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말씀사역 가운데 함께하였던 한 바리새인이 초청을 합니다. 예수님은 기꺼이 그 초청에 응합니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초청을 한 바리새인입니다. 바리새인의 집에서 밥을 먹는데 손 씻지 않는 문제로 예수님은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자신들이 늘 하던 행위를 하지 않는 예수님을 비판적으로 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지적하십니다. 잔과 대접은 깨끗하게 하면서 속은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고 말씀합니다. 이미 예수님은 속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다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지적하시고 속에 있는 탐욕으로 구제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참된 깨끗함을 얻을 것이라 말씀합니다. 바리새인의 문제는 탐욕이었습니다. 자기 욕망을 숨기고 겉모습만 치장한 것에 대한 지적입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본격적으로 바리새인의 외식을 열거합니다. 첫째, 물질의 십일조는 드리되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버린 것을 책망하면서 둘 다 하는 것이 옳다고 말씀합니다.
둘째, 권력을 추구하고 영광 받기를 추구하는 행위를 책망합니다. 셋째, 평토장한 무덤이어서 그 위를 밟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시체가 무슨 반응을 하겠습니까? 이것은 바리새인이 듣기에 너무 거북하였습니다. 그래서 듣고 있는 던 한 율법사가 우리를 모욕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율법사의 말씀을 들은 후에 위축되지 않고 더욱 분명하게 불호령을 내리십니다. 율법 사들의 외식을 지적합니다. 사람들에게 무거운 율법을 말하면서 자신들을 지키지 않습니다.
율법사들은 자기 조상들처럼 선지자를 죽이는 자라고 책망합니다. 예수님은 선지자들의 피를 흘린 것은 이 시대가 감당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들이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이는 일을 합니다.
율법사들의 행위가 끔찍한 것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자신도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도 못 들어가게 합니다. 이 말씀은 율법이 주는 가르침은 자신의 죄인됨을 인식하게 하고 오직 그리스도께 나오게 함으로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 목적인데 이들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문제는 누구도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로 인하여 모두가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지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거세게 몰려가서 따져묻고 책 잡을 일이 무엇인지 노렸습니다.
진리의 말씀이 들려질 때 자기의 생각과 지식에 맞지 않으면 뱃어버리고 비판하고 무시하는 것이 바로 외식하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주의 자녀는 그렇게 말씀하심이 무엇인지 다시 묻습니다. 그리고 내 생각과 경험을 돌아보고 자신을 교정합니다.
초청받은 집에서 주님은 무지하고 불의한 일에 대하여 불호령을 내리십니다. 이로 인하여 거센 비난과 모욕을 당할 수 있지만 진리를 전하는데 물러서지 않습니다.
외식하는 시대입니다. 자신이 예수님인줄 착각하여 생명의 여탈권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항상 사랑으로 진리를 전하라고 합니다. 사랑이 없는 진리는 울리는 꽹과리입니다. 외식하는 자들은 자기외에는 다 적이 됩니다. 외식은 화석같은 신앙입니다.
주님의 불호령 앞에 다시한번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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