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로이드 존스

성령의 법과 은혜의 왕노릇(롬8;2)/ 로이드 존스

새벽지기1 2016. 6. 14. 10:55


성령의 법과 은혜의 왕노릇(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바울은 1절의 그 주제를 2,3,4,절에서 강해해 나가기 시작한다. ‘이는’이라는 말로 시작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2절은 1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임을 알려 주고 있다.

 

<2절에 대한 잘못된 성화론>

 

이 2절 말씀은 성화 문제에 관한 한 가장 중요한 구절이다. 그들의 주장은 “우리를 해방하였음이라”, “죄와 사망의 법” - 구절이 7:23에서 사용된 표현과 같은 의미를 전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 안에서 성령의 역사는 ‘우리 지체 속에 역사하고 있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구원한다고 역설한다. 그래서 7장의 곤고한 사람은 8장의 단계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성령이 이제 임하고 그 사람은 두 번째 또는 제2의 축복, 즉 제2의 체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전에 자기를 괴롭게 짓이김으로써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라고 울부짖게 했던 것으로부터 온전히 해방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이 구절이 성화만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해석을 고집하는 학파를 두 부류로 분류할 수 있다.

‘완전 성화’를 가르치는 사람들과 ‘완전 성화’는 아니지만 ‘두 번째 체험’이 그로 하여금 죄에 대하여 승리할 수 있게 한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한’ 성령께서는 매순간 승리를 줄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즉 8:2절은 우리가 “해방되는 것은 우리가 성화된 결과이며 사실상 정죄받지 않는 것은 우리의 거룩하게 됨에 달려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들의 가르침이 잘못되었음을 밝혀냄>

 

첫째, 로마서 초두에서부터 끊임없이 강조하였듯이 그리스도인이 정죄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거룩하게 됨’의 결과가 아니라 그가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결과에 기인하는 것이다.

정죄에 대한 반대는 ‘성화’가 아니라 오직 ‘칭의’일 따름이다.

 

둘째,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인에게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날지도 모르는 어떤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제2의 축복을 추구하며 받는 그리스도인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은 더욱더 아니다. 바울은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미 과거에 일어난 어떤 일이라고 말한다.

 

셋째, 여기서 처음으로 성령이 소개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5:5, 7:6에서 성령의 사역을 이미 언급하고 있다.

 

넷째, 이 구절을 그릇되게 해석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완전 성화’의 교리를 믿게끔 한다.

바울은 8:12-13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말해 나가고 있다. 결국 바울은 자기모순을 범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죄와 사망의 법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율법이나 하나님의 도덕법을 의미한다.

특히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십계명 가운데 있는 법이다.

 

그 이유는, 첫째 바울이 여기서 정죄를 다루고 있는데 정죄를 내리는 율법은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이 아닌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이다.(3:31) 우리에게 정죄를 가져오고 우리의 정죄됨을 선언하는 것은 율법이다(3:18-20). 율법은 언제나 정죄의 큰 요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가 더 이상 정죄 아래 있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우리는 우리에게 사망의 선고를 내린 율법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죄와 사망의 법’이 ‘하나님의 율법’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이유는 7:7-25에서 바울은 율법이 죄와 사망을 낳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여기 8:2에서 그 율법을 ‘죄와 사망의 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는 율법은 ‘죄와 사망의 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세 번째 이유는 8:2의 해석은 8:1로부터 나와야 하고 결론적으로 3절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3절에서 바울은 율법이 할 수 없는 일을 말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 율법에서 나를 해방시킨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다. 바울은 내 안에 있는 성령의 역사 때문에 하나님의 법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성령의 역사가 우리를 의롭게 하며 또 하나님의 율법에서 구원한다고 가르치고 있지 않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기 때문에 정죄를 받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가톨릭의 교훈이다. 그들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완전히 거룩하게 되기까지는 구원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의롭다함을 받았기“ 때문에 정죄 아래 더 이상 있지 않다.

 

우리는 본문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원리나 직분이나 언약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번역할 수 있다. 바울은 우리가 이제 새 언약, 새로운 약속 아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복음은 우리를 해방시켰다. 우리는 ‘자유케 하는 법’ 아래 있다. 그것을, ‘믿음의 법’(3:27), ‘은혜의 왕노릇’(5:20-21), 여기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새로운 생명이 있다. 그 생명은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그리스도의 생명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온다. 우리는 새로운 체제 안에 있다. 우리는 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 결코 정죄함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구원의 입장에서 율법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메인 바 되었던’ 것은 제거되었으며 죽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역과 왕노릇 안에 있다. 또한 성령의 왕노릇과 체제 안에 있는 것이다.

 

바울은 우리가 우리의 구원이 절대적으로 확실하다는 사실을 알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가 우리를 정죄하였고 우리에게 대해서 ‘죄와 사망의 법’이 되었던 율법으로부터 영원토록 해방되었음을 확신 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은혜의 직분’, ‘성령의 직분’, ‘영광의 직분’ 이라 불리우는 이 새로운 직분에 의해서 그것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그 모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 때문이다.

 

- 로이드 존스, 『로마서강해』, 7권 22장, (김영희사모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