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김남준목사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 (마6:13)

새벽지기1 2017. 10. 9. 08:05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6:13)

 

I. 본문해설

 

주기도문의 여섯 번째 탄원입니다. 앞에 나온 다섯 개의 탄원은 모두 긍정의 탄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섯 번째 탄원은 부정의 탄원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라는 기도문을 외우다 보면 두 가지 의문이 떠오릅니다. 하나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원인이 모두 하나님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고, 또 한가지는 마치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시기 위해서 힘을 쓰시는 분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이 탄원은 이런 종류의 상상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기도문입니다.

 

II. '시험'이란 무엇인가?

 

A. 시험(페이라스모스)  

먼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시험이 무엇인지 성경에 입각해서 규명해야 합니다. 시험이라는 단어는 희랍어로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라는 단어이며, 동사로는 ‘페이라조’입니다. 문자 그대로 ‘무엇인가를 시험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 동사와 명사를 합쳐서 약 60회 정도 사용이 되었는데, 용례를 살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시험의 의미와 현저히 다릅니다. 시험의 주체가 크게 네 가지로 신약성경에 등장합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체는 마귀입니다. 두 번째는 바리새인을 비롯한 악한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하나님도 등장하지만 인간이나 미혹 받은 인간의 마음도 시험의 주체로 등장합니다.

 

B. 복음서에서 '시험'  

신약 성경에 나오는 시험의 용례도 중요하지만, 특별히 복음서에 나오는 시험의 주체가 크게 세 가지로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마귀가 시험의 주체입니다. 마태복음 4장 1절에 보면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고 마귀는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시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을 위한 복음 사역을 못하도록 방해하는 시험이었습니다. 또 다른 용례는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이 시험의 주체가 되는 것인데 마태복음 19장 3절에서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이렇게 시험하였습니다. ‘어떤 연고로든지 남자가 아내를 버리는 것이 가능합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 어떤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버릴 수 있다고 말씀하시면 예수님이 평소에 가르쳤던 사랑의 원리에 위배가 되고, 버릴 수 없다고 하면 여자를 버릴 때에는 이혼 증서를 써주고 허락한 모세의 가르침에 모순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예수님을 곤경에 처하기 위한 악한 의도로 질문 한 것이며, 이것을 가리켜 ‘시험하다’ 라고 기록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아주 적은 용례지만 인간이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시험에 들게 됩니다. 마태복음 26장 41절에 보면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여 기도하실 때 제자들에게 부탁하셨던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는 깨어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잠들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하도다” 라고 말씀하심으로 인간의 연약함이 시험의 주체가 됨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III. '시험에 들지말게'

 

A. 시험: 복음을 위한 환란과 유혹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라는 기도에서의 시험은 복음을 위한 환란이나 시련, 유혹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주기도문의 처음에 나오는 기도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9-10)라는 간절한 소명을 느끼며, 그런 세상이 되기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주치게 되는 복음을 위한 환란관 시련을 의미합니다.

 

1. 신자의 삶: 영적전투  

이것을 전쟁으로 말하자면 전쟁터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치열하게 전투하는 군인이 하나님 앞에 올리는 기도입니다. 성경의 증언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본질적으로 영적인 전투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고 말입니다. 씨름은 희랍어로 ‘팔레’(π?λη)인데, 정확한 번역은 격투기입니다. 로마시대 때에 사람들이 노예들을 시켜서 가죽에다가 금속을 박고 밴드처럼 감은 다음에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피 흘리면서 서로 싸우는 격투기를 가리킵니다. 원형 경기장에서 처절한 팔레 경기를 지켜보던 생생한 기억을 기지고 있는 에베소 교회 교인들에게 사도바울이 우리의 씨름은 이런 영적인 전쟁이며, 이 세상 나라와 싸우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백성들의 삶의 정체라고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영적 전쟁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시험을 만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시험을 피하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시험 안에서 우리를 보호해 달라고 하는 기도라고 해설을 하였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하나님 뜻의 성취를 위해서 헌신한다면 우리를 그렇게 살고자 방해하는 마귀가 우두머리가 된 이 세상과 끊임없이 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씨름은 본질적으로 영적인 전투이며 어느 한쪽이 파멸해야 끝나는 싸움입니다. 물론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단은 머리가 깨졌고 허리가 부러졌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아직까지 신앙의 원리를 따라 거룩한 경건으로 살지 않는 신자들을 넘어뜨려 하나님의 나라에 아주 쓸모없거나 오히려 방해하는 사람 정도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은 남아있습니다. 마음이 미끄러지고 은혜에서 멀어진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그리고 사명감을 잃은 그리스도인들이 작은 환란을 당해 예수를 버리고 도망갈 수 있도록 합니다. 시험을 만나는 것은 왕국의 소명을 받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피할 수 없는 일이고, 오히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영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그렇게 사셨던 것처럼 당신의 제자들도 왕국의 소명을 따라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B. '시험 들게 마시고'

