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앞에서 저자는 “믿음과 인내로 약속을 상속받는 사람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12절)라고 했는데, 이어서 그런 사람들 중 대표자로서 아브라함의 예를 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약속을 주셨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했을 때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맹세하셨다(창 22:17). 맹세는 자기보다 더 큰 존재를 두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장 높으신 분이기에 당신 자신을 두고 맹세하셨다(13-14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맹세를 믿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며 “오래 참은 끝에”(15절)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다. 앞에서 저자는 “믿음과 인내”(12절)를 이야기 했는데, 아브라함은 인내로써 믿음의 길을 완주했다. 하나님은 맹세를 지키셨다(16절). 이로써 그분은 믿는 이들에게 주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사실을 확증해 주셨다(17절). 하나님은 구원 계획을 가지고 약속하시는 분이고,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라는 “두 가지 변할 수 없는 사실”(18절)은 믿는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여기서 저자는 믿는 이들을 “앞에 놓인 소망을 붙잡으려고 세상에서 피하여 나온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 “세상에서 피하여 나왔다”는 말은 현실 도피를 의미하지 않는다. 11장에서 저자는 믿는 이들을 “고향이 따로 있는 사람들”(14절)이라고 불렀다. 믿는다는 것은 궁극적인 소망을 하나님 나라에서 찾는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안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다(요 17:16).
믿는 이들이 소망하는 것은 “바라는 것들”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11:1)이다. 그렇기 떄문에 믿는 이들에게는 그 소망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맹세하셨다. 그것은 믿는 이들에게 “안전하고 확실한 영혼의 닻”(19절)과 같다. "휘장"은 성전의 지성소와 성소를 나누고 있던 천막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하나님 나라와 인간 사이를 막고 있는 벽을 상징한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그 휘장을 찢고 하나님의 성소 안으로 들어가심으로써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셨다(20절). 그분 안에서 우리도 역시 하나님의 휘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묵상:
믿음의 길을 가는 중에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고 먼저 믿음의 길을 완주한 사람들을 주목해 보라고 했습니다. 11장에서 저자는 그런 사람들의 이름을 차례로 나열하면서 독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여기서는 맛보기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예를 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도무지 현실성 없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도, 그의 아내 사라도 그 약속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약속을 끝내 지키셨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했을 때, 그의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아지게 하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저자는 그 약속을 맹세로 해석합니다. 지금까지 약속을 지킨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하셨다는 것입니다.
“약속”은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을 말하고, “맹세”는 “그 계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보증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는 분이다”라는 말은 그분이 온 우주와 인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큰 그림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분의 “섭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맹세하셨다”는 말은, 그분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뜻입니다. 그분의 “신실하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각 개인에 대해 그분은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그 계획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자손들(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제대로 안다면, 믿음의 여정에서 어려움을 당해도 “오래 참음”(15절)으로 완주할 수 있을 것이고, 결국 “휘장 안으로” 들어가 지성소에 서게 됩니다(10:19).
기도: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어 성전의 휘장을 제거하신 주님, 저희를 지성소, 그 거룩한 자리에 서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마음에 지성소를 품고 죄악이 가득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저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를 바라보게 해주십시오. 마음에 품은 지성소가 현실이 되어 주님을 뵐 때까지 저희의 믿음의 여정을 인도해 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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