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재훈목사

그 말씀에 복종하라 (신명기 4:1~10)

새벽지기1 2018. 7. 19. 08:42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철저히 복종하십시오.

하나님의 놀라운 뜻에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왜 믿지않습니까?”라고 질문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대답이 “구속받고 제한받기 싫어서”인 것 같습니다. 이 대답은 두 가지 사실을 내포하고있습니다. 하나는 정확한 것이고, 또 하나는정확하지 않은 것입니다. 정확한 사실은 믿는 삶이란 말씀에 통제 받고, 복종하는 삶입니다. 이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정확한 사실은 말씀에 통제받고, 지배받는 삶이 답답하고, 억압받고, 자유를 잃어버린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받으면 자유를 잃어버리고 억압받고 답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추측해서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마땅합니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통제 받는 삶이 답답합니까. 자유를 잃어버린 삶입니까. 이렇게 정직하게 물어보고 판단하는 것이 합당한 반응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묻지 않고 매우 답답하고, 자유를 잃어버리고, 억압받는 삶이라고 스스로 추측하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삶이 과연 자유로운 삶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몸은 중력 같은 물리적인 법칙과 생물학적인 법칙에 지배를 받지만 정신과 영혼은 세상의 법을 뛰어넘는 보이지 않는 법칙에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옳고 그름의 법칙이 존재합니다. 모든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도덕률이 있고, 인간본성의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옳고 그름의 법칙이 있습니다. 

 

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라는 유명한책을 썼습니다. 그 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BBC라디오에서 강연했던 내용입니다. 죽고 죽이는 비참한 상황에서 C.S. 루이스가 강조했던 것들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깨우쳤습니다. 그 내용은 세상에는 옳고 그름의 법칙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합법적이라고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옳고 그름의 법칙이 존재합니다. 오늘날의 무서운 사상은 옳고 그름의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규율과 법칙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오직 자유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정말 무서운 사상입니다. 

 

옳고 그름의 법칙 

 

세상에는 옳고 그름의 법칙이 존재합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다투고 싸우는 이유는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옳고 그름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싸움은 자신은 합당하지만 타인은 합당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 아닙니까. 불안과 갈등은 왜 생기는 것일까요. 세상의 법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왜 내 마음속에 갈등과 번민이 일어날까요. 왜 서로 다투고 싸우는 것일까요. 옳고 그름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인정과 동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옳고 그름의 법칙이 존재할까요. 옳고 그름의 법칙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교육을 통해 전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의 본성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 위에 존재합니다. 인간 밖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인간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지를 알고 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는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명칭을 가져다 쓰던 간에 세상의 법과 규칙을 뛰어넘는 옳고 그름의 법칙이 존재합니다. 물고기는 물속에 있는 것이 가장 자유롭고 행복합니다. 물속에 살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물고기는 육지를 뛰어다니고 싶다고 동경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물고기가 물속에 사는 것이 답답하다고 물에서 나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새는 하늘을 날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새가 “나는 왜 이렇게 날아다녀야 되는가?”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바보 같은 모습이고 부자연스럽습니다. 새는 하늘을 나는 것이 자연스럽고 행복한 것입니다. 창공을 나는 새가 가장 행복하듯이 인간에게 가장 큰 행복은 주어진 법칙을 철저하게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유입니다. 어떤 법칙에도 구속되기 싫다고 거부하는 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그 법칙을 거부하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를 잃어버리고, 갈등하고, 방황하고,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셔서 모세를 통해서 규례와 법도를 주셨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주신 규례와 법도에는 하나님의 뜻이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옳고 그름의 법칙을 잘 표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그 민족을 이루시고, 그 민족을 통하여 온 민족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에 철저하게 복종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왜 그 말씀에 복종을 요구하셨습니까. 그것이 살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냥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생존을 위한 삶은 의미가 없습니다. 살기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사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이며, 목적 있는 삶입니다. 그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뤄질 때 정말 행복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려는 규례와 법도에 귀 기울이라. 그 말씀에 복종하라. 그러면 너희가 살 것이며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그땅으로 들어가 차지할 것이다”(1절). 

