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성경과 역사의 교훈

새벽지기1 2020. 5. 6. 07:09

 

천만 관객 이상이 보았던 [암살]이라는 영화의 한 사람 바로 약산 김원봉의 이름이 다시금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일대기가 참 슬펐던 것을 보게 됩니다. 김원봉이 왜 김구와 함께 남한으로 돌아오지 않았을까? 잘 몰랐던 역사의 한 줄기를 이번에 중국 해안 선교 여행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김원봉은 항일투쟁의 선봉에 서있던 황포무관학교 출신입니다. 이 학교는 중국이 항일 전쟁을 위하여 중국 광저우에 세운 육군군사학교입니다.

 

우리는 무력 항일 운동의 중심을 신흥무관학교로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 학교로는 아마도 황포무관학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학교의 출신들은 홍범도, 김좌진 장군이 이끌었던 청산리 전투의 최전방에서 싸웠던 인물들이 속해있었던 학교입니다. 하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번에 [암살]이라는 영화를 통하여 재조명 받게 되었습니다.


이 학교를 세운 이는 손문입니다. 중국의 국부로 알려진 손문이 이 학교의 대표였습니다. 학교 설립에 발표하였던 연설문은 지금 중국의 통치 이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장은 국민당 총재인 장개석이었습니다. 중국은 이 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항일 전쟁을 치렀습니다. 바로 이 학교에 한국인 학생이 약 200여명 정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름으로 남겨진 사람이 약 70여명이라고 합니다. 그 가운데 4기에 그 유명한 약산 김원봉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학교에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교관입니다. 그 가운데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최용건이고, 또 한 사람은 이범석입니다. 이 두 사람은 동갑내기 독립운동가입니다. 황포무관학교가 낳은 뛰어난 인물입니다. 물론 그 보다 선배인 양림이 있지만 독립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모두 광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긴 시간 독립운동을 하였던 두 사람의 삶은 해방 이후의 분열된 국가에서 가슴 아프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평양으로,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서울로 헤어졌습니다. 이범석 장관은 남한의 초대 국무총리겸 국방부 장관이었습니다. 그리고 최용건은 북한의 부주석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남과 북의 군대를 형성하는데 가장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함께 동문수학하였던 친구이자 독립운동가였지만 사상이 다르므로 서로 적이 되어 6.25 전쟁을 겪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역사입니다. 그래서 김원봉은 처음에는 김구, 이범석을 따라 남쪽으로 왔지만 후에는 최용건이 있는 북에 남은 것 같습니다. 같은 적이 있을 때는 동지였지만 적이 사라진 후에는 서로가 적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슬픈 역사이지만 동시에 황포무관학교의 슬픔이기도 합니다.

 

광복은 되었지만 진정한 독립이 되지 못하고 사상의 노예가 되어 분단 조국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조선 땅에서 그 먼 타국에까지 가서 독립을 위하여 준비하였던 사람들이 적이 되어버린 슬픈 역사는 아직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사상이 무서운 것은 결코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상이 조국보다, 민족보다 앞섰기에 친구가 적이 되어 서로를 죽여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에도 의미 있는 교훈을 줍니다. 사상이 절대 기준이 아닙니다. 사상이 기준이 되면 결코 양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서로 피를 흘려야 끝이 납니다. 우리의 기준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상이 아닙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주신 성경만이 우리의 유일한 절대기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바르게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매우 중요한 유산을 우리에게 남겨 주셨습니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개혁교회는 항상 말씀으로 돌아가서 우리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말씀에 부합되게 개혁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감당하여야 할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리차드 마우가 말하였던 “신념 있는 교양인”이 되는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쉐퍼가 강조하였던 “사랑으로 진리”를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피를 흘리지 않는 일이며 역사적 신앙고백을 고백하는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한 우물에서 쓴물과 단물이 나오는 것처럼 슬픈 일이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역사에는 이러한 일이 반복됩니다. 우리는 성경과 역사의 교훈을 통하여 뼈를 깎는 배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슬픔의 역사를 반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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