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음악/클래식

헨델의 명작 <메시야>

새벽지기1 2017. 7. 31. 14:31


헨델의 명작 <메시야>  

 

연말연시가 되면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분주하다.

예술공연계는 크리스마스와 송년행사, 그리고 새해 신년음악회 등으로 공연과 음악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클래식 음악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디서건 시기별로 어울리는 음악들이 있듯이 이 시기에 특별히 많이 연주되는 음악들이 있다. 그것은 <헨델><메시야>, <베토벤><9번 교향곡>,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작품들이다. 물론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여 만들어진 소품들이 많긴 하지만 헨델의 메시야를 능가하는 작품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해고 좋을 만큼 그 아름다움과 가치는 대단하다. 헨델의 <메시야>는 작은 소품의 수준이 아닌 오페라의 형식을 완벽히 갖춘 <오라토리오>로서 음악적 가치 또한 우수하다 못해 위대하게 여겨지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신년에 많이 연주되는 베토벤의 <9번 합창 교향곡>과 요한슈트라우스의 <왈츠>곡들 역시 마찬가지다. 작품성이 뛰어나고 오늘날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는 음악들이다.

 

오늘은 특별히 헨델의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사실 헨델은 1685년 독일에서 태어나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두루 활동했던 당대 최고의 음악가였다. 그가 남긴 작품들 역시 매우 많고 유명하지만 특별히 이 <메시야>는 그의 대표작처럼 여겨지는 작품이다. <메시야>1742년경에 발표된 작품으로 연주시간만 2시간이 넘는 대곡이다. 게다가 작품의 구조는 다성음악, 화성음악의 혼합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화려한 멜리스마도 함께 사용하였다. 그 구조는 Overture, Recitativo, Aria, Chorus를 모두 갖추고 있다. <메시야>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고요하고 따듯한 분위기로 <예수 탄생에 대한 예언들과 탄생>, 그리고 2부는 극적인 분위기로 <예수의 수난과 속죄>를 표현했다. 끝으로 3부는 <예수의 부활과 영생>을 장엄하고 웅장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일반인들이 이 헨델의 <메시야>를 접하여 보면 웅장하다는 느낌보다 어렵고 난해하다는 느낌을 먼저 받게 될 것이다. 이미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이 <메시야>보다 훨씬 웅장하고 장엄한 작품들을 많이 접해오고 있으며, 일반인들의 귀에 생소한 매우 어려운 멜리스마가 너무도 자주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피아노>라는 악기도 발명되지 않았던 바로크시대 사람들의 입장에서 <메시야>는 대곡으로 여겨졌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헨델이 <메시야>를 작곡하여 발표할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을 어떠했을까! 메시야가 초연된 1742년 우리나라는 조선후기시대로 <영조>가 집권하던 시기였다. 암행어사로 유명했던 <박문수>가 정치활동을 하고 있었고,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는 아직 9살이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국악, 사물놀이, 판소리 같은 전통음악이 있었고, 모든 사람들에게 향유되고 있었지만 당시 조선사회 속에서 음악가들의 신분은 예술과 문화를 창조하는 Artist로 대우받지 못했고 <천박한 광대>정도로 여겼다. 어쩌면 당시 우리사회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인식이 그러했기 때문에 국악이 더 발전하지 못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당시의 유럽은 달랐다.

유럽사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음악, 미술, 문학 등에 대한 가치를 크게 인정하고 있었고,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더불어 권력을 가진 상류층들의 공경과 후원이 있었다. 귀족뿐 아니라 황제도 유능한 예술가를 적극 후원했으며 거기서 그치지 않고, 황궁에 함께 기거하게까지 하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대표적 예가 될 것이다. 프랑스 국왕이었던 프랑수아 1세는 다빈치를 황궁에 기거하게 하며 그가 숨을 거둘 때 그의 임종을 지켰으니 말이다. 그 외에도 유럽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같은 위대한 예술가와 바흐, 헨델, 비발디, 모차르트, 베토벤, 하이든 같은 음악가들의 탄생을 도왔다.

 

오늘날 세계는 유럽을 몹시 동경한다. 얼핏 세계가 미국문화와 실리콘벨리의 디지털에 의해 지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계의 아날로그 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유럽이다. 음악, 미술, 문학 등의 예술은 유럽의 것들을 고전 교과서로 여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오랜 시간동안 쌓아 온 그들의 예술숭상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예술의 가치를 높게 인정하고, 예술가들을 깊이 존경해왔다. 이것은 단순히 음악소리가 좋고, 미술품이 좋아서가 아니라 문화라는 것을 고상한 것, 높은 가치의 것으로 여겨왔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유럽인들은 재능 있는 예술가를 존경하고 그 음악 세계를 이해하려고 무척 노력한다. 오래전 한 한국 여행객이 오스트리아를 방문해서 <한국에서 왔습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 정경화씨의 나라요?>라고 되물었다는 이야기는 결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오늘날도 유럽인들은 훌륭한 예술가를 국적에 관계없이 존경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음악과 음악가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음악에 대한 선호도는 열광할 수 있는 음악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예술로서의 가치를 알고 이해하기보다 즉흥적 감흥에 더 관심이 많다. 그래서 우리의 음악에 대한 반응들은 고상한 예술로서의 이해를 바탕에 둔 공경이 아니라 일회적으로 열광할 수 있는 <스타성>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국내의 유명한 클래식 음악가라고 하는 사람들도 예술가로서 유명하기보다는 <스타>로 더 유명하다. 그들의 예술세계에 대해서는 지식이 없으면서 그저 유명한 <스타>이니까 열광하게 되는 그런 것 말이다.


우리도 진정한 문화의 대국이 되려면 일회성에 그치는 <스타>탄생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길이 빛날 높은 수준의 <예술품><예술가>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꾸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이런 사회적 관심과 분위기가 일반화 될 때 우리나라에서도 헨델의 <메시야>같은 작품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우리민족은 천성적으로 음악과 예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결코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믿는다

유럽에서는 수백 년 후에도 길이 연주될 <메시아>가 만들어져 연주되고,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미래의 인류를 영원히 풍요롭게 해줄 명곡들을 탄생시킬 때, 우리나라에서는 사도세자가 영조의 미움을 받아 쌀뒤주 안에서 쪼그려 죽고,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로 혼란스러웠다는 것이 슬플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