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이윽고 어둠이 내리자 이집트는 통곡의 땅으로 변한다. 바로의 맏아들로부터 시작하여 짐승의 맏배까지 처음 난 것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29-30절). 일이 이쯤 되자 바로가 급히 모세와 아론을 불러 들여 모두를 데리고 이집트를 떠나라고 명령한다(31-32절). 이집트 백성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제발 떠나 달라고 간청했고(33절), 이스라엘 백성은 채 부풀지도 않은 빵 반죽을 그릇째 싸서 떠나야 했다(34절).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가 지시한 대로 이웃 사람들에게 금은 보석과 옷가지를 달라고 했고, 이집트 사람들은 요구하는 대로 다 내주었다(35-36절).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은 고역의 현장 라암셋을 떠나 숙곳에 이른다(37절). (이집트로부터 가나안에 이르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거쳐 간 지명들 중 상당수는 그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없다. 3천 년 이상의 세월을 지나 오는 동안 지명도 여러 번 바뀌었고 지형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로부터 가나안에 이를 때까지 거쳐간 경로를 정확히 재구성 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스라엘 백성은 "장정만 해도 육십만 가량"(37절)이었다. 어린이와 여성들까지 합하면 백만이 넘었을 것이다. 당시 이집트에는 수 많은 소수 민족들이 이스라엘 백성처럼 노예 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탈출에 가담했다(38절). 그들은 떠나 올 때 가지고 온 부풀지 않은 반죽으로 빵을 만들어 허기를 때우며 걸어야 했다(39절). 그것이 유월절 다음 날부터 일 주일 동안 무교절을 지킨 이유다. 이집트를 빠져 나온 후 다음 숙영지까지 누룩 없는 빵으로 허기를 때워야 했던 조상들의 고난을 체험하게 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를 대대로 기억하게 해 주었다.
야곱(이스라엘)의 자손 칠십 명이 이집트로 이주한 후 떠날 때까지 사백삼십 년이 걸렸다(40-41절).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 밤을 “주님의 밤”으로 불렀고, 그분이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며 밤을 새우는 전통이 이어졌다(42절).
묵상:
마지막 재앙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이렇게 잔인하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바른 답을 얻으려면 바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가 던져야 할 바른 질문은 “죄악에 빠진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완고 해질 수 있는가?”이며, “지도자 한 사람의 완고함이 온 백성에게 얼마나 큰 재앙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국가 지도자 한 사람이 지나친 탐욕이나 완고한 고집으로 국민 전체를 파멸로 이끄는 일들은 인류 역사 속에서 거듭 재현되곤 했습니다. 한 단체나 조직의 지도자로 세움 받은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그런 지도자를 둔 단체나 조직에 소속된 사람이라면, 지도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지도자의 선택이 그 조직과 단체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력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또한 끝내 하나님의 진노에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 지를 생각하게 해 줍니다. 바로는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기회들을 모두 거부하고 죄악의 끝에서 하나님을 마주합니다. 끝내 하나님의 선의를 거부했을 때 직면해야 하는 하나님의 진노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주어진 은혜가 클수록 그 은혜를 거부한 책임은 더 무겁습니다. 아직 기회 있을 때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야 합니다.
마지막 재앙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그분은 유월절 어린 양이 도살되는 시간에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른 것처럼,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우리의 이마에 바른 것입니다. 그 보혈이 우리를 사탄의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시키고 죽음의 사자로부터 보호해 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제사장의 백성으로 자유함을 얻은 것입니다.
기도:
주님, 지도자들의 탐욕과 완고함으로 고통 받는 나라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로 하여금 바로의 길을 가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들 위에 참된 주권자가 있음을 알게 하시어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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