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프란시스 쉐퍼

혁명의 결과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근거힌다[3]

새벽지기1 2016. 6. 14. 07:37


혁명의 결과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근거힌다 

엘룰은 기독교 만능주의에 대한 이상을 벗어버리라고 말하면서 진정으로 우리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혁명의 결과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참된 요소로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으로 강조한다. 그는 모든 기독교 현실주의는 이 주권에 근거하여야 한다. 혁명적인 기독교 상황에 있어서 소망이 주관적 요소라면, 이 주권은 객관적 요소다. 우리는 오직 이 주권에 의해서만 우리의 다양한 정치적 태도와 정치 경제의 구체적 문제에 대해 계속 판단할 수 있다.  

어떤 일이 선해지거나 악해지는 것은, 그 시기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의 빛에 비추어본 상황과 하나님 나라를 도래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사역과의 일치여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 세가지 기준을 일상생활 중에 적용할 때, 그리스도인의 활동은 혁명적이 되며 "종말을 현재화" 혹은 "종말의 현존을 실현"하게 된다. 우리의 현실주의의 생명력은 그 판단기준이 성공적인 "결과"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주권"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사도 바울이 확실히 보여주는 대로 "범사를 판단"할 의무가 있다. 이것은 도덕적 가치나 영적 삶만이 아니라 삶의 전영역에 걸친 문제다. 이 현실주의는 일상사의 사실들에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문명의 내적 틀이라는 현상에 대하여 중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엘룰을 이 세상으로 보내진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사회적 존재로서 사회속에서 살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참으로 바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의 위치를 살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수행해야 할 특수한 사명이 있다는 것과, 그들이 혁명적이되어야 하는 것은 절대 절명의 의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엘룰은 이러한 의무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영적 문제아인 것이다.

"만약 그들의 시각이 더 이상 혁명적이 아니라면, 아마도 영적인 생명력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치료는 자신들에게 달려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가 성령의 능력을 덧입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들은 절박한 변화를 가져오는 도구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 세상의 삶 속에 실현하도록 힘을 주시고 인도하여 주실 것을 계속 기도하여야 한다.그러나 일상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이 혁명적 힘은 우리 시대의 근본적인 틀까지도 문제시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혁명성에 관한 두 번째 결론은 삶의 방식에 관한 것인데, 그리스도인의 삶은 현대문명의 업압에 대항하여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으로 창조되어야 한다. 전체주의 사회속에 살면서,그것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삶의 현장속에서 실천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종류의 삶의 양식을 갖는 공동체들이 생겨나면, 새로운 문명의 첫 신호들이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세상을 아는 것이다. 다시 마해서 혁명적 상황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엘룰은 이렇게 혁명성의 상황을 묘사하면서 그리스도인의 현실참여의 연결 고리를 분명하게 보여주었지만 엘룰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인이 할 일이란 삶의 양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고 있다. 

엘룰은 기독교가 이 세상과 접촉점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세상의 정,경제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거나 그에게 대한 분명한 입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조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창조의 삶은 "첫째로 성경의 진리를 믿는 자들의 세상과의 구별되는 삶의 방식을 창조해내는 일이 가장 우선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 구별된 삶의 방식은 공동체적인 과제가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엘룰은 교회는 세상의 방식대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유혹자들이 자기들의 방식대로 변화를 일으키자고 하지만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지지 않은 혁명은 모두 사회적인 혁명으로떨어지는 것이라고 보고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자라면 우리는 이 기독교적인 혁명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엘룰의 이해는 세상의 혁명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의 참여는 언제나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변함없이 반복되어 질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혁명은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찾아내면서 세상의 혁명에 대하여 튿별히 빈약한 가치에 목숨걸고 있는 세계를 향하여 아니오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혁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엘룰의 관점을 살펴 보면서 한가지 느끼는 것은 지금까지 그는 대안 없는 사상가라고 이해되었던 사실이 모순되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물론 그는 분명하게 이렇게 하면 된다라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의 사상의 논리적인 결론은 무엇인가 대안이 있다는 것이다.

특별히 그가 하나님이 선한 존재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어떠한 일도 감당 할 수있다고 강조한 것은 대안을 가지고 있는자의 모습임을 볼 수있다. 다만 그는 그의 글을 통해서 자신이 체험한 상황에 대하여 같은 길에 서있는 그리스도인과 현대인들에게 무엇이 바른 방향인지를 가르쳐주는 것이 자기의 일이라고 겸손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그는 너무나도 이 시대를 잘알고 있는 그리고 이 시대가 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어디로 갈것인지를 잘알고 있었던 선지자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