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나를 생각해 주옵소서

새벽지기1 2019. 12. 24. 06:50


삼손이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을 향한 절규입니다.

두 눈이 빠진 채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된 삼손은 마지막 힘을 다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 모습은 목숨을 바치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 한번만 나를 생각해 주옵소서. 하나님 한 번만 힘과 능력을 주옵소서.

하나님 모독하는 자들을 멸하게 해주소서.”

 

이 애끓는 외침을 들으신 하나님은 그에게 마지막 힘을 주십니다. 삼손은 그 힘을 받아 하나님을 모독하는 우상숭배자들을 멸망시킵니다. “나를 생각하옵소서라는 이 외침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목숨을 건 기도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고통 가운데 목숨을 다하여 들였던 탄원과 같은 기도였습니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부르짖었던 기도였습니다. 목숨을 드리는 기도에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습니다. 생명을 다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입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기기를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와 찾는 자와 두드리는 자의 외침을 응답하십니다. 이것은 약속 있는 말씀입니다. 이미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지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것을 더하여 주시리라부르짖는 자의 소리를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목숨을 걸고 기도하는 자는 결코 가볍게 하나님을 대면하지 않습니다. 나를 생각해달라는 것은 자신의 유익과 육신의 정욕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기도는 더욱 힘이 있으며,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들의 삶이 힘이 없고 냉랭한 것은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지혜와 능력과 경험을 의지하기에 연약해 지는 것입니다. 삼손이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있는 능력과 지식이 자신의 소유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에 의존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더구나 그 선물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은 능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삼손은 그 능력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데 사용하였습니다.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 망각하였고, 안목의 정욕에 빠져서 허우적거렸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이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슬픔의 자리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삼손이 다시금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돌렸을 때입니다. 그의 눈은 빠져있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안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 나를 한번만 생각하옵소서이 기도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단 한마디의 기도일지언정 그것은 진정성이 있는 생명을 건 기도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회복해야 할 것이 바로 이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의지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큰 문제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의지하다가 두 눈이 빠져서 부르짖는 자리에 서야 되겠습니까? 삼손의 모습을 보여 준 것은 육신의 눈이 빠져야 정신 차리는 존재가 아니라 두 눈을 가지고 영적인 분별력을 유지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생각해 주시지 않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도 하나님이 생각해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도 하나님이 생각해 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소망이 없습니다. 지금은 하나님 나를 한번만 생각해 달라는 절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정금같이 단련되어 나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간절함으로 기도할 시기입니다. 나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 교회의 필요가 무엇입니까? 한국 교회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한번만 생각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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