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난민에서 벗어나기- 지 교회 성도의 신앙하는 자세
“예배는 드리는데 설교시간에는 인터넷으로 다른 목사님의 설교를 듣습니다.”
가슴 아픈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몸은 교회당에 있는데 영혼은 다른 곳에 가 있음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는 시대에 볼 수 있는 슬픈 일입니다. 이렇게 된 연유에는 아마도 목사의 책임이 가장 크리라 생각합니다. 말씀과 인격에 있어서 신뢰를 주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목사의 한 사람으로 항변하기에 너무나 부끄러움을 인정합니다. 목사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말은 수천 번 들어도 과함이 없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목사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짧게 사역하고 빨리 주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모두에게 유익합니다. 오래 살면서 추악함을 보여주는 목사처럼 불쌍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빨리는 죽는 것을 그렇게 원하였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분명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지 교회 성도들의 자세 역시 중요합니다. 목사의 실수가 자신들의 실수를 정당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예배는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를 듣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자신의 자리를 잘 감당해야 합니다. 예배의 자리가 범죄의 자리가 되는 것처럼 불쌍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 교회 성도들과 목사의 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영적이며,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면 영적인 선물을 풍요롭게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이유가 분명합니다. 바로 은혜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는 방편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바른 복음이 선포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성례가 시행되는 곳입니다. 또한 말씀에 근거한 바른 권징이 집행되는 곳입니다. 아마 여기서 가장 힘든 것은 세 번째일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된 교회가 아니라 참된 교회를 세우려면 성경이 말하는 이 기준을 잘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하여 세운 지 교회 목사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잘 감당해야 합니다. 사실 지 교회 성도의 시작은 바로 지 교회 담임목사의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지도하는 목사의 가르침을 근거로 다른 이야기들을 분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교회 따로, 신앙 따로, 목사 따로가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를 분열케 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참된 교회의 성도는 지 교회 목사의 가르침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으로 역사적 신앙고백을 보아야 합니다. 물론 때때로 이해의 부족으로 충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때 충돌이 일어나면 성도의 자세는 목사에게 질문하고 답을 얻어야 합니다. 지 교회 목사는 정직하고 신실하게 어떠한 질문에도 답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혹 정직한 답변을 듣지 못하였을 때는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던 근거를 세세하게 나눠야 합니다. 이 과정이 힘들다고 서로 피하면 예배 시간에 서로 죄 짓는 자리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목사와 성도는 서로 질문하면서 자라나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없이 다른 이의 관점으로 자신의 신앙을 세우고 있다면 그는 교회가 무엇인지, 신앙이 무엇인지 모르는 무지한 자입니다. 특별히 오늘날 많은 책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세미나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 가운데 역사적 신앙 고백을 무시한 채 현대적 신학을 가르치면서 아주 신선함을 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비록 이단 사상을 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얻을 수 있는 정보에 대하여 자신을 인격적으로 가르쳤던 목사에게 질문하고 성경적인 답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인격적인 관계는 없고 정보에 의하여 신앙생활하는 영적 난민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수 없이 나오는 책은 자신을 인격적으로 가르치는 선생을 무시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책을 읽으라고 하는 이유는 선생을 더 이해하고 섬기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책을 읽었고 좀 새로운 것을 알았다고 교만해져서 선생의 말을 무시한다면 정말 무지한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자신을 가르치고 있는 지 교회 목사를 인격적으로 섬기고 따르는 것이 우선순위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 교회 목사가 인격적이지 못하고 역사적 신앙고백에서 멀어진 말을 할 때는 심각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바른 진리를 가르치지 않아서 영적으로 피폐해지고 있다면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영적 난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음을 봅니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기웃 거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인격적인 교제와 신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익명으로 신앙생활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자신의 모난 부분이 깎이고 거룩하게 되는 것은 인격적이 나눔에서만 가능하지 홀로 신앙을 통해서는 불가능합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이 교회라는 공동체를 주신 또 하나의 이유가 존재합니다.
지 교회 목사의 설교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 만큼 성장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때 조심해야 합니다. 바로 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성장하여 목사의 설교를 비평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더욱 기도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목사의 설교는 항상 보편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부터는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 난민의 자리로 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한 가운데 날마다 자신을 쳐서 복종하고 겸손하게 지 교회 목사의 가르침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어눌한 말씀이라 할지라도 성경을 말하고 진리를 선포하면 그 가운데 들려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려고 몸부림 쳐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바울과 디모데처럼, 바울과 에바브로 디도처럼, 바울과 브리스 굴라와 아굴라처럼 인격적 관계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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