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음악/클래식

헨델의 메시야

새벽지기1 2017. 7. 31. 14:42

Insight 2009.03.09 07:21


1741 겨울 어느 ,

어두운 런던 거리 모퉁이에 지친 다리를 끌며

흐느적흐느적 걸어가고 있는 늙은이가 있었다.

꾸부정하게 허리 굽은 모습의 그는

이따금 터져 나오는 심한 기침 때문에 한동안씩 걸음을 멈추곤 하였다.

조오지 프레데릭 헨델. 그는 지금 저녁 산책 중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허름한 차림새에 초라하고 지쳐 보였지만

그의 마음 속은 마치 용광로 속처럼 부글부글 끊어 오르고 있었다.

그 속에서는 지난날 누렸던 영광스러운 기억들과

현재의 심연처럼 깊은 절망감이 한데 어우러져 싸움을 벌이고 있는 전쟁터였다.

 

지난 40 동안 그는 영국과 유럽 일대에 걸쳐

하늘을 찌르는 명성을 누려온 대작곡가였다.

새로운 곡이 발표될 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명문 귀족들은 서로 시샘하듯 그를 총애했다.

 

왕실(王室)에서도 그에게 온갖 명예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마치 보잘 없는 길거리의 돌멩이처럼

그들 모두에게서 내팽개쳐진 신세가 되고 것이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경쟁자들은

그의 오페라 공연장에 일부러 싸움패를 사서 공연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그러자 극장에서는 그의 곡을 연주하려 않았다.

지금은 그날 그날의 끼니를 걱정해야 정도의

빈궁 빠져 버리게 것이었다 게다가

4 전에는 뇌출혈이 생겨 오른쪽 반신이 마비되었다.

 

걷기는커녕 영감이 떠오를 때도 손을 움직여 음표(音標) 하나 그릴 없었다.

의사들은 도저히 회복을 기대할 없다고 단정했다.

그만큼 병세는 절망적인 상태였던 것이다.

 

헨델은 독일의 악스 샤펠이라는 온천장에 가서 목욕을 했다.

번에 계속해서 3시간 이상은 온천 속에 있지 말라고 의사들은 경고했다.

그러나 그의 생에 대한 무서운 욕망은 의사들의 말을 무시했다.

번에 9시간 이상씩 물 속에 들어가 있곤 했던 것이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병세가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무기력한 근육에 생기가 돌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손과 발을 조금씩 움직일 있게 되었다

 

재생(再生) 환희-그는 끓어오르는 창작열에 도취되어  

연달아 편의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사람들은 다시 그에게 갈채를 보내 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마치 장마때 잠시 내리쬐는 햇빛처럼

잠시 반짝이다 구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열렬한 후원자인 캐롤라인 여왕이 작고한 후로 수입이 점차 줄어들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겨울의 혹한이 휘몰아쳐 왔다.

얼음장 같은 극장에 손님이 리가 없었다. 공연은 속속 취소되었다.

 

날이 갈수록 채무가 쌓여 갔다. 창의력도 의욕도 감퇴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제 지칠대로 지쳤다.

 

이제 60 고개를 바라보는 나이였다.

정신적인 타격은 노쇠를 촉진했다.

이제는 이상 아무런 희망도 갖지 말자고 스스로를 위안해야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듯 깊은 절망감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저녁이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산책을 나서곤 했다.

방안에 가만히 누워 있는다는 것은 마치 스스로 죽음을

손짓해 부르는 같아서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헨델은 계속 인적 없는 길을 천천히 걸어갔다.

저만치 암흑 속에 교회의 첨탑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문득 발을 멈추었다.

순간 그는 자리에서 그대로 주저앉아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제게 소생하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가

사람들로 하여금 저를 내버리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제게 창작 생활을 계속할 기회를 주시지 않으십니까?"  

그는 뱃속 밑바닥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하나님, 하나님 ! 어찌하여 저를 버리십니까 ! "  

 

그는 밤이 깊어서야 한없는 슬픔 가운데 초라한 숙소로 돌아왔다.

