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차별의식이라는 죄 (막 10:13-16) / 김영봉 목사

새벽지기1 2025. 2. 28. 05:14

해설:

그 때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축복해 주시기를 청한다. “쓰다듬어 주기”(13절)는 손을 얹어 축복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그것을 보고는 제자들이 그 사람들을 꾸짖는다. “꾸짖다”로 번역된 ‘에피티마오’는 예수님이 베드로를 꾸짖을 때 사용된 단어로서(8:33) 호되게 질책하는 것을 의미한다. 앞에서 예수님은 어린이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존중하라고 하셨는데(9:36-37),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마가는 “예수께서 이것을 보시고 노하셔서”(14절) 라고 적는다. “노하다”로 번역된 ‘아가낙테오’는 심한 분노의 감정을 가리킨다. 제자들이 아직도 깨닫지 못하여 사람을 차별하는 것에 대해 격분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어린아이들처럼 사회에서 존재감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더욱 필요하다. 하나님 나라는 모든 이들이 동등하게 높임 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15절)라고 덧붙이신다.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인다”는 말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인정하고 그 다스림 아래에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받아들인다”는 말은 모든 소망이 하나님께 있다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갈망하고 의지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거기에 들어간다”는 말은 죽어서 천국 간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과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말씀하신 다음,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신다(16절).

 

묵상:

최근에 어느 기관장이 “가난한 집 아이들과 부자집 자제들”이라고 말하여 뉴스에 올랐습니다. 그 사람의 무의식에 깊이 배인 차별의식이 불쑥 튀어 나온 것입니다. 이 언사에 대해 분노감보다는 수치감을 더 강하게 느낀 이유는, 우리 모두의 무의식 안에 그와 같은 차별의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속에 감추어둔 차별의식을 들킨 것 같은 느낌 때문일 것입니다. 

 

차별의식에 젖으면, 우리는 인종, 출신지역, 가정배경, 외모, 실력, 직업, 종교, 재산 같은 것들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사람에 대한 처신을 달리합니다.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 같으면 가까이 하고, 그렇지 않으면 가차 없이 등을 돌립니다. 그렇게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존재 가치를 부정 당하는 사람들을 “사회적 약자” 혹은 “사회적 소수자”라고 부릅니다. 예수님 당시에 여성, 어린이, 장애인, 가난한 사람들, 이방인, 노예 같은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의 권리는 자주 부정 당했고, 정의는 늘 그들을 외면했습니다.   

 

차별의식은 죄성의 가장 악한 증상이며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사고방식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이들에게 당신의 형상을 주셨고, 모든 이들을 사랑하고 계시며, 모든 이들을 구원하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에 사회적 약자들을 주로 찾으셨고, 식탁을 열어 그런 사람들을 초청하셨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가장 필요했기 때문이며,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가장 갈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 아무 소망이 없기에 하나님을 바라고 갈망했습니다.

 

예수님 곁에서 이런 모습을 보아 온 제자들은 자신들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차별의식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과 행동은 차별의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차별의식의 뿌리가 깊고 그 영향력이 강하다는 뜻입니다. 

 

기도:

주님, 주님이 차별하지 않는 분이기에 저희가 주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차별하지 않는 분이기에 저희는 언제든, 어떤 상황에서든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같은 사람”을 받아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저희도 그런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대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차별의식이 아직도 저희 안에 남아 있음을 고백합니다. 오,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주시어, 이 깊은 차별의식을 제거하여 주시고, 누구를 만나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대하게 하여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