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참새가 되는 것이 좋을까?

새벽지기1 2020. 4. 17. 06:28


참새네 말이란 게 ‘짹 짹’ 뿐이야, 참새네 글자는 ‘짹’ 한자뿐일 거야

참새네 아기는 말 배우기가 쉽겠다. ‘짹’ 소리만 할 줄 알면 되겠다. 사투리도 하나 없고 참 쉽겠다.

참새네 학교는 글 배우기가 쉽겠다. 국어책도 “짹짹짹........” 산수책도 “짹짹짹.......” 참 재미나겠다.

 

신혁득이 쓴 “참새네 말, 참새네 글”이라는 동시입니다. 이 동시를 들으면서 한참 웃었습니다. 시험을 앞두고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힘든 영어와 수학을 공부하려고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 짠하기도 하면서 대견하게 느껴졌습니다. 참새네 말과 글처럼 “짹” 하나로 해결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한국에는 있는 참새가 미국에 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한국의 진돗개가 유럽에 가면 또 어떨까요? 국경도 없는 철새들은 마음껏 돌아다닙니다. 그러다 쉴 때가 생기면 내려앉습니다. 언어에 대한 고민이 없습니다. 그 자체로 지낼 수 있습니다. 따로 학원가거나, 개인 과외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국경을 넘나드는데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유독 인간은 다릅니다. 마음대로 국경을 넘나 들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껏 말 할수도 없습니다. 가는 나라마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서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차례대로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배울 때 소통이 됩니다. 오직 사람만이 피곤하게 삽니다.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피곤하니까 참새가 되는 것이 나을까요? 아마도 우리 가운데 누구도 사람이 아니라 참새가 되고 싶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새와 인간의 가치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가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격적인 존재에 있습니다. 참새가 아무리 자유스러운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눌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인격적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존재는 오직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뿐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람은 피곤한 일들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지으시고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눌 수 있는 존재, 교제 할 수 있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하나의 언어가 죄로 인하여 나누어지고, 그로 인해 언어 때문에 고생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모습이 되었지만 그 고생을 감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준비된 사람을 통하여 만물을 다스릴 수 있도록 대리 통치권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배움의 길이 무한정이라는 사실입니다. 날마다 지식 가운데 자라나는 것이 사람의 사람다움입니다. 이 배움은 그 넓이와 깊이를 알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무의적으로 말합니다.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다고 말합니다. 배움을 멈출 때는 생명이 끝날 때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더 이상 성경을 읽을 수 없을 때까지 읽었다고 합니다. 그의 마지막 숨질 때가지 성경을 가까이 하면서 삶의 마무리를 배웠습니다. 그것이 사람다움입니다. 그리고 참새가 결코 알 수 없는 신비입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다가 영원한 교제 속으로 들어가는 이 신비를 참새가 어찌 알겠습니까? 그래서 참새는 “짹”소리만 내는 것일지 모릅니다.

성경을 읽고 배우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 우리는 힘들게 배웁니다. 악착같이 공부합니다. 어렵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배움의 끝에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것은 ‘짹“소리에 만족하는 사람은 결코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