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재훈목사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 (신명기 6:4~19)

새벽지기1 2018. 7. 26. 06:54

 

“온 마음을 다하여, 영혼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고, 증거하십시오.” 

 

미국 존 홉킨스 대학의 한 교수가 슬럼가의12~16세 청소년 200여 명이 성인이 되었을때 건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연구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내린 결론은 그들의 90%가 교도소에서 인생의 절반을 살게 될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로부터 25년 뒤 같은 연구기관에서 그들의 삶을 추적해보았습니다. 과연 그 예측이 맞았을까요. 

 

그 200여명은 모두 마을을 떠나고 없었지만 180여 명 정도를 추적할 수 있었습니다. 4명만이 교도소에 있고, 나머지는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90%이상이 교도소에 가 있을 거라던 예측이 틀린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변화의 중심에 한 여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그여선생님을 찾아가 인터뷰를 하였습니다.“당신이 그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주었기에 그들의 삶이 이렇게 변화되었습니까?”그 여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저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단지 그들을 사랑했을 뿐입니다.” 

 

이 한 마디 말 덕분에 사회적으로 가망 없어보이던 슬럼가 청소년들이 변화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사랑은 영혼을 치료하고, 세상을 치료하는 위대한 약입니다. 영혼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치료제입니다. 혼란한 세상, 타락해 가는 세상을 정화하기 위해서 엄격한 법을 만들고, 무서운 법을 만들어도 변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모리와 함께하는 화요일>이라는 베스트셀러가 있습니다. 루게릭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 모리 교수를 제자가 인터뷰한 내용입니다.모리 교수가 제자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이 병을 앓으면서 내가 배운 가장 큰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 

 

사람들에게 사랑이 중요한 이유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 사랑에 의해서, 사랑을 위하여 창조된 존재입니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고, 사랑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관계와 소속에 대한 갈망이 가장 큽니다. 친밀함에 대한 갈망이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성취나 소유를 통해서 해결해보려고 하지만 더 큰 갈망을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주고받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살아가는 것만이 갈망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사랑에 대해 가장 많이 강조한 책이 신명기입니다. 신명기는 율법을 다시 강조하는 책입니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옵니다. 그 목적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율법을 강조하지만 율법의 정신과 원리는 사랑입니다. 율법은 하라, 하지 말라는 법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왜 하라고 했으며, 왜 하지 말라고 했느냐는 것입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왜 거짓증거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그것이 사랑을 행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왜 도둑질 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그 삶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율법의 내용을 아무것도 모르고, 십계명을 비롯한 구약의 모든 계명을 모른다고 할지라도 진정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있으면 모든 율법을 지키고 있을 것입니다. 사랑이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그 정신이고,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 사랑이 율법의 완성’ 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신명기 6장 4절에서 9절까지 말씀은 ‘ 쉐마’라고 하는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고, 지금도 매일 드리는 기도의 일부입니다. 쉐마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 들으라’ 는 뜻입니다. 4절에 ‘ 이스라엘아 들으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 들으라 이스라엘’ 이라고 시작합니다. ‘ 쉐마 이스라엘’ 로 시작됩니다. 앞단어를 사용해서 이 부분을 쉐마라고 부릅니다. 쉐마의 내용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입니다. 온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생활속에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사랑을 강요하는 명령이 아닙니다. 우리 삶을 피곤하게 만드는 율법처럼 오해하면 안 됩니다. 이 말씀은 거꾸로 읽어야 합니다. 이 명령을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친밀한 사랑 속으로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되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시는 분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존재입니까. 하나님이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시는 존재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온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이 어떤 모습으로 여러분을 생각하고 계실까요. 미소가 가득하신가요. 아니면 불편해하십니까. 만일 하나님이 불편해 하거나 분노할 거라고 생각하는 성도가 있다면 그 이유는 죄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하나님만 아시는 은밀한 죄, 더러움, 수치가 하나님이 나를 떠올리면서 미소 짓지 못하실 거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해서 분명 분노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분노가 우리를 향한 사랑을 결코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자녀의 옳지 않은 모습 때문에 부모가 불편하고 분노가 일어나는 때가 있지만 그 사랑은 식어지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죄에 대한 분노가 일어난다 할지라도하나님의 사랑을 변하게 하거나 무너뜨리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 온 마음을 다해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의 첫 단계입니다.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모습은 어디서 나타납니까. 

 

우리가 가장좋은 모습으로만 하나님 만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속에 좋은 모습만 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않은 모습, 죄악 된 모습, 더럽고, 수치스럽고, 연약한 모습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감춰두고 과장되거나 위장되고, 거짓된 자아를 만들어서 스스로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기에 합당한 것처럼 포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온 마음을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내가 좋은 일을 할 때는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좋지 않은 모습 연약한 모습 죄 가운데 있을 때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온 마음을 다하여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일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얻어내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좋은 모습으로만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온 마음을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쁜 모습만 상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한 모습, 수치스런 모습, 심지어 죄 가운데 있을지라도 우리를 향한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오기만 하면 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을 찾아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를 사랑하십니다.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십니다. 