 

말씀에 복종하는 것 자체가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습니다. 그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복종하는 백성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획을 이루십니다.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는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복종할 때 우리의 인생이 너무나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계획하고 추구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인생의 목적이 말씀에 복종할 때 나타납니다. 

 

여러분, 내 인생의 목적은 내가 찾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계획한다고 인생의 목적이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를 향해 가지고 있는 목적이 있습니다. 내 인생의 의미는 하나님이 찾아주시는 것이지 내가 발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복종할 때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을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이 나타납니다. 그 말씀에 철저하게 복종하는 백성들을 철저하게 구별하셔서 다른 민족이 되게 하심으로 세상 속에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철저히 반응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에 더하지도 빼지도 말고 오직 내가 너희에게 주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2절). “그러니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삼가 지키라.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치우치지 말라”(신 5:32). “내가 오늘 너희에게 주는 이 명령들을 네 마음에 새겨 너희 자녀들에게 잘 가르치되 너희가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걸을 때나 누울 때나 일어날 때 그들에게 말해 주라. 또 너는 그것들을 네 손목에 매고 네 이마에 둘러라. 그것들을 너희 집 문설주와 대문에 적어두라”(신 6:6~9).

 

아침부터 저녁까지, 언제 어느 곳에 있든지 그 말씀을 기억하고, 영향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소수의 엘리트들만 깨달을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환상을 보거나 그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엄청난 희생과 순례의 길을 걷는 사람만 깨달을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보통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고 지킬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에 복종하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너희에게 지나치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너희가 다다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늘 위에 있지 않으니 너희는 ‘ 누가 하늘로 올라가 그것을 잡겠으며 우리에게 선포했다고 해서 우리가 순종하게 하겠는가?’ 하고 물을 필요가 없다. 그것은 바다 밑에 있는 것도 아니니 너희는 ‘ 누가 바다를 건너가 그것을 잡겠으며 우리에게 선포했다고 해서 우리가 순종하게 하겠는가?’ 하고 물을 필요도 없다. 오히려 그말씀은 네게 아주 가까워 너희 입에 있고 너희 마음에 있어 너희가 순종할 수 있다”(신30:11~14). 

 

늘 위에 있어서 하늘에까지 찾아갈 필요가 없고, 바다 밑에 있어서 찾아갈 필요도 없습니다. 너무 해석하기 어려워서 깨달을 수없는 말씀이 아닙니다. 너희 입에 있고, 너희 귀에 있고, 너희 마음에 있어 순종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해석하기 어려워서 실천 못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이렇게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라”고 하셨을 때 발 씻기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말씀이 어려운 것은 행할 수 있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에 복종할 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복종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약속의 말씀들이 나타납니다. 

 

유혹에 넘어져 멸망하지 않는다

 

첫째, 유혹에 넘어져 멸망하지 않습니다. “너희가 여호와께서 바알브올에서 하신 일을 너희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에서 바알브올을 따른 사람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멸망시키셨다. 그러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끝까지 붙들고 떠나지 않은 너희 모두는 지금까지도 살아 있다”(3~4절). 

 

삶을 무너뜨리는 것은 위기가 아니라 유혹이요, 시험입니다. 위기가 왔을지라도 말씀에 복종하면 위기는 기회가 됩니다. 그러나 말씀에 복종하지 않으면 작은 위기에도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삶이 무너지는 것은 결코 문제가 많아서가 아닙니다. 작은 유혹에 쓰러지는 연약함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우리를 피곤하고, 힘들고, 구속하고, 얽매이고, 답답하고,부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복종하는 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고, 세워주는 것이고, 보호해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산타클로스 같은 분으로 생각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이 내 삶에 전혀 간섭하지 않고, 내가 필요할 때만 좋은 것을 선물해주시는 산타클로스로 생각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전혀 간섭하지 않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만 던져 주는 산타클로스가 아닙니다. 그분은 죄에 대해서 징벌하시고, 진노하시는하나님입니다. 무한히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지만 악을 참지 못하시는 정의의 하나님이시오, 진노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고, 악에 속한일에 참여하면 멸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악에 대해서만 진노하시고, 악에 속한 것에만 일어나는 분노입니다. 화내기를 즐기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분은 자비롭고, 인애가 풍부하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바알을 섬기고 따랐던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복종하는 것은 유혹으로 우리의 삶이 무너지지 않게 보호하시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랑의 법칙입니다.

