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오늘은 컨설턴트 박성재 님의 《져주는 대화》를 하나님께 드리며
‘져줄 때 승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는 것과 져주는 것은 다릅니다.
지는 것은 힘이 없어서 지는 것이기에 분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져주는 것은, 이길 능력과 힘이 충분하지만, 스스로 양보하는 것이기에 마음에 상처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를 일어나게 해 주었다는 자부심이 넘쳐나게 됩니다.
승부의 세계는 이기는 자와 지는 자가 있습니다.
대화에도 이기는 대화와 지는 대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져주는 대화’도 있습니다.
이 책의 부제가 “대화의 승부에서 이기면 승리감을 얻지만, 져주면 사람을 얻는다”입니다.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전투에서 져주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대화 시에 상대방을 이기고자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이겨야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으며, 여러 가지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화의 승자는 목적을 성취할 수는 있겠지만, 사람을 잃을 수 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져주는 게 이기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물러설 줄 알고 양보를 한다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져주는 대화로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다면 최고의 열매일 것입니다.
아버지는 종종 아들과 씨름을 하면서 져줍니다.
엄마와 딸이 숨바꼭질을 하면 엄마가 옷자락을 보여 주며 잡혀 줍니다.
진 것이 아니라 져준 것입니다.
물론 이기는 승리감을 주는 것보다 지더라도 근성을 길러 주기 위해,
악착같이 부모가 자녀를 이기는 교육법도 있겠지만, 져주는 교육은 더욱 효과적입니다.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사람과 씨름해서 이겼습니다.
이게 무슨 일일까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져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져주는 것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자격이 없는데 받게 하시고, 누릴 수 없는데 누리게 하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멸망치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져주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설탕은 자기 맛을 내려고 하지만, 소금은 남의 맛을 내 줍니다.
남의 맛을 내 주려면 제 몸이 녹아야 합니다.
양보하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이길 수 있지만 져줄 때에 그리스도인의 맛이 나게 됩니다.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은, 그리고 신앙이 성숙한다는 것은,
이기며 사는 행복보다 져주며 사는 행복이 더 크다는 걸 깨달아가는 것입니다.
‘당신멋져’란 유머가 있습니다.
“당당하고 / 신나고 / 멋지게 살되 가끔은 / 져주자” 라는 뜻입니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창3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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