 

1. 에이세넹케스: 에이스페로  

그렇다면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라고 하는 이 기도는 무엇일까요? 들어간다는 말은 희랍어로 ‘에이세넹케스’라는 단어인데 ‘에이스페로’(ε?σφ?ρω)의 변형입니다. ‘에이스’는 속으로라는 뜻이고 ‘페로’는 짊어지다는 뜻이니 영어의 Bring입니다. 즉, 복음을 전파하고 왕국의 소명을 따라 살다보면 악한 세상과 대적하여 환란과 시련과 핍박을 만납니다. 만나더라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말씀의 능력으로 적절히 이기면서 산다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그 나라가 임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뜻들이 성취될 것이지만, 그렇치 않다면 미끄러지고 죄악속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죄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온전히 순결하게 보호해 달라고 하나님께 올리는 탄원입니다.

 

2. 마귀의 시험과 신자의 이끌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이 십자가를 지고 죽으셔야 한다는 사실을 털어놓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때 놀란 베드로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2) 라고 말렸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마 16:23)고 예수님이 엄히 꾸짖으셨습니다. 이것은 무의식중에 베드로를 움직여서 예수님이 구속의 대업을 성취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마귀의 궤계가 뒤에 도사린 것이며 예수님은 이것을 꾸짖으신 것입니다.

 

3. 준비된 마음  

요한복음 13장 2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

을 넣었더라.”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구절을 토대로 가룟 유다에게 사단이 예수를 팔 생각을 넣어주지 않았더라면 가룟 유다가 배신자가 됐겠느냐고 하면서 그도 피해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치는 그렇치 않습니다. 사단도 성령도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기 때문에 모두 각각 준비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만 역사합니다. 그래서 사단이 가룟 유다에게 예수를 팔 생각을 넣어주기 전에 이미 그의 마음에는 돈에 대한 욕심과 예수님을 능히 배반할 수 있는 마음으로 충분히 숙성이 돼있었습니다. 그때 마귀가 그 생각을 넣었고, 넣자마자 이것은 마귀의 생각이 아닌 가룟 유다가 매우 기뻐하는 자신의 생각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시험도 악으로 빠지도록 준비된 사람들의 마음에 들게 하는 것이니 오히려 이 기도는 그것을 막으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4. 기도에 태만  

기도에 태만했던 제자들은 결국 잠들어 시험에 들게 되었고 이후로 예수님을 지속적으로 배반하는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C. 탄원에 마음을 묶음  

이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에 시험에 들게 하지 말아달라고 하나님께 드리는 이 간절한 탄원은 하나님께 우리의 시험의 상태를 알려드리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이 탄원에 우리의 마음을 묶기 위해서 섭리 속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여섯 번째 탄원을 올릴 때마다 우리는 주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하여 살고자 할 때 환란과 시련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과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그 시간에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미끄러져 죄에 빠져 아주 부패하고 더러운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동시에 가르침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탄원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며 이 탄원을 하나님 앞에 올림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속에 어떤 두려움도 사라지고 어떤 교만함도 멀리하게 되어 주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며 이 믿음의 길을 가게끔 우리 자신을 채찍질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요즘 거의 기도할 수 없다면 거의 주기도문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는 중입니다. 기도 제목이 많고 열렬하다면 삶의 많은 방면에서 열렬하게 주님을 위해 살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 이 기도는 우리에게 폭풍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우리에게 정당한 시험이 있습니까? 왕국의 소명을 따라 살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의 삶이 본질적으로 영적인 전쟁터에 있기 때문에 수시로 복음 때문에 환란, 시련, 고난, 위기를 만나고 있습니까?

 

IV. 결론

 

우리는 그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당신의 나라를 위하여 신실하게 싸우는 모든 사람들을 지키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왕국의 소명을 따라 살아갈 때 때로는 위기를 만나고 때로는 동료들에 의하여 홀로 버려진 것 같은 고독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사단은 무한히 강하고 세상은 무한히 크고 나는 그 앞에 홀로 서 있는 지극히 연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두려움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시험을 만나는 것은 피할 수 없으나 시험에 들지 않도록 주님은 우리를 당신의 손으로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탄원하며 치열하게 주기도문의 삶을 살면서도 우리의 영혼은, 우리의 육체는 순전하게 보전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한 빛으로 나타나도록 그렇게 주님의 소명을 따라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