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프란시스 쉐퍼

쉐퍼와 엘룰의 사회개혁으로서의 저항사상의 공통점

새벽지기1 2016. 6. 15. 08:03


지금까지 쉐퍼와 엘룰의 사회개혁으로서의 저항사상을 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을 보게 되면 첫째로 타락에 대한 결과를 보는 데에 있어서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다. 쉐퍼도 엘룰도 죄에의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 사회에 소외가 들어 왔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소외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외가 들어 왔다는 것이다. 엘룰은 바로 이것이 필연성의 실재라고 한다. 쉐퍼는 이 타락으로 인하여 네 가지의 분리가 일어났다고 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 세계의 실재라는 것이다. 둘 다 바로 이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둘째로 볼 수 있는 것은 기독교 혁명성과 불복종의 문제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 두 사람의 견해는 매우 비슷함을 볼 수 있다. 또한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혁명성의 기반이 바로 현실주의의 입장이다. 다만 엘룰이 이 현실주의에 대한 관점을 마르크스에게서 빌려왔다면 쉐퍼는 성경은 현실적인 책이라고 주장하면서 전통적인 입장에서 가저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공히 현실주의의 입장으로 바라본 것은 그들이 세상에 대하여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 된다. 그렇기에 둘 다 신성화 되가는 국가 절대주의나, 사회학적인 법에 대항하여 불복종등의 사회 참여운동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있다.

세 번째로 국가 절대주의에 대한 이해이다. 국가가 전체주의가 되어지는 것은 또 다른 노예제도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엘룰은 여기서 기술과 생산성의 문제 등을 통하여 국가가 지배하는 그러한 독재주의에 대하여 새로운 신성화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쉐퍼는 빈약한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는 백성들에게 새로운 엘리트를 통하여 그리고 51%의 사회적인 법을 통하여 다스리는 것은 바로 독재국가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독재국가에 대하여 저항하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특별히 둘 다 롬13:1-14절 의 국가에 대한 해석을 같이하고 있는 것은 비로 이러한 사상의 공유점이라 할 수 있다. 본다.

넷째, 쉐퍼와 엘룰은 교회의 표지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하여 같이 하고 있다. 엘룰은 혁명이 필요한 시대요, 폭력이 필연성의 시대이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폭력을 행사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종류의 폭력도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쉐퍼와는 분명히 다른 입장에 서있는 것이다. 쉐퍼는 최후의 한계선으로서의 무력사용(엘룰은 이것도 폭력이라고 말함)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둘은 동일하게 교회의 표지요,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랑의 폭력이라는 것이다. 쉐퍼도 동일하게 말하기를 교회의 진정한 표지는 사랑이라고 강조한다. 교회가 이 사랑을 잃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도 둘의 관점은 차이가 있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시대의 이해이다. 둘 다 이 시대는 혁명이 필요한 시대라고 보고 있다. 엘룰은 사회학적인 접근을 통해서 기술과 민족국가가 이 시대의 새로운 신성화되었다고 보고 있다. 쉐퍼는 인식론적 측면에서 이 시대는 유물론적 상대주의 유령에 빠져있다고 본다. 둘 다 기독교의 혁명적인 복음만이 치료가 가능한 것으로 진단한다. 둘 다 롬12:1의 말씀을 통하여 시대를 분별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시대를 이해하고 아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알 때에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