 

“온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저는 이렇게 들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온전한 모습만 만나기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불완전한 모습도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오히려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까지 허용하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 숨길 것 하나도 없습니다. 온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우리의 수치스러움, 연약함, 부족함, 불완전함, 죄악 된 모습까지도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게 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위장된 자아, 거짓된 자아만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데 익숙해진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더욱 율법적인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온 영혼을 다하여 

 

온 영혼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도 거꾸로 이해해 보십시오.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면 믿게 됩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의탁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자신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어디서 나옵니까. 사랑에서 나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믿습니까.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을 믿고 있습니다. 자녀가 부모를 믿는 것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사랑에서 나오고 소망을 만들어냅니다. 믿음, 소망,사랑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3장 13절에서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으로부터 시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믿음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사랑을 받으면서 믿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 되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으로 인해서 우리 안에 믿음이 생겨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저는 의탁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 수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에 뜨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몸이 물에 뜰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물에 몸을 의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력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에 빠지면 허우적거리는데 왜 그렇습니까. 부력에 자신을 의탁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물에 떠보려고 발버둥 치니까 더 가라앉는 것입니다. 힘을 쓰면 쓸수록 가라앉습니다. 부력에 온전히 의탁해보십시오. 몸이 뜨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 사랑의 강물에 내 영혼을 의탁하면 그 사랑 안에 뜨는 것을 경험합니다.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의탁하는 것입니다.왜 하나님께 나오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범죄한 나를 처벌하시고, 미워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에 의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집을 나갔던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께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지 못하니 종의 하나로 여겨 달라”고 했습니다. 아직 아버지의 사랑에 의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랑 안에 온전히 자신을 의탁하는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의 상징은 물고기였습니다. 십자가는 2~3세기 이후부터 형성 되었습니다. 헬라어 ‘ 익투스’ 는 물고기라는 뜻입니다. 익투스의 이니셜을 풀어쓰면 ‘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라는 약자입니다. 실제 초기 기독교 문학에서는 예수님을 하늘의 물고기, 우리들을 작은 물고기라고 했습니다. 물에 다니는 물고기처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거니는 물고기 같은 삶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사랑의 강물에 자신을 의탁하며 살아가는 인생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십시오. 

 

영어로 ‘ Surrender’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완전히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내어 맡기는 의탁하는 삶이 영혼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영혼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는 연결됩니다. 힘을 다한다는 말은 에너지를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거꾸로 읽어야 합니다. 내 힘을 뺀다는 것입니다. 내 힘과 의지로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원수를 사랑합니까. 나의 힘으로는 원수를 사랑하지 못합니다. 내 힘을 빼고, 내 의지를 내려놓고,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 사랑의 힘, 성령의 힘,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임재 하는 힘으로만 순종할 수 있습니다.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 순종은 내 힘으로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의 온전한 의지를 내려놓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의지하여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영혼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영혼이 되는 것이 참된 경건이요, 축복이요, 능력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으로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 우리의 모든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 온 영혼을 하나님께 의지하라는 것, 네 힘을 의지하며 살지 말고 하나님이 공급하는 힘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초청하시는 것입니다.그 사랑 안에 거하고, 그 사랑으로 살아가는 인생을 살도록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자녀와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이러한 삶을 사는 성도들에게는 세 가지 모습이 나타납니다.

첫째, 자녀와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주는 이 명령들을 네 마음에 새겨 너희 자녀들에게 잘 가르치되 너희가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걸을 때나 누울 때나 일어날 때 그들에게 말해 주라. 또너는 그것들을 네 손목에 매고 네 이마에 둘러라. 그것들을 너희 집 문설주와 대문에 적어 두라”(6~9절). 

 

집에 앉아 있거나 길을 걸을 때, 누울 때나 일어날 때 말해주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성경 말씀을 갖고 자녀들을 괴롭히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선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명령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왜 우리가 말하는것이 효과가 없을까요. 부모가 먼저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일을 하지 않고 자녀에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나 가족, 이웃들에게 말하기 전에 마음에 새겨야합니다. 삶 속에서 흘러나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또한 “문설주와 대문에 적어 두라”는 것은 이웃들이 볼 수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집에서는 맨날 싸우는데 집 앞에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써 붙여 놓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문설주와 대문에 적어두라는 것은 가정과 이웃에게까지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말씀을 이마에 붙이고 손목에 매고 다닙니다. 형식적으로 지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새기라고 했습니다. 때로는 가지고 다닐 수도 있고, 때로는 목에다 매고 다닐 수도 있지만 그것은 마음에 새기기 위한 노력의 표현일 뿐이지 마음에 새기는 일없이 외형적으로 대문에 붙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순서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족과 이웃에게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둘째, 배부름 속에서도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너희가 채우지 않은 여러 종류의 좋은 것들로 가득 찬 집들과 너희가 파지 않은 우물과 너희가 심지 않은 포도나무와 올리브 나무가 있는 땅에서 너희가 먹고 배부를 때 스스로 삼가서 너희를 이집트에서, 그 종살이하던 땅에서 이끌어 내신 여호와를 잊지 않도록 하라”(11~12절). 

 

온 마음을 다하여, 영혼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영혼은 가정과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증언하고, 배부름 속에서도 하나님을 잊지 않습니다. 최초의 타락이 에덴동산이라는 축복 속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 삶의 환경이 풍족하고 배부를 때 우리는 하나님을 잊게 됩니다. 공급하시는 하나님, 인도하시는 하나님, 사랑으로 우리를 배부르게 하신 하나님을 잊게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는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계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니 그분의 진노가 너희에게 일어나서 그분께서 너희를 그 땅의 지면에서 멸망시키실 것이다. 너희는 맛사에서처럼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15~16절). 이 말씀은 예수님이 마귀에게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도전을 받았을 때 인용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네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광야에서 목마른 백성들도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자신들을 출애굽 시켜서 광야에서 목말라 죽게 하려고 데리고 왔느냐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이라면 물이 필요하면 물을 주실 것이고, 고기가 필요하면 고기를 주실 것입니다.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신다는 것을 믿지 못한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지 않은 일을 자기의 뜻대로 하면서 공급해 달라고 하는 것도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영혼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잊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의 삶으로 초청하셨습니다. 이것이 참된 삶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경건이요,행복한 삶의 비결입니다. 하나님이 초대하시는 사랑의 관계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자신과 가족과 이웃과 세상에 사랑이 흘러가서 하나님이 증거되기를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