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기타

자본주의의 발생과 폐해 / 정대서 장로(온누리교회)

새벽지기1 2021. 4. 17. 07:11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이념에 대한 논쟁이 많다. 인본주의에 근거한 사회주의 이념은 근거가 없다. 만약 인본주의적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정치가가 있다면 그것은 자기의(自己義)에 의한 착각에 불과하다. 때가 되면 그것이 허구인 것을 모든 사람이 깨닫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적인 정책이든 자본주의적인 정책이든 그것이 성경적일 때에만 의미 있는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정직하고 근면하게 부를 축적하는 것을 칭찬하기도 하셨고, 다른 한편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손을 벌리는 마음도 칭찬하셨다. 자본주의적인 말씀도 하셨고, 사회주의적인 말씀도 하셨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비록 교회에 오래 다니고 설교를 많이 들었을지라도 본성적으로 이성을 따라서 행하자는 인본주의적 사회주의가 굉장히 성경적인 것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조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념적인 것들은 각자의 신앙적 확신(Paradigm)이기 때문에 논리적 논쟁으로는 설득과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 그보다는 나무를 보면 열매를 알 듯 각각의 이념이 역사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어느 주장이 옳고 더 성경적인지 분별하는척도가 된다.


자본주의의 발생과 폐해에 대해 살펴보자.


16세기 초 종교개혁이 있고 나서 유럽은 가톨릭 우세 지역과 개신교 우세 지역으로 점차 나뉘게 된다. 시간이 더 지나면서 개신교 우세지역의 소득수준이 가톨릭 우세 지역보다 높아져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19세기 말에 이르자 가톨릭 지도자들은 당대의 저명한 사회작자 막스 베버에게 그 차이가 생기게 된 원인을 조사해달라는 연구용역을 의뢰하
게 되는데 그 결과 보고서가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01년)이다. 막스 베버에 따르면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기업은 믿음의 고용주와 믿음의 피고용자가 만날 때 기업과 주변 사람들을 풍요롭게 한다. 고용주라는 직분을 하나님의 소명으로 인식한 사업가는 사리사욕을 버리고 건강하게 기업을 운영해서 수익을 창출하고, 창출된 수익을 자신의 과시와 사치를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재투자 한다. 피고용자들은 제품을 잘 만드는 것을 하나님의 소명으로 인식하고 처우에 관계없이 최선의 작품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이런 고용주와 피고용자들이 만나면 그 기업은 수익을 많이 낼 수밖에 없고, 반복되는 재투자로 사회 전체가 풍요로워진다는 것이 베버의 연구 결과다. 그 근본 원인으로 가톨릭에서는 일반 성도들에게 성경의 소지와 묵상을 금지시킨 반면 개신교에서는 자국어 번역성경 소지와 묵상을 강조하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풍요한 사회가 되면 많은 사람이 신앙(하나님, 소명)을 버리고 이기주의적으로(자기를 위하여) 살게 된다. 자본주의가 풍요한 사회에서 신앙 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자기중심적으로 오용될 때 많은 문제를 낳게 된다. 자본가는 사리사욕을 위해서 피고용자들을 착취하고 온갖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면서 이익의 극대화만을 노리는 경우가 점점 증가한다. 자신의
이익을 침해당한 피고용자들은 이에 저항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파업과 태업을 무기로 삼게 된다. 이러한 사회가 되면 기업의 본래 목적에 대한 인식과 하나님에 대한 소명의식은 약해지고, 오로지 탐욕 대 탐욕의 투쟁상태로 들어가고 만다. 이기적인 고용주와 이기적인 근로자들의 다툼은 사회의 다른 부분에서도 수많은 문제를 남기며 사회 전체에 불안을 야기시킨다. 사람들이 살기 힘든 상태로 몰아간다. 이러한 경제적 부조리를 바라보며 분노한 칼 마르크스는 자신의 개인적 원한까지 실어서 <자본론>을 집필하고 공산주의 선언까지 준비하게 된다. 공산주의는 인본주의의 경제적인 극단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칼마르크스가 분노한 이유는 결국 돈을 가진 자들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었다. 명석한 사람이었지만 성경적 진리를 알지 못한 채 인본주의적 시각에서 분노와 정의감만을 가지고 책을 집필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전제부터 오류에 근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