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기준 & 사회적 기준
미국은 1972년에 연방대법원이 낙태를 합법화하는 법안을 의결하였습니다. 법원이 아이의 생명을 살릴 것인지 죽일 것인지를 결정한 것입니다. 낙태 합법화가 이루어지자 태아를 죽이는 것에 대한 죄의식이 사라졌습니다. 죄가 아니기에 낙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의식은 자연스럽게 교회에도 들어왔고 성도들도 자연스럽게 낙태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낙태에 대하여 합법이냐 불법이냐는 미국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그리스도인이 술을 먹어야 하느냐 먹지 말아야 하느냐 정도의 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이 술과 비교된다는 것이 너무나 끔찍하고 슬프지 않습니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되었습니다.
낙태 합법화에 대하여 동의하였던 법관들은 놀아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진리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해 버리는 그 나라의 과반수의 찬성이다"(D.W 홈즈).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바로 사회학적 법입니다. 사회학적 법이란 ”어떤 사람들의 특정한 집단이 그 당시 사회에 유익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법의 기초로 결정하는 법“을 의미합니다 (쉐퍼). 결국 절대 진리는 사라지고 다수의 결의가 진리가 되고, 법이 만능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결정으로 미국에서는 1년에 150만명 이상 되는 태아들이 합법적으로 죽고 있습니다. 낙태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낙태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낙태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그나마 합법화가 되지 않았기에 이정도이지 합법이 되면 상상을 초월하는 슬픔이 있을 것입니다.
사회적 기준이 절대 기준이 되었을 때 나타나는 불행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1970년대 미국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이라고 외치는 이들이 이러한 낙태 법안에 찬성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낙태반대를 하였던 쉐퍼를 비롯한 개혁파 지도자들을 정치적 보수주의자라고 매도하고 비판하였습니다. 이렇게 40년이나 된 이야기를 말하는 것은 올해 미국에서 동성애가 법에 의하여 합법이 되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와는 조금 먼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매우 가까이 다가온 일입니다. 미국의 동성애를 합법화에 찬성하는 모습을 볼 때 40년전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낙태 합법화에 찬성하면서 정치적 진보주의와 사회 계몽 운동과 빈민운동을 통하여 세력을 넓혀갔던 이들이 동일하게 동성애에 대하여 찬성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들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책을 고전 가운데 하나로 번역하면서 읽고 직접 초청하여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도 자연스럽게 낙태 찬성과 동성애와 기타의 문제를 분리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낙태와 동성애를 반대하면 다른 죄도 많은데 왜 그렇게 동성애만 문제 삼고 난리냐고 말을 합니다. 결코 틀린 말이 아닙니다. 교회의 부정과 부패 그리고 목사와 장로들이 성적 타락과 타락, 성도들의 타락에 대하여 울부짖어야 합니다. 반드시 그러해야 합니다. 그러나 위기의 문제가 터지면 동일하게 전선을 넓혀서 싸워야 합니다. 동성애와 낙태는 사회적 합의로 결정되는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소리가 있음을 알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전략과 전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성경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사랑을 베푸셨지만 결코 죄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죄는 죄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회개할 죄인을 기다려야 합니다. 죄를 말하지 않고 사랑을 말 할 수 없습니다. 사랑과 공의는 동시에 존재합니다. 사랑이 없는 공의가 없고, 공의가 없는 사랑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으로 공의를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회적 기준에 따라 살 것인지, 성경의 기준에 따라 살 것인지에 대한 갈림길에 있습니다. 아직 창문이 열려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배우고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혹 사회적 기준에 다른 합의에 의하여 창문이 닫힌다면 고난의 행군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가 무너지면 다음 것은 자연스럽게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우리의 자리를 잘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하여 성경이 우리의 기준임을 믿는다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 기준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빈약해지고 같은 그리스도인 사이에서도 차이가 나는 것은 교회가 복음의 순수성을 상실하였기 때문임을 인식하면서 처절하게 회개하고 바른 복음위에 우리를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사회적 기준이 힘을 내고 있는 가운데 성경적 기준을 가진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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