 

지혜와 통찰력을 주신다 

 

둘째, 그 말씀에 복종할 때 지혜와 통찰력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규례와 법도들을 잘 지키라. 이것으로 여러 민족들에게 너희의 지혜와 통찰력을 보여 주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모든 규례들에 대해 듣고 ‘ 이 위대한 민족은 지혜롭고 통찰력있는 백성이다’ 라고 할 것이다”(6절).

 

지혜와 통찰력을 두 번씩이나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복종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지혜와 통찰력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지능지수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지능은 좋은데 바보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지능지수는 낮은데 정말 지혜롭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을 경외하고 복종하는 사람에게는 지혜와 통찰력을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정보일 뿐이지만 지혜는 올바른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지혜입니다. 지혜는 학력과 상관이 없고, 전문적인 지식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아갈 수 있게 올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는 능력입니다. 아이큐는 좋은데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혜입니다. 바로 이 지혜는 말씀에 복종할때 생깁니다.

 

여러분, 지혜와 통찰력이 있으면 더 이상 문제가 아닙니다. 지혜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아무리 큰 문제도 절대로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않습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이 작은 문제도 크게 만들고, 작은 문제 앞에서 무너집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문제가 널려 있습니다. 문제를 보지 마시고 하나님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십시오. 지혜는 한순간에 찾아오기도 하지만 날마다 자라는 것입니다. 말씀에 복종한 만큼 지혜가 자랍니다. 환자들에게 병원에서 찍은 엑스레이 필름은 하얗고 까맣게만 보입니다. 그런데 의사선생님들은 그것을 보고 병을 찾아냅니다. 훈련을 통해서 병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얻은 것입니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어떤 메시지가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평론가들은 그것을 보고 글을 쓰고 평론을 합니다. 남다른 통찰력 훈련을 통해 얻어지는 능력입니다. 영적인 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순간에 영적 지혜가 자라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날마다 말씀에 복종한 만큼 더 지혜로워지고, 통찰력이 부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요셉에게는 지혜와 통찰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순간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혹이 왔을 때도,문제가 있을 때도 말씀에 순종하다보니 하나님이 귀하게쓰시는 지혜와 통찰력이 있는 사람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도 말씀에 복종함으로 지혜를 얻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다가오신다 

 

셋째,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가까이 다가오시는 것을체험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가까이 다가오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처럼 자신들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신이 있는 민족이 어디 있느냐? 또 내가 오늘 너희 앞에 둔 이 법도처럼 의로운 규례와 법도를 가진 민족이 어디 있느냐?”(7~8절). 하나님은 기도할 때마다 가까이 다가오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도와달라고 외칠 때 “내가 여기 있다”고 말씀하시며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기도해도 가까이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불순종하기 때문입니다. 내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함도 아니요, 내 귀가 닫혀서 듣지 못함도 아니라, 우리의 죄악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은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복종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이 더욱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더욱 체험하고 싶으십니까.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철저히 복종해보십시오. 하나님이 더 가까이 찾아오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에 복종하며 살아가면 의로우신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여러분, 말씀에 복종하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그냥 사는것이 아니라 멸망하지 않고 복되게 사는 길입니다. 세상에서도 승리하며 사는 길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이 가까이 다가오시는 것을 느끼며 사는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생명처럼 붙잡아야 합니다. 그 말씀에 복종해야 합니다.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은 억지로 지키는 의무가 아니라 말씀을 즐거워하며 지켰다고 했습니다. 금보다 귀하게 여겼다고 했습니다. 꿀보다도 달게 여겼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살리기 때문입니다. 복되게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삶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에 복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