책상 위에 소포 덩어리가 있었다.

그는 조금 이상스럽게 생각하면서 소포를 풀었다.

내용물은 묶음의 오라토리오 가사였다.

'시인 찰스 제넨스로부터' 라는 서명이 들어 있었다.

헨델은 가사 뭉치를 훑어보면서 투덜거렸다.

방자한 녀석, 이류 시인인 주제에..모멸감이 앞섰다.

 

헨델은 마치 시인이 곁에 있기라도 혼잣말로 불평을 터뜨리면서,

동봉한 편지를 대충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가사에 붙여 작곡을 착수해 주기 바란다면서

덧붙여 '주께로부터 말씀이 있었다' 씌어 있었다.

 

헨델은 다시 한번 분통을 터뜨렸다  

"아니, 그래 뻔뻔스럽게도 제까짓 놈에게 하나님께서 영감을 주셨다구?"  

헨델은 사실 그다지 믿음 두터운 사람이 아니었다.

여유가 별로 없을 때에도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 것은 사실이지만,

성격이 워낙 격렬하고 오만하여 사방에다 적을 만들기 일쑤였던 것이다.

 

"제넨스란 녀석은 그래 나에게 오페라 대본도 아닌

겨우 가사 쪼가리를 보내 주었단 말인가"  

심히 불쾌한 마음으로 오라토리오의 가사 원고를 뒤적거리다가

헨델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이상하게 가슴을 찔러 오는 대목이 얼핏 눈을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버림을 받았다..

그는 자기를 불쌍히 여겨 사람을 찾았건만

그럴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를 위로해 사람은 아무데도 없었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은 구절에

갑자기 친근감을 느끼면서 헨델은 원고를 계속하여 읽어 내려갔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도다.

하나님은 그의 영혼을 지옥에 버려두지 않으셨도다..

그가 너에게 안식을 주리라..>

 

그로부터 헨델은 글자 하나 하나 마다 마치 영혼이 있어

구구절절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감동으로

원고를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한 마디 글자 하나가 새로운 의미를 지니고 빛나는 같았다.  

 

<..현명한 지도자, 나의 구주가 살아 계심을 나는 알도다.

기뻐하라, 할렐루야>  

 

순간 헨델은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전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옛날의 정열이 다시 붙어 오름을 느꼈다.

머리 속으로는 놀랄 만큼 아름다운 멜로디들이 잇달아 샘솟아나고 있었다.

헨델은 황급히 펜을 찾아 들었다.

그리고는 자리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악상이 떠오르는 대로

마구 휘갈겨 채보하기 시작했다.

놀랄 만한 속도로 음표가 오선지 메워나갔다.

다음날 아침 하인이 조반상을 들여올 때까지도

그는 책상 위에 엎드려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날이 밝아 아침이 것도,

조반상이 들어와 있는 것도 전혀 알지 못하는 같았.

 

충성스런 하인의 권고에 따라 빵을 집어 들긴 했으나

일에 정신이 팔려 있는 그는 빵을 입으로 가져가기 전에

연신 손으로 부스러뜨려 마룻바닥에 떨어뜨리곤 했다.

그러면서 정신 없이 악보를 그리다가는

미친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방안을 걸음으로 왔다 갔다 서성거리기도 했다.

때로는 팔을 쳐들어 허공을 후려치기도 하고

목소리로 우렁차게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할렐루야 ! 할렐루야 ! '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일찍이 그분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일이 없어요"

하인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나를 빤히 바라보시는 같은데 눈에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같았어요.

하늘나라의 문이 열린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바로 거기 계신다고

소리치기도 했지요. 그분이 정신을 잃은 것이 아닌가 더럭 겁이 정도였다니까요

무려 24일 동안 그의러한 광란적 망아 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는 거의 먹지도 쉬지도 않고 무섭게 일에만 달라 붙어 있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기진맥진하여 침대 위에 나가 떨어졌다 

그의 책상 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오라토리오 <메시아> 악보가

마구 흐트러진 놓여 있었다

 

헨델은 혼수상태에 빠져 계속 14시간이나 잤다.

