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복이 화가 되지 않도록 (막 10:17-22) / 김영봉 목사

새벽지기1 2025. 3. 1. 07:47

해설:

그렇게 말씀하신 다음, 예수께서 길을 떠나시려 하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는다(17절). “달려왔다”는 표현에서 그의 절박한 심정을 읽을 수 있다. “무릎을 꿇었다”는 말은 예수님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이다. 

 

그는 예수님께, “선하신 선생님”(17절)이라고 부른다. 그러자 예수님은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18절)고 답하신다. 그 사람이 생각한 선함과 예수님이 생각한 선함이 달랐다. 인간적인 수준에서 “선하다” 할 만한 사람은 많다. 그 사람은 그 정도의 수준에서 예수님을  선하다고 불렀다. 예수님은 온전한 의미에서 선함을 생각하셨다. 절대적 의미에서 선하신 분은 하나님 뿐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한껏 높인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아직 그분이 누구이신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그는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여쭌다. ‘클레로노메오’는 “얻으려면” 보다는 “받으려면”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낫다. 영원한 생명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받는 것이다. 이 사람은 당시 많은 유대인들처럼 무엇인가를 행하여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내심을 아시고, 십계명 중에서 이웃과 관계되는 계명들을 열거하신다(19절). 그러자 그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20절)라고 답한다. 예수님은 그가 진심인 것을 아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셨다”(21절).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기 위한 그의 노력을 가상히 보셨다는 뜻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치열한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문제였다.

 

예수님은 “너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21절)고 말씀하신다. “부족하다”로 번역된 ‘휘스테리오’는 “심각한 결여”를 의미한다.  그것이 없으면 다른 모든 것이 무용해지는 결핍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그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와서 당신을 따르라고, 그렇게 하면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그러자 그 사람은 “울상을 짓고, 근심하면서”(22절) 떠나갔다. 그는 부자였기 때문이다. 

 

묵상:

예수님에게 찾아온 사람은 부자로서 이 땅에서 부족할 것 없이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는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고 믿고 있었음에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는 어릴 때부터 계명과 율법을 연구하고 어김없이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20절) 라는 답에 대해 예수께서 긍정하신 것을 보면, 그 말에 거짓이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십계명의 후반 여섯 계명(5계명부터 10계명까지)은 웬만한 노력이면 범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계명과 율법은 최소한의 도덕을 규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그 사람에게 준 첫번째 질문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율법적 의에 대한 자만심을 드러내기 위한 수사적 전략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노력으로 영생(하나님 나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점에서 꽤 잘 하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율법적 의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자, 예수님은 그에게, 정작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결여되어 있다고 지적하십니다. 그것이 없으면 그가 행한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 없이는 나에게는 아무 소망이 없다”는 전적인 신뢰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플러스 알파’였습니다. 그가 영생을 원하기는 했지만 모든 것을 잃어도 좋다는 태도는 아니었습니다. 마가가 이 이야기 바로 앞(13-16절)에 어린이처럼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라는 말씀을 기록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극단적으로 보이는 명령을 그 사람에게 주십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의 명령을 듣고 “울상을 짓고, 근심하면서” 떠나갔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가진 것들을 모두 포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도:

주님, 저희가 이 부자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저희의 마음이 너무나 작습니다. 살아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고 죽어서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를 원하지만, 그것이 저희의 최우선의 관심사는 아닙니다. 저희는 가진 것이 너무 많고 누릴 것이 너무 큽니다. 오, 주님, 이 땅에 소망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오직 주님만을 바라는 어린아이처럼, 저희의 믿음을 고쳐주십시오. 이 땅에서 가진 것과 누릴 것 때문에 하나님 나라 문턱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저희를 붙들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