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나와 복음을 위하여 (막 10:23-31) / 김영봉 목사

새벽지기1 2025. 3. 2. 06:29

해설: 

그 사람이 떠나가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재산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참으로 어렵다”(23절)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에 제자들은 적잖이 놀란다(24절). 그들의 생각을 꿰뚫어 보신 예수님은, 한 술 더 떠서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25절)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과장법을 섞은 비유로서, “가능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 말씀에 제자들은 더욱 놀라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26절) 하고 묻는다. 당시 유대교 가르침에 의하면, 부는 의로운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따라서 부자가 구원 받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더 말할 것 없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다. 하나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27절)고 대답하신다. 구원 즉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인간이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당시 유대교는, 인간이 의를 쌓아서 하나님의 커트라인을 통과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가르쳤다. 부자는 그렇게 할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이다. 예수님은 이 생각을 뒤집어 엎으신다. 구원은 인간이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며, 인간의 의는 그 선물에 대한 응답이다. 부의 정도는 그 사람의 의의 정도와 상관 없다. 

 

그러자 베드로는 “보십시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선생님을 따라왔습니다”(28절) 하고 답한다. 이 말은 부자 청년이 “선생님, 나는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20절)라고 답한 것과 다르지 않다.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것을 자신의 의로 여겼다. 이 말을 하면서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그래, 너는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칭찬해 주실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못 들은 척 하신다. 

 

그 대신에 예수님은, 당신과 복음을 위해 희생한 것들은 이 땅에서 그리고 오는 세상에서 넉넉히 보상될 것이라는 약속을 주신다(29-30절).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29절)를 버리라는 말씀은 다소 충격적이다. 예수님은 가르치실 때 자주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표현을 사용하셨다. 전하려는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시키려는 뜻이었다. 예수님의 의도는 자녀 혹은 부모의 책임과 도리를 져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제자들처럼 사명을 위해 모든 소유를 포기하고 가족에 대한 책임을 내려 놓아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누구나, 언제나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우선순위다. 제자의 삶에 있어서 가장 앞에 있어야 할 것은 예수님이요 하나님 나라요 복음이다. 매일의 일상 생활 중에 행하는 수 많은 결정과 선택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를 맨 앞에 두기를 힘쓰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떠나야 할 때—특별한 부름에 응답해야 할 때 혹은 죽음의 문턱에서—미련 없이 내려 놓고 나아갈 수 있다. 그럴 때 하나님은 포기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으로 보답해 주신다.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31절)이라는 말은 땅의 질서와 하늘의 질서가 대조적이라는 의미다. 이 땅에서 높임 받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서 낮은 사람이고, 세상에서 큰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작은 사람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작고 하찮케 여김 받는 사람들을 찾아가셔서 복음을 전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그런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하기 때문이다. 

 

묵상:

어른이 되는 것, 부자가 되는 것, 권력의 자리에 앉는 것, 유능해 지는 것, 똑똑해 지는 것—이 모든 것은 누구나 추구하는 이상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일입니다. 인간의 역사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된 이유는 모두가 강자가 되고 최고가 되고 부자가 되려고 경쟁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그것을 추구하는 이유는 그럴 때 우리의 죄성이 만족을 얻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신이 되고 왕이 되고 주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대로 많은 사람들을 다스리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어른이 되어야 하고 부자가 되어야 하며 권력을 가져야 하고 강해져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정반대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아이처럼 되는 것, 가난해지는 것, 무력해지는 것, 무능해지는 것, 어리석어 지는 것을 추구하라고 하십니다. 아이처럼 되라는 말은 성숙해지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가난해지라는 말은 놀고 먹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물질을 목적으로 삼아 물질의 노예로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무력해지라는 말은 자신에게 주어진 힘으로 부리려 하지 말하는 뜻입니다. 무능해지라는 말은 자신의 능력을 의존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어리석어지라는 말은 자신의 지식을 과신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주어진 성숙과 부와 권력과 능력과 지혜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길에서 걸림돌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있든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언제나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의지하는 것이 영적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 놓았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의 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그 무엇으로도 의롭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겸손한 마음으로 그분 앞에 서서 어린아이처럼 그분이 내려주시는 은혜를 기다릴 뿐입니다. 그 은혜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어드린 후에도 “우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눅 17:10) 하면서 기뻐하고 감사할 것입니다.  

 

기도:

저희의 내면을 저희 자신보다 더 잘 보시고 아시는 주님, 저희 안에 혹시 의로 여기는 어떤 것을 보셨다면 주님의 수술칼로 그 생각을 도려내어 주십시오. 저희의 생명을 다 살라바쳐도 주님의 은혜를 얻을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주님의 은혜는 오직 주님의 사랑 때문에 저희에게 내려주시는 것임을 믿습니다. 오, 주님, 저희를 주님의 은혜로 감싸 주셔서 이 땅에 속한 어떤 것도 주님보다 커보이지 않게 해주십시오.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이 저희의 가장 큰 목적이 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