구절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데 있다.

어떠한 것도 그리스도인을 정죄받는 위치로 끌어갈 수 없다.

우리는 그 말씀의 가치를 격하시켜서는 안된다.

이것이 ’성도의 최종적인 견인‘의 교리를 가르치는 바울의 방식이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가

하나님에 의해서 완전히 청산되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죄를 지어도 무방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바울에게 퍼부은 비난이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6:1).

바울은 이미 6장과 7장에서 결코 그렇지 않으며 오히려 정반대라고 답변을 한 바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다.

그리스도인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잇는 사람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보다 더한 것은 없다.

 

5장에서 보았듯이 하나님께서는 ‘경건치 않은 자들을 의롭다’하신다.

또한 의롭다 하실 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넣는다.

하나님께서는 일단 하나의 일을 착수하시면 그 일을 완성시켜 나간다.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는 우리가 다시는 정죄 받을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심으로 ‘점이나 티 혹은 그러한 것들이 없는’

완벽한 영화의 지점에 이르기까지 일해 나가실 것이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근거가 되고 또한 우리의 최종적인 확신에 대한 기초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구절은 많은 경우에서 신약의 위대한 주제요,

특별히 사도 바울의 서신의 위대한 주제이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고전1:30)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12:27)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은 우리가 아담에게 연합되었던 것과 같이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정죄함을 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있기 때문이다.

6장에서 그 증거를 상세하게 밝혀 주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나도 죽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을 때 나도 부활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승천 하셨을 때 나도 그리스도와 함께

지금 이 순간에 하늘 보좌에 앉힌 바 된 것이다.

 

7:1-4에서 동일한 진리를 결혼 관계의 차원에서

남편이 죽으면 여자는 자유케 되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서 결합될 수 있다.

그처럼 우리도 매었던 율법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우리는 죽었다가 다시 사신 이에게 시집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신랑에 속한 모든 것은 신부에게 속해 있다.

 

말씀들은 우리들이 그리스도와 너무나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나머지

그리스도의 것은 무엇이든지 다 우리의 것일 뿐 아니라

아무것도 그것에서 우리를 떨어지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정죄함이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여러분이 죄짓게 될 때 정죄 아래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또한 그리스도 밖으로 내던져지지도 않는다.

여러분이 죄지었을 때 여러분은 율법에 대하여 죄지은 것이 아니라

사랑에 대해서 범죄한 것이다.

여러분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지만 정죄함을 느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정죄함을 느끼는 것은 스스로 율법아래 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죄를 짓는 불신자와 죄를 짓는 그리스도인 사이의 차이는

전자는 사람이 국가에 대하여 죄를 지어 하나의 법을 어긴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자기 아내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인 인격적인 문제요, 사랑의 관계이다.

어느 의미에서는 법적인 정죄보다 더 나쁜 것이다.

 

내가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런 지위와 관계에 있기 때문에

나는 더 높은 기준을 가지게 된 것이고

죄를 지으면 더 많은 범죄를 나에게 한 것이며

또한 더 밉고 가증스러운 것이 되게 한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아는 사람은

‘율법 아래’ 있는 사람보다도 더욱더 죄와 싸우고 죄를 미워하고 죄를 피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으로 하여금 스스로 ‘정죄 아래로’ 들어가지 말라.

그렇게 하여 죄짓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여러분은 이 위대한 진술을 꽉 붙잡고 있어야 한다.

 

- 로이드 존스, 『로마서강해』4권, 22장, “더 이상 정죄받지 아니함”

  (한가족교회, 김영희사모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