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음악/클래식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6번 ‘비창’>

새벽지기1 2017. 9. 8. 06:47


Symphony No.6 in B minor, Op.74 'Pathetique'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6번 비창>

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

 

 

차이콥스키와 ‘파테티크’는 동의어처럼 느껴진다. 그는 평생 가슴에 꺼지지 않는 불덩이를 안고 산 사람이다. 그의 비창의 정서는 바로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것이었으리라. 그는 모스크바 음악원 제자였던 안토니나 밀류코바와 1877년 갑작스럽게 결혼하기는 했으나 그 결혼은 밀류코바의 간절한 사랑에 대한 답으로, 이른바 <해준 결혼>으로 처음부터 말이 많았다. 당연히 결혼 생활은 파탄으로 이어졌고, 그로 인해 그의 성적 정체성이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 인해 촉발된 우울증은 끝내 자살기도라는 극단으로 치닫기도 했으나, 스위스로 요양을 떠나면서 마무리된다.

 

차이콥스키의 인생에서 중요한 또 한사람이 있다. 바로 ‘폰 메크’ 부인이다. 그녀는 부유한 철도 미망인으로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특별히 좋아하여 연간 6천 루블이라는 거액의 후원을 하게 된다. 이렇게 안정적인 지원을 받게 된 차이콥스키는 경제적인 걱정 없이 작곡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차이콥스키는 이후, 음악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신의 소소한 일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편지를 폰 메크 부인과 주고받으면서 정신적으로도 부인에게 크게 의지하게 된다. 그러나 13년간 계속되던 폰 메크 부인과의 관계가 그녀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단절된다. 차이콥스키는 영원히 계속되리라 믿었던 폰 메크 부인과의 관계가 단절되자, 그 충격으로 한동안 절망에 사로잡혀 힘들어 했다고 한다. 자신의 성적 정체성마저 고백하면서 편지로 주고받았던 오랜 친구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자, 그의 상실감은 형언키 어려웠을 것이다. 발가벗겨진 듯한 느낌이 들었던 그로서는 어떤 형식으로든 그것을 풀어내야 했을 것이며, 그 탈출구가 바로 그의 6번째 교향곡이 된 <비창>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곡은 폰 메크 부인과의 관계가 단절된 후, 절망에 몸부림치면서 작곡한 곡이다.

 

<비창>은 1893년 10월 28일 차이콥스키 자신의 지휘로 세상에 알려진다. 이 곡은 선율의 아름다움과 균형 잡힌 형식미, 오케스트라의 정교함 등으로 초연 당시부터 큰 인기를 얻은 작품이다. 곡은 표제적 내용이지만, 고전교향곡보다 형식과 내용에서 자유롭고, 그 안에는 인생에 대한 공포, 절망, 패배 등 모든 것이 뒤섞여 있다. 곡상은 긍정보다는 부정의 정서가 강하지만, 결코 특정사건이나 특수한 개인의 감정을 묘사하려 한 게 아니라, 인간 일반이 가지고 있는 ‘비창의 정서’를 추상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할 것이다. 따라서 이 곡은 개인은 외로운 존재이며,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는 정서를 함의하고 있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차이콥스키는 이 곡을 두고, 내가 만든 곡 중에서 가장 좋은 곡이라고 조카인 ‘블라디미르 다비도프’에게 여행 도중 편지를 통해 밝혔다고 한다. 그는 이 편지에서 “새 교향곡의 구상이 마음속에 떠올랐어. 이번 교향곡은 표제성이 있는데 수수께끼야. 그 제목은 상상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길 거야. 이 표제성은 완전히 주관적인 것이거든. 나는 여행 중 머리 속에서 이 곡을 작곡하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는지 몰라. 1악장은 나흘도 안 돼 완성했고, 그 형식에는 신기한 것이 있어. 마지막은 알레그로가 아니라, 길게 늘어진 아다지오가 될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 곡은 느린 아다지오를 4악장에 두어 곡의 비창감을 극대화함으로써, 누구라도 음악을 듣는 사람이라면 그 깊은 비감의 정서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아주 독특한 종지를 가진 곡이다.

 

그리고 이 곡은, 순수한 표제음악이라기보다 <표제적 성향의 교향곡>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곡의 표제에 대하여 차이콥스키는, 곡을 초연한 2일 후 동생 ‘모데스트’와 곡의 표제에 대해 논의하다가 모데스트가 ‘파테티크!’ 어떠냐고 물으니까, 무릎을 치며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신뢰성이 박약할 뿐 아니라 차이콥스키가 한 말이라고 하기엔 부적절한 구석이 많다. 왜냐하면 차이콥스키는 이 곡에서 베토벤의 ‘비창소나타’ 도입부를 상당부분 인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곡상의 아이디어를 많이 차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차이콥스키가 이 말을 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189311차이콥스키 장례식                                         모스크바 음악원 화성학 교수 시절의 차이콥스키

