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로이드 존스

연합과 교단에 대한 로이드 존스의 견해/ 이안 머리

새벽지기1 2016. 6. 20. 13:27


연합과 교단에 대한 로이드 존스의 견해

 

로이드 존스는 새로운 복음주의 교파를 만드는 것을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한 올바른 대응으로 옹호하지 않았다. “새로운 교단을 설립하는 것을 찬성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로이드 존스는 “그것이야말로 제가 말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교회의 위기는 교회 정치의 다양한 방식 때문에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로이드 존스의 견해에 따르면, 교회 정치 문제는 성경이 최종적 결론을 허용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라는 문제는 결론이 나와 있었다.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새로운 교단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조치로는 포괄적인 복음주의적인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이룰 수 없다. 그것은 단지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로이드 존스와 가까웠던 사람들은 가운데 때때로 “미래의 연합 교회”나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교회”와 같은 말을 사용했으나 로이드 존스는 그런 말을 절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결국 이런 “연합 교회”는 또 하나의 교단을 의미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로이드 존스는 더 크고, 더 과감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특히 복음에 순종하는 사고를 결정적인 문제로 주장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교회 정치제도와 같은 이차적 문제에 대해서는 차이를 그대로 갖고 있어도 된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은 동료 복음주의자들과 일차적 헌신의 대상인 복음 안에서 연합을 보여 줌으로써 함께 행동하는 모습을 부여 주어야 한다. 교회들은 최소한의 통제 아래 “함께 일하고 공조할” 수 있다는 사실에 연합의 기초를 두는 것이었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존 오웬과 같은 인물들의 조언을 받아 크롬웰은 교회 정치 제도에 따른 차이점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 바탕을 둔 교회들 간의 연합을 이루어 냈다. 한 가지 요청은 모든 사역자는 정통 개신교인으로, 직무의 타당성과 관련해서는 공통 기준에 따라 사역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종합적인 통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상과 같은 17세기의 연합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한 다음 로이드 존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이 정확히 이 문제에 대한 저의 입장입니다. 저를 장로교나 침례교나 독립교회나 감독교회나 메서디스트 교회에 속해 있거나 간에 그가 ‘신앙’의 본질들에 대해 동조한다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연합의 길은 온갖 이차적인 차이를 제거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었다. 그 길은 교회들이 모든 근본 원리에 따라 성경에 복종하는 길이고, 이 복종이 존재하는 한 로이드 존스는 “교단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교단에 속해 있으십시오. 하지만 교파주의를 굳게 고수하지는 마십시오”라고도 말했다.

 

- 이안 머리, 『로이드 존스 평전 3』, pp 144-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