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6)
어제 저는 “의인은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노파심으로 다시 말씀드린다면, 의로움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의 의를 부정하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여기서의 불행이라는 것은 의가 자기 능력, 소유, 업적으로 나타나는 사태를 가리킵니다. 의는 옳으나 의에 묶이는 건 옳지 않다는 말씀이지요.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최선으로 의를 행하는 삶, 그리고 하나님이 그걸 인정해 주는 삶이 곧 그리스도교 신앙이라고 생각할 분들이 있겠군요. 옳습니다. 팔복에서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마 5:6)는 말씀이 들어있는 걸 보면 이런 삶이 중요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의가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의는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여기서 자신을 나타내지 않는 의와 나타내는 의를 명확하게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간단한 건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위와 생각을 판단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행위마저도 판단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과 생각과 무의식은 그런 정도도 이중적이고 모순적이기 때문입니다. 의에 대한 궁극적인 판단은 그건 성령에게만 허락된 것이지 우리에게는 아예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인으로 인정받을 뿐이지 스스로는 의롭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의롭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거리가 먼 사람이겠지요. 그런 사람의 내면은 예수 그리스도를 별로 필요로 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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