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상식적인 신앙

새벽지기1 2020. 4. 4. 06:57



상식적인 신앙

 

하나님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짧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빨리 열렸으면 하는데 겨울의 눈보라와 봄의 따스한 햇볕과 여름의 비바람을 맞은 뒤에 가을의 추수를 허락합니다. 어떠한 식물도 심자마자 나오지 않습니다. 때가 되어야 나옵니다. 아이가 태어나는 시간도 10개월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어느 것도 진통 없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꽃망울을 터뜨리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봅니다. 엄마의 몸에서 세상을 향하여 나오려고 기를 쓰는 아이를 봅니다. 다들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렇게 나온 생명들은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을 황홀하게 만듭니다.

 

영적인 삶도 그러합니다. 짧은 시간 안에 성장하지 않습니다. 인내의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들어 온 새 생명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하지만 외적으로 나타나기까지는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의 한 구절은 우리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영적 성장을 위하여 우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해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온유함과 의를 위하여 주리고 목마른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영적인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쉽게 믿음의 열매를 기대할 때가 있습니다. 참 못된 자세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습니다. 하지만 우는 과정이 없이는 결코 열매를 보지 못합니다.

 

영적인 삶의 열매는 대단한 신비가 아닙니다. 상식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인격을 갖추는 일입니다.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상식하고, 비인격적인지 모릅니다. 영적인 사람, 영적 전쟁을 치루는 사람은 말씀 앞에 상식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고, 인격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상식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구원 받은 사람으로 세상의 모습과 다르게 사는 것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그 일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입니다. 예배가 시작입니다. 예배를 무시하면서 자신과 세상을 향하여 외치는 것은 울리는 꽹과리입니다. 또한 예배하는 사람은 긍휼히 여기는 삶을 살고, 마음을 청결하게 하고, 화평케 하는 삶을 살며,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 여깁니다.

 

상식적으로 산다는 것이 영적인 삶이 분명하지만 사실 쉽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가 상식적인 삶을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몰상식하고 비인격적인 삶을 살도록 부추깁니다. 이러한 모습을 자주 목격합니다. 그래서 정말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너무나 행복합니다. 그리고 내 자신을 반추하게 됩니다. 그 앞에서는 비판이 아니라 겸손하게 되고, 침묵하게 되고 경청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지 않고 권세 있는 자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말과 행동이 상식적이고 인격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침묵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따른다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인격적이고 상식적인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영적 성장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런 신앙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