하인이 겁이 나서 의사를 불렀다.

그러나 헨델은 의사가 도착하기 얼마 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하인에게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마치 굶주린 들짐승처럼 그는 덩어리를 꾸역꾸역

입으로 틀어 넣고는 맥주를 한없이 들이켰다.

얼마 만에 그는 불러 오른 배를 쓸어 내리면서 물러 앉아 파이프에 불을 댕겨 물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방금 도착한 의사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선생이 나와 더불어 유쾌한 이야기를 하러 오셨다면

환영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몸뚱이 여기저기를 쿡쿡 찌르고

툭툭 두드려 보러 오셨다면 돌아가 주십시오. 보시다시피 나는 멀쩡하니까요"

런던에서는 헨델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뻔했으므로

그는 <메시아> 가지고 아일랜드로 갔다.

그는 자기 작품을 연주하는 푼도 요구하지 않았다.

공연에서 생기는 모든 수입은 자선사업 기관으로 보냈다

 "<메시아> 나를 가장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낸 기적이었다.

이제 이것은 세상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더블린으로 그는 합창대 두개를 하나로 합쳐 연습을 시켰다 

초연(初演) 날이 가까와 옴에 따라 더블린 시민들의 마음은 점차 흥분으로 들떴다.

입장권은 단시일에 매진되었다.

좌석을 만들기 위하여 부인들에게는 버팀 (당시 여자들이 치마폭을

벌어지게 꾸미는데 쓰던 ) 쓰지 말고,

남자는 칼을 차지 말고 입장하도록 요청되었다.

 

1742 4 13, 공연 시간 전부터 군중이 극장 앞에 장사진을 쳤다.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더블린에서 성공적인 공연 소식이 런던에 알려지자

런던 시민들은 자기들도 작품을 하루 빨리 듣게 되기를 원했다 

 

더블린에서 초연이 진행되는 동안 하나의 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할렐루야 합창이 연주될 왕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든 청중이 그를 따라 모두 기립하여 노래가 끝날 때까지 있었다.

우연한 사건은 오늘날에도 합창이 연주될 때마다

청중이 일어나 듣는 관습을 만들었다.  

헨델이 살아 있을 동안 곡은 해마다 공연되었고

수입은 모두 파운들링 병원으로 갔다.

헨델은 앞으로도 작품으로 들어오는 수입은 계속 병원에 보내 달라고 유언하였다.

 

뒤로도 헨델은 많은 고난에 봉착하였지만

다시는 전과 같은 절망에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는 그에게서 점차 생기를 빼앗아갔다.

하지만 그의 불굴의 정신은 최후의 순간까지 흐트러지지 않았다.

 

1759 4 7 저녁(그의 나이 74세가 되던 ),

그는 <메시아> 공연 되는 자리에 참석하였다.

'나팔 소리가 울리리' 시작될 그는 심한 현기증을 느끼고 비틀거렸다.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그를 부축해서 집으로 데리고 갔다.

며칠 뒤에 그는 '나는 () 금요일(예수의 수난일) 죽고 싶다' 말했다

4 13 <메시아> 초연되었던 바로 그날,

자신의 소원대로 조오지 프레데릭 헨델은 눈을 감았다.

그러나 <메시아> 통하여 그의 정신,

절망 없는 희망의 개선가는 오늘날까지 살아 있다.

 

런던의 앨버트 홀에서 해마다 금요일에 공연되는 <메시아>

오늘날 부활절 축하 행사의 전통이 되었다 

<메시아>에서 헨델은 어두운 곳을 밝히기 위하여

세상을 비치는 횃불에 불을 붙여 놓았던 것이다.

'할렐루야' 외치는 노랫소리가 사라지지 않는 동안,

산을 바라보는 눈이 있는 동안,

희망을 잃지 않는 마음이 있는 동안

헨델이 남기고 예수님의 탄생과 수난 그리고 부활에 대한

위대한 승리의 노래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출처: http://sangmoon.tistory.com/245 [Convex Optimization/Mathematical Control/Coverged IT/Renewable Energy]