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23 11

팔복(18)- 죽음의 극복 / 정용섭 목사

예수의 부활은 무엇인가? 그것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인가, 아니면 제자들의 특별한 종교 경험에 불과한 것인가? 부활이 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경험된 것일까? 부활의 주님이 승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요즘은 왜 우리가 제자들과 같은 부활 경험을 하지 못하는가? 지금 이 자리에서 부활에 대한 전반적인 공부를 할 수는 없다. 한 가지 관점만 짚도록 하자.예수의 부활은 죽음의 극복이다. 죽음은 모든 생명을 근본적으로 파괴한다. 그 죽음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은 없다. 평소에 건강관리를 아무리 잘했다 하더라도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모른다. 며칠 전(7월10일)에도 한국 제1세대 여자 골퍼이자 오늘의 한국 여자 골퍼들이 세계 골프계에 군림할 수 있도록 선구자 역할을 했던 구옥..

팔복(17)- 부활의 빛 / 정용섭 목사

천국이 가난한 자의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까? 이것은 증명의 문제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증명이라는 말도 별로 명확한 게 아니다. 법원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보라. 검사는 피의자의 범행사실을 증명하려고 하고, 변호사는 무죄를 증명하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모든 증명들이 허위로 떨어진다. 과학도 모든 걸 명명백백하게 증명해내지 못한다. 성서언어는 증명의 차원이 아니라 고백의 차원이다. 허망한 사실을 고백한다는 말이 아니라 믿을만한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일단 믿을만하게 설명할 책임이 신학에게 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성서 언어가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고백이며, 믿음이다.천국이 가난한 자의 것이라는 사실은 예수가 메시아라는 믿음에 근거해서만 그 확실성이 보장된다. 그렇지 않으면 저 말씀은..

팔복(16)- 하나님의 통치 / 정용섭 목사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오해 중의 하나는 그것을 일종의 공간으로 보는 것이다. 천국을 다녀왔다는 사람들의 묘사는 한결같이 공간적이다. 멋진 집, 황금 면류관, 친구와 가족, 진수성찬 등이다. 시한부종말론자들인 다미선교회 류의 사람들도 하늘나라를 우주의 한 공간으로 여긴다. 요한계시록에도 새 하늘과 새 땅을 공간적인 어떤 것으로 묘사하고 있어서 신자들이 오해할만하다. 그러나 그것은 메타포이지 사실 언어가 아니다.참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가 오해되는 경우는 많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성서에 대한 열정이 과도한 교회에서는 더 심하다. 두 가지의 위험성이 있다. 첫째, 성서를 문자적으로 믿는 것이다. 성서 텍스트는 해석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2천 년 전 성서 텍스트를 쓰거나 읽던 사람들과 오늘 우리는 전혀..

'하나님을 아는 사람, 하나님을 찾는 사람, 하나님을 믿는 사람'(시53:2-3) / 이금환 목사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시편53:2-3) 하나님의 눈이 살피시고, 찾으시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 하나님을 찾는 사람,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가고, 더럽혀지고, 선을 행하지도 않고, 죄 중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구원하여 줄 자"(시53:6)를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가버린 죄인들을 구원하여 주시는 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십자가를 붙잡고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를 하나님은 기쁘게 맞으십니다. 오늘도 가던 길을 멈추고, 하던 일을 놓고, 세상에서 돌아서서 ..

성찰하는 신앙이 되지 못하면 발생하는 결과 / 신동식 목사

성찰하는 신앙이 되지 못하면 발생하는 결과 “성찰하지 않는 사람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 이 말은 그 유명한 그리스의 철학자 소코라테스의 말입니다. 성찰이란 자신의 일을 반성하여 깊이 살핌을 의미합니다. 성찰을 통하여 자신을 더욱 깊이 알아갑니다. 자신의 말도, 행동도 교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수가 적은 삶을 살게 합니다. 성찰을 잘 감당할 때 상식적인 생각과 행동을 합니다. 하지만 성찰이 없으면 독재자가 됩니다. 자기 소견이 항상 옳다고 생각합니다. 몰상식의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인격적 성장이 따라오지 않습니다. 성찰이 없으면 시대를 이해하는 눈이 빈약합니다. 대부분은 자기 확증의 삶을 살아갑니다. 성찰이 없으면 삶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자기 성장은 없고 항상 그 자리에 머물게 됩니다. ..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눅 6:1-11) / 신동식 목사

성경이 신앙 생활의 중심이라 말하는 사람일수록 항상 경계해야 할 자세는 성경 전체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성경의 단락만 기억한다면 바리새인과 같은 결과를 낳게 됩니다.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면서 이삭을 잘라서 손으로 비벼 먹었습니다. 매우 배가 고픈 상황입니다. 이때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였다고 비판을 합니다. 율법의 조문을 가지고 비판한 것입니다.그러자 예수님은 다윗이 자신과 신하들이 배고플때에 성전에 들어가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먹은 것을 상기 시킵니다.예수님은 바리새인을 향하여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언합니다. 바리새인은 인자에 대한 생각을 다르게 하였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계시한 말씀입니다.이번에는 안식일에 손..

행위가 아니라 중심이다. / 봉민근

행위가 아니라 중심이다.        글쓴이/봉민근영적인 사람은 영적인 것에 민감하다.내가 영적인 사람인지 아닌지는 자신이 안다.영의 사람은 영의 일을 생각한다고 하였다.그렇다면 집에 쌀이 떨어졌을 때 더 걱정이 되는가 아니면믿음이 떨어졌을 때 더 걱정이 되는가 질문한다면 문제는 복잡해진다.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운가 아니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 더 아쉬운가?참으로 유치원생에게 질문해야 할 유치한 질문이다.사실 이런 문제는 우열을 가릴 필요가 없는 문제다.둘 다 중요하다. 일용할 양식도 중요하고 사랑하는 사람도 중요하다.문제는 중심이다. 중심이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있느냐다.우열은 가릴 필요는 없지만 그 중심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그것은 우상 숭배라 했다.무엇을 하..

뒤집어진 나라 (막 9:33-37) / 김영봉 목사

해설:예수님과 일행은 가버나움에 이르러 잠시 머무신다. 그 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오는 길에서 다투는 것을 보았는데 무엇 때문이었는지 물으신다(33절). 그들은 길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34절)를 두고 다투었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알고도 모른 척 하셨을 것이다.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예수님이 아시고 물으시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일로 다투었다는 것에 대해 부끄럽게 느꼈을 것이다. 예수님이 누누히 가르치셨음에도 그들은 예수님이 지상 왕국을 세우실 것이라고 기대했고, 그 때 누가 일등공신으로 인정 받을 것인가를 두고 다투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불러 놓고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그는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35..

구원의 복음이 내게 임함은 주권적인 은혜입니다.(눅 6:12-26)

눅 6:12-26 묵상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이를 위해 항상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물으시고지혜와 은혜를 구하시고 기도로 무장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열두 제자를 세우시는 예수님.복음을 위해 특별한 소명을 받은 자들입니다.세상의 기준이 아닌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복음의 말씀으로 치유하고 회복시키시는 예수님.세상의 기준과 다른 복과 화를 선포하십니다.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선포입니다. 구원의 복음이 내게 임함은 주권적인 은혜입니다.그 은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소서!복음을 누리며 나누는 오늘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