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 418

왜 슬픔에 빠졌을 때 시를 찾을까?

왜 슬픔에 빠졌을 때 시를 찾을까?고대 그리스에서는 시(詩)를약으로 처방했다고 합니다.칭기즈 칸은 유라시아 전역을 정복하기 위해먼 거리에 명령을 전할 수단으로운율을 이용했다고 하지요.운율이 없는 것보다 운율이 있는 것이뇌의 중추에 더 깊이 각인된다는 사실을 이용했던 것입니다.시는 인류의 시초부터 존재했던 예술이었는데최근 뇌과학자들은 시에 뇌과학적 효능이 있다는사실을 밝혀냈습니다.엑시터대학교에서 이뤄진 연구에 따르면시를 읽자 휴식 상태와 관련된 뇌 영역이 활성화되었다고 합니다.시를 읽다 보면 차분한 감정이 서서히 최고조를 향해가는 느낌이 옵니다.마음이 불안할 때나 잠이 오지 않을 때,시를 몇 편 읽으면 몸이 이완되기도 하고새로운 관점이나 통찰을 얻기도 하는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또 다른 연구도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않으리라' (시96:10)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가 만민을 공평하게 심판하시리라 할지로다"(시편96:10) 하나님만이 흔들리지 않는 반석, 요동하지 않는 산성, 굳건한 요새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사람이나, 군대나, 우상을 의지할 때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의가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공평이 흐르는 나라는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교만하고, 악하고, 불의하고,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서면, 겸손과 깨끗함과 의와 공평이 설 곳이 없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긍휼과 하나님의 공평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흐르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하며,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소망하..

왜 울고 있느냐? (요 20:11~18) / 이재훈 목사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시기까지 40여 일 지상에 계시면서 십여 차례 나타나셨습니다. 특히 제자들에게 집중적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대적자들에게 나타나지 않으신 까닭은 그들이 예수님의 신성을 보지 못해서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두려움과 절망, 낙심과 상실, 당혹과 불안 속에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을 회복시키고, 그들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과 십자가 복음이 온 세상에 증거되기를 원하셨습니다.특히 막달라 마리아와의 만남을 이 집중해서 조명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에 들렸다가 예수님께 고침 받아 제자 일원이 되고, 그분을 섬기는 여성 제자였습니다. 복음서들을 보면 예수님 주변에 있던 여성 제자들 명단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빠지는 경우가 없습니다. 여성 제자 중에서 리더..

목사공부(85)- 몸과 영으로서의 인간 / 정용섭 목사

반론도 가능하다. 기독교 신앙에서는 철학이나 구도보다는 예수님에 대한 단순한 믿음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흔한 말로 철학은 질문이고 종교는 대답이라고도 한다. 좀더 현실적인 차원에서 이런 반론도 있다. 기독교 신앙에서 신학을 너무 크게 여기면 지적인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이런저런 여러 가지 반론에 대해서 일일이 대답하지 않겠다. 그런 질문들이 나름으로 의미가 있긴 하지만 정곡을 찌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지적인 능력 여부와 상관없이, 더 나가서 종교 여부에 상관없이 궁극적인 질문이 인간에게 왜 가능한지만 간단히 짚겠다. 이건 설교자이면서 동시에 목회자인 목사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할 기독교 인간론의 기초다. 성서 전통에 따르면 사람은 흙으로만이 아니라 ..

목사공부(84)- 예수의 족보 이야기 / 정용섭 목사

앞에서 구약의 첫 구절을 인용했으니 이제 신약의 첫 구절인 마 1:1절을 인용하겠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이 문장의 뜻은 단순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진술하겠다는 뜻이다.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족보를 거론할 필요가 있었겠냐, 하는 점이다. 족보 이야기가 없어도 복음을 전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족보 이야기는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의 신성이 족보 이야기로 인해서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이 족보 이야기를 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질문은 마태가 왜 아브라함과 다윗을 족보 이야기의 대표로 선택했느냐, 하는 것이다. 족보 이야기가 실제로 아브라함으로부터 ..