 

결국 차이콥스키의 유작이 된 <비창교향곡>은 그가 이 곡을 세상에 내놓은 지 8일 만에, 그리고 표제를 붙인지 6일 만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는 바람에 더 유명(?)해지는 계기가 되었지만, 곡은 그의 고독한 삶이 응축되어 있는 깊은 회한이 듣는 이의 가슴을 파고든다. 그래서인가, 이 곡의 4악장 ‘아다지오’는 평생 불덩이를 가슴에 안고 살다간 그의 삶의 괘적을 들여다보는 듯한 아픔이 느껴진다. 아무튼 차이콥스키는 콜레라로 죽었다는 보도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당시 콜레라가 유행했다고는 하지만, 당대 러시아 최고의 명사가 갑작스럽게 콜레라로 죽을 만큼 위생상태가 형편없었다는 것도 수긍이 가지 않을 뿐 아니라, 아무리 콜레라라고 해도 그렇지 건강했던 사람이 콜레라로 며칠 만에 죽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그러나 훗날 차이콥스키의 죽음이 자살로 알려졌지만, 그의 죽음이 자살로 알려지기까지 무려 100년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때, 그의 죽음은 이 교향곡의 제목처럼 ‘어두운 고독’ 바로 <비창>이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볼 뿐이다.

 

Symphony No.6 in B minor, Op.74 (full length)



1st Adagio. Allegro non troppo

제1악장은 아다지오. 알레그로 논 트로포 소나타형식이다. 슬픔과 번뇌가 잘 드러난 아다지오다. 콘트라베이스가 피아니시모로 연주하는 우울한 중음 위에, 바순이 어둡게 신음하는 가운데 다른 악기가 그것을 탄식하듯 이어간다. 곡 첫머리부터 공포와 떠는 듯 어두운 그림자가 덮쳐온다. 제1주제의 발전이 있고 나서 빠르고 격렬한 주제가 나타나며, 이어 고뇌, 불안, 초조함이 이어진다. 곡은 춤곡을 연상시키는 리듬과 몽환적인 경쾌한 상승선율도 이어지고 갑자기 어두움을 극복하려는 듯 마치 몸부림치는 것처럼 격렬한 알레그로 비보의 포르티시모에 의한 위압적 리듬과 두 주제의 전개가 이어진다. 온갖 비애와 운명에 대한 체념, 죽음에 대한 공포, 젊음의 정열 등이 뒤범벅 된 채, 형언할 수 없는 ‘어두운 고독’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2nd Allegro con grazia

제2악장은 알레그로 콘 그라치아이다. 4분5박자로 구성된 복합 3부형식이다. 이 특징적인 리듬은 러시아 민요에 자주 나오는데, 2악장 전체에 일관되게 흐른다. 이 리듬은 전반 2박, 후반 3박으로, 5박자의 불안한 박자로 속도는 빠르고 경쾌하지만 불안정하여 어딘가 기이한 느낌을 준다. 동시에 어두운 그림자가 감돈다. 중간부는 팀파니의 단순한 리듬을 타고 감미롭지만 쓸쓸하고 감상적인 애가처럼 울려 퍼진다. 이어 주부가 재현되고 종결부로 들어가면 콘트라베이스가 지속저음을 연주하고 무거운 화음 위에 각 악기들의 연주가 이어지다가 사라지듯 마친다.

 

 

 

3rd Allegro molto vivace

제3악장은 스케르초와 행진곡을 합친 형식으로 발전부가 생략된 소나타 형식이다. 곡은 스케르초 주제에서 시작한다. 이 주제는 ‘타란텔라’ 주제로 차이콥스키가 이탈리아 남부를 여행할 때 보았던 격렬한 춤곡 리듬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어 행진곡 부분으로, 주요 선율은 전투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스케르초 주제는 중얼거리듯 아주 작은 소리로 반주된다. 종결부는 다시 행진곡 주제를 쌓아나가면서 강력한 종지를 만든다.

 

 

 

4th Adagio lamentoso

제4악장은 자유로운 3부 형식이다. 무겁게 짓누르는 ‘라멘토소’의 ‘어두운 고독’은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표현한다. 그러나 다시 슬픔을 극복하려는 듯 포르티시모 일어나지만, 더 이상 힘이 없다. 비통하고 슬프게 애원하는 듯한 주제가 현에 의해 여리게 진행되다가 갑자기 포르티시모로 고조되지만, 다시 절망적인 피아니시모로 신음하듯이 가라앉는다. 다시 주부가 되돌아와 현이 포르티시모로 나오는데, 이 주제는 격렬하게 돌진하다 끝내 힘을 잃게 되면, ‘탐탐’의 어두운 일격 위에 3대의 트럼본과 튜바가 절망적인 신음을 토하고 나면 아주 조용하고 쓸쓸한 종결부를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