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맡기고 기다린다는 것 (막 10:32-34) / 김영봉 목사

새벽지기1 2025. 3. 4. 05:43

해설: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어느 지점에서부터 갑자기 예수님은 비장한 표정과 태도로 걸음을 재촉하신다. 뒤에서 따라가면서 그분의 뒷모습을 본 제자들은 “놀랐으며, 뒤따라 가는 사람들은 두려워하였다”(32절). 로마 군대와 결전을 벌일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옛날 마카비 형제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황제를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던 것처럼, 그들도 예수님이 벌이실 전쟁에 투신해야 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 설레게 하는 일이었다.

 

그것을 아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는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일에 대해 알려 주신다(33-34절). 마가복음의 이야기 속에서 이것은 세번째 예고다(8:31; 9:31). 실제로는 더 많이, 더 자주 말씀해 주셨을 것이다. 이번에는 그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이유는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력하게 죽임 당하기 위해서다. 그분은 먼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고, 그들은 그분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이방인에게 넘겨주어 조롱과 모욕을 받다가 죽게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분은 사흘 후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날 것이다. 

 

묵상:

예루살렘에 가까워지자 예수님은 걸음을 재촉하셨고 제자들은 결전의 날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로마 군대와 일전을 치룰 생각으로 인해 두려워 떨면서도, 승리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도파민이 몸의 모든 신경에 퍼지는 것 같은 흥분을 느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행한 이적의 능력이면 로마 군대를 충분히 섬멸할 수 있고, 위대한 다윗 왕국을 재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을 아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서 당신이 할 일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무력하게 고난 당하고 죽임 당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드리고 그분의 뜻을 따라 행할 때, 하나님은 그분의 시간에, 그분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내려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세우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입니다. 그분에게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력하게 자신을 내어 주시고 십자가에 죽으실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당도할 때까지 하나님 나라의 이 속성을 깨닫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홀로 십자가에 달려 죽게 했습니다. 제자들의 이 몰이해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울 물리적 왕국으로 보는 오해가 얼마나 뿌리 깊은 지, 그리고 그것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시간 안에, 자신들의 능력으로 세우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질긴 지를 반증해 줍니다.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기다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이 행하실 일을 기다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주권을 포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자신의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 죽기보다 어렵습니다. 제자들이 옛 사람이 죽고 나서야 제대로 믿고 따를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기도:

주님, 저희에게도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저희에게도 저희의 기준대로, 저희의 시간표 대로, 저희의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오, 주님, 저희의 이 집요한 오해를 고쳐 주시고, 이 뿌리깊은 조급증을 제거하여 주십시오. 우리 존재 전체를 주님께 맡기고 주님이 행하시는 일을 기다리고 따르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