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묵상

내 갈길을 간다.(눅 13:22-35) / 신동식 목사

새벽지기1 2025. 3. 22. 07:09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어떤 사람으로부터 구원에 대한 질문을 받습니다. 누가복음은 이렇게 길위에서의 제자도를 보여줍니다.

구원받을 자가 적느냐는 질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좁은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합니다. 좁은 문은 많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문도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많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좁은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할 이유를 자기 집문을 닫은 집주인의 이야기를 비유로 알려줍니다. 집주인이 문을 닫으면 열자가 없습니다. 밖에서 열러달라고 할 때 문을 열 수 있는 주권자는 주인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모르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 줄 수 없습니다. 그러자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하였던 사람들은 항상 같이 있었고 가르치지 않았느냐고 반문합니다.

이때 주인은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너희가 어디서 왔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행악하는 자들에게 떠나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너희는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라 말씀합니다.

슬피울며 이를 가는 것은 악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악은 말씀을 가르쳤으나 순종하지 않은 죄입니다. 말씀은 말씀이고 나는 나라는 의식이 가득합니다. 자기 의에 빠진 자들입니다. 좁은 문이 아니라 넓은 문을 추구하였던 자들을 함의합니다. 그 마지막은 슬피울며 이를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 동참할 자 즉 좁은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이 동서남북에서 옵니다. 먼저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됩니다. 복음을 먼저 들었다고 먼저된 것이 아니라 복음을 고백하고 순종하는 자가 먼저 됩니다.

그때 바리새인이 헤롯이 죽이려고 하니 떠나라고 요청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요청에 대하여 여우같은 헤롯을 향하여 말씀합니다. 나는 내 갈길을 간다고 말씀합니다. 그 길은 선지자들이 갔던 길이고 전도자들을 죽였던 좁은 길입니다.

권력자의 폭력 앞에서 받은 소명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권력은 폭력을 행사하라고 주지 않았습니다. 질서를 유지하도록 맡긴 한시적 위임통치자입니다. 그런데 그 권력으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을 때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주님은 복음을 전하였으나 듣지 않은 자들은 황폐하게 되는 파멸과 심판이 임할 것임을 경고합니다. 더구나 사랑을 충만하게 주었음에도 거부한 예루살렘을 향하여 더 큰 심판을 말씀합니다. 사랑을 받은 자는 사랑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재림의 날은 심판의 날입니다.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이미와 아직의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것은 좁은문으로 들어가고 좁은 길를 가는 과정입니다. 사람들의 소리가 아무리 커도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구원은 복음을 순종하는 좁은문으로 들어가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입니다. 보이는 것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음이 이 땅에는 가득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나라를 향한 좁은문의 삶은 적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복음의 길을 자기의 길로 삼고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누가 무엇이라 하여도 복음과 함께 내 길은 갈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