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5장 11절부터 저자는 믿음의 성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독자들이 단단한 음식을 먹을 때가 되었는데 아직도 젖을 먹는 단계에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6장 1절에서 저자는 "단단한 음식"을 "성숙한 경지"로, "젖"을 "그리스도교의 초보적 교리"로 바꾸어 표현한다. 그는 독자들이 믿음에 있어서 진보하지 못하고 언제나 초보적인 경지에서 머물러 있다가 낙오할 것(6절, “타락”)을 염려하고 있다.
저자는 믿는 사람으로서 그들이 확실히 이해하고 있어야 할 중요한 교리 여섯 가지를 나열한다. 여섯 가지의 가르침은 두 쌍씩 묶을 수 있는데, 첫째는 “죽은 행실에서 벗어나는 회개”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1절)이고, 둘째는 “세례에 관한 가르침”과 “안수”이며, 셋째는 “죽은 사람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2절)이다. 첫째 쌍은 믿음의 첫 단계에 관한 것이고, 둘째 쌍은 믿은 후에 행하는 중요한 일에 관한 것이다. “세례”로 번역된 ‘밥티스모스’를 “정결례”로 번역할 수도 있다. “안수”는 안수 기도를 의미할 수도 있고, 직분자에 대한 안수를 의미할 수도 있다. 셋째 쌍은 믿는 이들의 미래에 관한 것이다. 이로써 저자는, 기독교 신앙의 시작과 과정과 마지막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들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가능하다(3절). 구원은 하나님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분이 허락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분께서 빛을 비추어 주셔야만 우리가 깨달아 알 수 있다. 하지만 빛 가운데 눈을 감고 있으면 빛의 혜택을 입을 수 없다. 빛이 비치면 일어나 활동을 해야 한다. 그것이 성숙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만 영적 성장이 일어난다. 지금 히브리서 독자들은 “한번 빛을 받아서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을 나누어 받고, 또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장차 올 세상의 권능을 맛본 사람들”(4-5절)이다. 그렇다면 그 은혜 안에서 계속 자라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타락”(6절)하게 되고, 그들은 다시 돌이킬 수가 없다.
이어서 저자는 믿는 사람들을 땅에 비유한다. “땅이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7절)라는 말은 성령을 통해 매일 내려 주시는 은혜를 말한다. 그 은혜 안에 있는 사람은 “유익한 농작물” 즉 좋은 열매를 맺는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복되게 하신다. “가시덤불과 엉겅퀴”(8절)는 불신앙의 행위와 죄를 가리킨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런 삶을 살면 “쓸모 없는 땅”이 되어 버리고, 그 땅은 “저주를 받아서 마침내는 불에 타고 말 것”이다.
묵상: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하는 칼빈주의 파에서는 "한 번 받은 구원은 취소될 수 없다"(Once saved, always saved)고 주장합니다. 반면,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아르미니안 파에서는 "이미 받은 구원은 취소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수 백년 지속되어 온 이 논쟁은 아직 결론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는 골치 아픈 책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히브리서 전체 중에서도 가장 명시적으로 “한 번 받은 구원도 취소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논쟁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은 신비이시고 우리 인간의 이해력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칼빈주의적 구원론과 알미니안적 구원론은 서로 모순되어 보이지만 하나님의 거대한 신비의 서로 다른 차원을 설명한 것입니다. 둘 중 어느 하나가 틀리는 것이 아니라, 둘 다 하나님의 신비의 일부를 설명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 까닭에 요즈음에는 이 문제를 두고 그리 심하게 논쟁하지 않습니다. 서로에게 어느 정도의 진리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오늘의 본문에서 구원론에 대한 어떤 주장을 펼 뜻이 없습니다. 그는 분명히 믿음의 길에서 낙오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합니다. 주의를 게을리하여 “잘못된 길로 빠져드는”(2:1, “떠내려가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악한 마음을 품고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떠나는”(3:12)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빛을 받아서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을 나누어 받고, 또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장차 올 세상의 권능을 맛본 사람”(4-5절)이라면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미 받은 은혜를 귀하게 여기고 계속하여 성장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초보적 교리를 제쳐놓고서, 성숙한 경지로 나아갑시다”(1절)라고 권면합니다.
살아 있는 것은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생명에게 있어서 자라지 않는다는 것은 죽어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참되다면 살아 있어야 하고, 살아 있다면 계속 자라가야 합니다. 그런 믿음은 “떠내려 가지도”, “떠나가지도” 않습니다. 이미 받은 구원의 은혜가 너무 값진 것을 알기에 계속하여 자라가기를 힘씁니다.
기도:
주님, 저희에게 빛을 비추셔서 하늘의 은사를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시며, 장차 올 세상의 권능을 경험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저희를 붙드시어 이 귀한 구원의 은혜로 인해 유익한 열매를 맺게 하시고, 매일 성장해 나가게 해주십시오.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좋은 말씀 > -사귐의 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더 좋은 것들 (히 6:9-12) / 김영봉 목사 (0) | 2025.03.25 |
---|---|
영적 근육 키우기 (히 5:11-14) / 김영봉 목사 (0) | 2025.03.22 |
기도할 이유 (히 5:7-10) / 김영봉 목사 (0) | 2025.03.21 |
주님 은혜 의지하여 (히 5:1-6) / 김영봉 목사 (0) | 2025.03.20 |
우리를 아시는 주님 (히 4:14-16) / 김영봉 목사 (0) | 2025.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