목사공부(83)- 설교의 목표 / 정용섭 목사

설교의 목표 모든 강의에 목표가 있는 것처럼 설교에도 목표가 있다. 목표에 대한 생각도 다들 다를 것이다. 회중들을 회심시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이 설교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회중들을 더 성숙한 기독교인이 되도록 훈련시키는 것이 설교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성령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라든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게 하여 복 받게 하는 것이라고도 답할 수 있다. 교회 일에 충성하는 신자가 되게 하는 것이라거나, 목사의 말을 잘 듣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나는 회중들로 하여금 질문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 설교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성경과 신학을 통해서 내가 배운 것은 질문하는 것이었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과 신학자들도 모두 질..

헨리 반 다이크 「무명교사 예찬사」 / ‘선생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한재욱 목사

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오늘은 목사이자 시인이며 교수인 헨리 반 다이크의 『무명교사 예찬사』를 하나님께 드리며 ‘선생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무명교사 예찬사나는 무명교사를 예찬하는 노래를 부르노라.위대한 장군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나,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무명의 병사다.유명한 교육자는 새로운 교육학의 체계를 세우나,젊은이를 건져서 이끄는 자는 무명 교사다.그는 청빈과 고난 속에 산다.그를 위하여 부는 나팔 없고,그를 태우고자 기다리는 황금 마차는 없으며,금빛 찬란한 훈장이 그 가슴을 장식하지도 않는다(중략)게으른 자에게 생기를 불어주고하고자 하는 자에게 고무하며 방황하는 자를 세워준다.그는 학문하는 즐거움을 젊은이에게 전해 주며,최고의 정신적 보..

위급할 때 외치는 단숨기도! / 원용일 목사

위급할 때 외치는 단숨기도!“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이 짧지만 간절한 기도를 외쳐본 적이 있는가? 한 직장인이 쉽지 않은 일인데 꼭 필요한 결재를 받아야 할 때 결재판 위에 손을 얹고 짧지만 간절하게 기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간절한 기도를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했다.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확인한 후 베드로는 자신도 걷기를 요청했다. 오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용기 있게 물 위를 걸었지만 왜 겁이 안 났겠는가?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발밑에서 물이 출렁거렸다. 그러자 베드로가 물에 빠지기 시작했고, 거의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우리 성경에야 점잖게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이때 베드로가 어떻게 소리를 질렀을까 짐작할 수 있다. 이 기도가..

성도여 안심하라. / 봉민근

성도여 안심하라. 글쓴이/봉민근기도하는 성도여 안심하라.기도하는 민족은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모든 문제는 답을 모르기 때문에 어렵고 힘이든 것이다.열쇠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신앙이란 오뚝이 인생을 사는 것이다.백번 넘어져도 믿음이 있으면 아주 거꾸러뜨림을 당하지 않는다.그리스도인은 이미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우리에게 하나님이 계시니 삶도 죽음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이 세상은 영원한 나의 나라가 아니다.어차피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가게 될 것이다.염려하며 살아도 인생은 바뀌지 않는다.우리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소망 가운데 늘 기쁘게 살 수가 있다.세상에 믿을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전능자를 믿지 않기 때문에 불안해하며 사는 것이다.믿음은 하..

예배의 이유 (출 15:1-18) / 김영봉 목사

해설: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체험한 후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은 노래를 불러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 노래의 화자는 일인칭 단수(“나”)로 되어 있다(1절). 모세의 노래에 회중이 화답하는 형식으로 불렸을 것이다. 그는 먼저 주님께서 하신 일을 묘사하면서(4-5절),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 “나의 하나님”, “내 아버지의 하나님”, “용사”(2-3절) 등의 표현으로 주님을 찬양한다. 그런 다음 모세는, 원수들이 자신들을 멸하려 했지만, 주님께서 권능의 손으로 그들을 멸하셨다고 술회한다(6-10절). “오른손”(6절)은 “강한 능력”을 상징하는 은유다. 그 모든 일을 생각하면서 모세는 "신들 가운데서 주님과 같은 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11절)라고 고백한다. "주님을 대적하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