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에베소에서 강론을 계속합니다. 말씀이 증거되자 두 종류의 사람이 형성됩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와 비방하는 자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복음이 선포되면 순종하는 자와 비방하는 자가 존재합니다.
바울은 순종하는 자들을 모아서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을 강론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바울에게 큰 능력을 주셔서 병이 낫거나 악귀가 떠나는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자 말씀을 시험하는 유대인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나 예수님을 도구로 사용하고자 하는 이들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귀 들린자를 쫓아내고자 합니다. 그런데 악귀 들린자가 말합니다.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너희는 누구냐고 대들면서 이들을 제압합니다. 결국 이들은 도망가고 맙니다. 이 사실이 많은 이에게 알려지고 더욱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그 가운데 아주 특이한 일은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이 책을 가지고 와서 불사르렀는데 그 값이 은 오만입니다.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주의 말씀이 힘이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복음을 듣자 허망한 책들이 사라졌습니다. 복음이 약해지면 허망한 책들이 흥왕합니다. 복음으로 세상을 볼 것인지. 세상으로 복음을 해석할 것인지가 늘 투쟁인 이 땅의 삶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씀에 대하여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문화로 성경을 해석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시대마다 성경은 달라지고 기준이 모호해집니다. 성경으로 문화를 분별하는 것은 어렵고 힘들고 욕을 먹고 조롱를 받을 수 있지만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감당할 일은 변함없는 말씀이 강론되는 일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역사하고 구원받는 일이 일어납니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는 일이 지난한 일이지만 바르고 생명 얻는 길입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자신의 성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도구로 사용할 때 반드시 창피함을 당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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